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받는 청년의 주거권

매년 초, 수도권 밖에 거주하는 수많은 고교 졸업생이 부푼 꿈을 안고 서울에 올라온다. 하지만 상경의 행복함도 잠시일 뿐. 이들에게는 곧 ‘어디에 살아야 할까’란 현실적인 고민이 닥쳐온다. 설령 운 좋게 기숙사에 붙었다 해도, 대학생 신분에서 벗어나 취업에 성공하면 똑같은 고민이 시작된다.

지난 2015년 시행된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서울에 거주하는 만 20~34세의 청년 1인 가구 중 비주택*에 거주하는 비율은 29.6%다. 서울의 청년 1인 가구 10가구 중 3가구가 주거지로 적합하지 않은 곳에 사는 셈이다. 낙후된 환경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비주택을 택하는 이유는 서울의 천문학적인 집값 때문이다. 취업 후 서울에 사는 민준홍(28)씨는 “울산에서 대학을 다닐 때 원룸을 얻을 수 있던 돈으로는 서울의 고시원을 간신히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인구의 1/5이 모여 있는 서울에서, 청년들이 몸 누일 방 한 칸을 구하는 것은 갈수록 어려운 일이 되고 있다.

 

‘집’ 아닌 ‘재산’이란 생각에 무시되는 주거권

 

문제의 본질을 짚어보기 위해, 우리는 주거 정책이 흘러온 방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주거 정책은 임차인이 아닌 임대인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집을 개인 재산으로 간주해 정책을 수립해 왔기 때문이다. 민달팽이유니온 최지희 위원장은 “경제 활성화란 명목으로 진보를 거듭하는 부동산 정책과 달리, 임차인과 취약계층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정책은 미진하다”고 말했다. 지난 1월 NH투자증권이 발표한 ‘글로벌 주요 도시의 주택가격 비교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의 소득대비 집값 순위는 세계 4위다. 이런 도시에서 아직 사회에 뿌리내리지도 못한 청년 대부분은 ‘을’의 입장일 수밖에 없다. 이어 최 위원장은 “주거 문제는 점점 더 심화하는 사회 문제”라고 덧붙였다.

지난 2017년 발표된 고용노동부 고용 노동통계에 따르면, 청년들이 취업 후 서울에서 아파트 한 채를 장만하려면 연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도 평균 15.2년이 걸린다. 경기도 광명시에 사는 황윤준(46)씨는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중학교 교사가 됐지만, 13년 동안 서울 외곽의 전셋집에서 살았다”며 “그래도 내 집 마련을 위한 자금이 모이지 않아 결국 근무지를 변경해 경기도로 이사를 택했다”고 말했다. 대학을 졸업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은 이들도 임차인의 신세를 벗어나기 힘든 것이다. 이런 기형적 구조에서 수입 대부분이 용돈 혹은 아르바이트 월급뿐인 청년은 살고 싶은 곳이 아닌 임대료를 낼 수 있는 곳을 찾아 나서야만 한다. 살 공간조차 자유롭게 고르지 못하는, 주거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청년들의 현주소다.

 

정책조차 외면하는 청년의 홀로서기

 

더욱 심각한 문제는 우리나라의 주거 복지 정책조차 청년들의 주거권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례로 서울 내 주거 취약계층의 부담을 덜기 위해 마련된 서울시 공공임대주택은 신혼부부·노인 부양 가구·다자녀 가구 등에 우선으로 분양권을 제공한다. 가구원 수가 많고, 지역에 거주한 기간이 길수록 분양에 성공할 확률도 높아진다. 이제 막 객지에 올라와 혼자 사는 청년은 정책 바깥으로 밀려난다. 여전히 사회는 청년을 ‘취약한’ 계층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가장 보호받지 못하는 계층임에도 말이다.

운 좋게 살 곳을 구하는 데 성공한 청년은 또 다른 갑질에 무력해진다. 바로 임대인의 홀대와 무시다. 대부분의 원룸이나 고시원에서는 월세와 관리비 등의 비용과 지급 방법이 임대인 임의로 책정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월세와 관리비를 객관적으로 정하는 관리사무소가 없어 임대인이 이를 구두로 요구하면 그만이다. 용산구에서 자취 중인 A씨는 “학교에서 연결해 준 공동주택에 살던 당시 집주인이 6개월 치 월세를 한 번에 요구한 것도 모자라 방 안에 빈대가 생겼다며 소독과 사후 도배 비용을 모두 청구해 집을 나오게 됐다”며 “이에 대항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학교에 연락을 취하는 것뿐이었지만 학교에서도 이렇다 할 조처를 해주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렇게 청년은 임대인이 마음대로 요구하는 것에 따를 수밖에 없다.

또한 ‘집 상태를 확인하겠다’, ‘새로운 임차인에게 집을 보여줘야 하는데 집에 없을 때를 대비하겠다’며 마스터키를 이용하거나 불시에 집을 급습하는 집주인의 행태 앞에서도 청년은 무력하다. 연희동에서 자취 중인 B씨는 “학교에서 수업을 듣던 중 집주인이 수도 수리 때문에 마스터키로 문을 열어 자취방에 들어갔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사전에 약속을 잡은 뒤 집에 있는 시간에 방문할 수도 있었을 텐데 통보를 받아 매우 불쾌했다”고 말했다. 물론 이러한 행위는 주거침입죄**에 해당하는 중죄다. 그러나 계약과 계약의 연장권을 쥐고 있는 임대인에 대항해 청년 임차인이 꺼내 들 수 있는 묘책은 없다.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청년들은 밀려나고, 무시 받는다. 일각에서는 서울에서 살 곳 걱정 없이 사는 것이 계층과 세대를 불문하고 어려운 일이라 지적한다. 하지만 수중에 목돈도 없고, 가족도 없는 청년 1인 가구는 분명 불공정한 출발선에 서 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은 틀렸다.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고 안전하고 쾌적한 곳에서 살 권리는 보장돼야 한다. 새롭게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청년들의 서울살이는 지금보다 수월해질 필요가 있다.

 

*비주택: 쪽방·고시원 등 주택에 해당하지 않으며 상황이 열악해 거주에 적합하지 않은 건축물
**형법 제319조 (주거침입, 퇴거불응) ①사람의 주거, 관리하는 건조물, 선박이나 항공기 또는 점유하는 방실에 침입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글 민수빈 기자
soobni@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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