<책 소개>

청소년들의 노동과 죽음을 담은 산문집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지난 2014년 CJ제일제당에서 일하다 부당 노동과 작업장 내 폭행에 자살한 고(故) 김동준 군부터 제주 산업체 현장실습에서 사고로 죽은 고(故) 이민호 군까지. 죽음으로 끝난 알지 못하는 아이들의 삶에, 알아야 할 죽음이라는 생명력을 부여해주는 책이다.

 

재호 기자의 <열악한 노동 현장의 최전선을 마주한 아이들>

현장실습생이 학교를 벗어나 현장에 발을 들이는 순간, 그들은 유령이 된다. 사용자는 이들이 완벽한 노동자이길 바라며 한 사람분 이상의 노동을 요구한다. 실습생의 실수에 돌아오는 것은 제대로 된 교육이 아닌 폭언과 폭행이다. 하지만 한 편으론 이들이 영원히 학생이길 바란다. 이들이 정식 노동자가 되는 순간 더 나은 복지를 제공하고, 더 높은 임금을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장실습생은 학생으로도, 노동자로도 제대로 대우받지 못한다.

아이들이 나가는 현장은 곧 현실이다. 가벼운 실수와 착오가 때론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불러온다. 그러나 현장실습생이 실습하는 공장 중 안전 교육이 미비하고, 장비가 제대로 구비 되지 못한 곳이 많다. 학생은 현장실습생 신분이기에 사용자에 복지나 교육을 요구하기 어렵다. 안전 장비에 대한 요구는 물론 부당한 처우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는 특정 회사의 문제도, 특정 아이들의 문제도 아닌 우리 사회의 문제다. 이 아이들은 공장의 제일 밑에서 현실을 짊어진 채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학교에서도 이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기대하기 어렵다. 노동법·노동인권·노동조합 등은 현장에 나갈 아이들이 필수적으로 배워야 할 지식이지만 학교는 제대로 된 교육을 제공하지 않는다. 현행 교육과정에 따르면, 학교는 3년 동안 6시간의 인권 노동 교육을 시행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학생이 교육내용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삶에 녹여내기엔 부족한 시간이다. 아이들이 나가는 현장은 곧 현실이기에 더 철저하게 교육받아야 한다. 그곳이 학교든 회사든 말이다.

우리 사회는 아이들을 불완전한 노동의 주체,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만 인식한다. 위험한 현장에서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로 그들이 누려야 할 권리를 제약한다. ‘보호’라는 탈을 쓴 채 아이들을 동료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친절한 차별주의’다. 아이들이 어엿한 노동의 주체로 인정받을 때 비로소 현장실습생 문제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가 된다.

 

인영 기자의 인터뷰 <슬픔을 구원하기 위해 말하다>

책을 읽으면서 여러 번 눈물을 훔쳤다. 그들의 이야기에서 우리 사회의 계급이 삶의 모습을 결정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와 거리가 먼 사람들은 피해자가 됐다. 그렇게 생겨난 피해자들의 빈자리는 또 다른 약자가 채우고 있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을 통해 우리 사회가 기형적임을 느꼈다. 저자는 어떤 마음으로 글을 써 내려갔을까. 이런 궁금증과 함께 은유 작가를 만났다.

Q. 자기소개 부탁한다.

A. 소설이나 드라마가 아닌 논픽션을 다루는 작가다. 제도 밖에서 글을 쓰고 가르친다. 은유는 필명이다. 은유는 상관없어 보이는 것을 연결하는 수사법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면 나와 상관없어 보였던 일이 나와 연결된다. 발음도 예쁘지 않은가.

 

Q. 노동 르포르타주*를 쓰는 작가로 유명하다. 노동자 문제에 어떻게 관심을 가졌나?

A. 원래 일하는 사람에 관심이 많았다. 나는 나를 작가보다는 문필 노동자라고 표현한다. 노동자는 존중받으며 일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간에는 노동 문제를 접할 때마다 나의 일이 아니라며 지나쳤다. 그러나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며 살아있는 이야기를 많이 접했다. 무례한 손님을 겪은 아르바이트생이나 직장 내 폭력적인 문화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결코 나와 멀리 있지 않음을 알게 됐다. 남의 돈 벌기 힘든 거라고 뭉뚱그려 지나갈 일이 아니었다. 이런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아픔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며 잘못된 부분들을 고쳐나가고 싶었다.

 

Q.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을 쓴 이유는 무엇인가?

A. 안 알려진 이야기라서, 사람들이 앞으로도 알고 싶지 않을 이야기라서 썼다. 아니, 써야만 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 것 같다. 예전의 나처럼 이 문제가 자기와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관심 밖의 이야기를 접하고 해당 문제에 무감각해지지 않도록 써야만 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도리스 레싱도 동시대의 문제를 폭로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일을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을 느끼며 썼다.

물론 이 책을 쓴다고 세상을 바꿀 순 없다. 그러나 내 작은 목소리 하나가 세상에 던져져 씨앗이 되면 좋겠다. 누군가에게 퍼지고 문제의식이 공유된다면 우리 사회가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사람을 지키는 일이라 생각한다. 이번 글을 통해 편견을 깨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몰랐던 것을 알게 되면 좋겠다. 글을 통해 좀 더 나은 세상이 되면 좋겠다. 열심히 노력 중인데 힘들긴 하다.

 

Q. 책을 읽으며 답답하고 안타까운 현실에 페이지를 넘기기가 힘들었다. 본인은 책을 쓰며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

A. 어른들의 무책임함과 무감각함에 너무 화가 났다. 자살한 동준이가 힘들어했을 때 조직의 어른들은 외면했다. 그의 어려움에 눈을 감았고, 사건을 숨기기에 급급했다. 동준이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른들은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아서 민호를 기계에 깔려 죽게 했다. 우리의 무관심 역시 잘못이다.

 

Q. ‘자신의 언어가 없는 사람’을 약자라고 표현하며 폭력을 사라지게 하려면 계속 이야기해야 한다고 했다. 어떤 의미인가?

A. 어른들은 학업 성적이 좋지 않은 아이들을 무시한다. 무시당하던 아이들은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도 자기를 변호하는 언어가 부족하다. 권리를 주장하면 말대답한다고 한다. 그렇게 아이들은 점점 자신의 언어를 잃는다. 아이들뿐 아니라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불이익을 당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이런 이들한테 말하고 싶었다. 힘들면 일하러 가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물론 아픔을 말하는 일은 고통스럽다. 그러나 피해 경험을 계속 이야기해야 한다. 그렇게 말하며 도움을 받아야 한다.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불이익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무기력하게 당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아픔을 호소하면 아픔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여 부당함에 저항할 수 있다. ‘미투’ 운동이 대표적이다.

 

Q.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가?

A. 슬픔은 또 다른 슬픔을 구원한다. 민호 아버님도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며 서로의 아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갔다. 자신의 슬픔을 드러내고, 서로의 슬픔을 알아보는 사회가 좋다. 우리 사회가 슬프면 슬프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의 사회였으면 좋겠다.

 

Q. 『The Y』를 읽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A. 청년들이 고통이나 굴욕을 당할 때 어디까지 참아야 하는지, 어떻게 저항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 그런 부분에 대해 깊이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용기를 내서 단 하루라도 잘 살아가 줬으면 좋겠다.

 

*르포르타주: 보고기사 혹은 기록문학으로 사건에 대해 리포터의 생각을 바탕으로 심층 취재하며 에피소드를 포함하는 기사

 

글 김인영 기자
hellodlsdud@gmail.com
조재호 기자
jaehocho@yonsei.ac.kr

<자료제공 yes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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