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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人] 당신 곁의 ‘퀴어’를 그립니다퀴어를 사유하는 미술가, 전나환을 만나다
  • 민수빈 김병관 이희연 기자
  • 승인 2019.10.06 19:18
  • 호수 52
  • 댓글 1

지난 2016년 미국 올랜도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은 최악의 혐오 범죄 중 하나로 꼽힌다. IS의 추종자라고 밝힌 남성이 게이 클럽에서 총기를 난사해 1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이었다. 전 세계적인 추모 물결이 일었던 당시, SNS상의 그림 하나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올랜도를 위해 기도를(PRAY FOR ORLANDO)’이라는 문구와 함께 서로를 부둥켜안은 두 남성을 그린 그림이었다. 모두가 슬픔에 빠져있을 때 자신만의 방식으로 묵묵히 위로를 건넨 이 작가는 누구일까. 「Pray for Orlando」를 비롯해 성소수자 이슈를 주제로 작품 활동 중인 전나환 미술 작가를 만났다.

Pray for Orlando, Pray for Queer

전 작가는 오픈리 퀴어* 미술가다. 작품 속에 자신의 성적 지향을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다. 그의 작품은 성소수자를 단순 묘사하는 것을 넘어 인권문제를 조명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그는 자긍심(Pride), 에이즈, 군(軍)형법 등 다양한 성소수자 이슈를 주제로 작품 활동을 했고, 배지, 티셔츠 등 굿즈를 판매한 수익금을 성소수자 인권단체에 기부하기도 했다. “미술 작가로서 성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은 정치적인 행위기도 하다”는 전 작가는 성소수자의 목소리를 사회에 전달하는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작가로서 성적 지향을 드러내는 게 처음부터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지난 2015년 겨울, 그는 우연한 계기로 ‘지보이스’의 연습에 참석하며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지보이스는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로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게이 합창단이다. 전 작가는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무대에 오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며 “지보이스의 공연을 보고 우리들의 목소리를 공개적으로 내는 일이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올랜도 총기 난사 사건은 전 작가가 성소수자 이슈를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다. 전 작가는 “성소수자가 환대받지 못하는 국내에서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며 “「Pray for Orlando」를 그리면서 퀴어의 존재를 드러내는 작업을 계속해야겠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전했다.

사회를 향하기 시작한 예술

‘자긍심’은 그가 작품에 담은 첫 번째 성소수자 이슈였다. 전 작가는 “자긍심은 자신을 숨기며 살아가는 성소수자들이 매일같이 부딪히는 문제”라며 “자신의 존재를 한껏 과시하는 성소수자의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외눈박이 괴물 키클롭스(Cyclopes)를 게이 남성에 빗대 작품 속에 등장시켰다. 남들과 다른 외모 때문에 지하세계에 갇힌 키클롭스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성소수자의 삶을 대변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 작가는 “키클롭스가 최대한 당당하고 뻔뻔하게 보였으면 하는 마음에 산보다 큰 몸집으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자신을 긍정하지 못하는 게이 남성들이 용기를 내길 바라며” 키클롭스를 섹슈얼한 모습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지난 2016년 전 작가는 본인의 작품을 모아 개인전 ‘Bigger than the Mountains!’를 열었다. 키클롭스는 그 후로도 「With HIV/AIDS」, 「Gay Army Rights」 등의 작품에 계속해서 등장하며 ‘전나환’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됐다.

전 작가의 행보는 많은 예술인과 네트워크를 맺으며 더욱 활발해졌다. 그는 같은 목적을 지닌 활동가들의 생각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활동가로서의 사명감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혼자만의 작품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는 전 작가. 그는 『플래그 페이퍼』, 『뒤로』 등의 매거진에 인터뷰어와 일러스트레이터로 참여하며 퀴어, 에이즈 등의 문제에 목소리를 냈다. 이렇게 그는 다양한 방식으로 수많은 성소수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세상을 표현했다. 이 경험은 전 작가의 예술을 더욱 사회와 맞닿게 했다.

불완전한 자유에 맞서 더 진실한 이야기를 꿈꾸다

지난 2017년 그는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과 협업해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전시인 ‘Sun, sun, sun here it comes’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전 작가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얼굴을 그대로 담은 초상화 작품을 구상했다. 하지만 청소년들의 개인정보를 보호해야 한다는 내규로 인해 아이들의 얼굴은 단순화된 형태의 초상화 작품으로 전시에 올랐다. 전 작가는 이 경험을 통해 아직도 성소수자는 사회에 자신을 드러냈을 때 닥쳐올 시선과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체성을 드러내지도, 감추지도 못하는 지점에 머물러 있는 성소수자들의 ‘불완전한 자유’를 절감한 것이다. 전 작가는 “더는 현실에 굴복해 타협하고 싶지는 않았다”며 “이후의 전시에서는 더 진실하고 숨김없이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담으려 한다”고 전했다.

전 작가는 이러한 뜻을 담아 오는 10월 18일부터 31일까지, 을지로에서 개인전을 연다. 전시 제목은 ‘범람하고, 확장하는 Q’. 전 작가는 “‘범람하고, 확장하는 Q’는 퀴어란 단어가 성적 지향만을 명명하는 데 쓰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전시”라고 말했다. 전 작가는 그림 작품과 더불어 32명의 성소수자, 드랙퀸**, HIV 보균자 등과의 대화로 이뤄진 인터뷰를 전시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더는 퀴어란 용어가 성소수자들만을 지칭하지 않고, 규범에 반기를 드는 다양한 소수자를 품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전시의 궁극적 목표다.

전 작가의 예술은 ‘퀴어’만이 아닌 ‘퀴어함(queerness)’을 가진 이들까지 포용하는 사회를 향한 여정이다. 전 작가는 “가만히 있고 싶지는 않았던, 형용하기 힘든 답답함이 지금까지의 작업을 가능케 했다”고 말했다. 사회와 퀴어 커뮤니티 모두를 향한 예술가가 되고 싶다는 그. 우리 곁의 퀴어, 우리 안의 퀴어함을 위해, 전나환은 오늘도 캔버스를 채운다.

*오픈리 퀴어(Openly Queer): 자신의 성적 지향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성소수자

**드랙퀸: 유희 혹은 풍자의 목적으로 과장되게 사회적 여성성을 연기하는 남성

글 민수빈 기자
soobni@yonsei.ac.kr
김병관 기자
byeongmag@yonsei.ac.kr

사진 이희연 기자
hyeun5939@yonsei.ac.kr

<자료제공 전나환 작가>

민수빈 김병관 이희연 기자  soobni@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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