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무심코 털어 넣는 술 한 잔은 익숙하지만, 과연 그 술의 탄생과 비화에 귀 기울여 본 적이 있을까. 어디선가 한 번은 들어보거나 마셔봤을 ‘그 술’에 얽힌 이야기에 푹 빠져보자. 아는 만큼 마시게 될 것이다.

 

 

세계주도의 두 번째 주인공이 될 술은 미국에서 탄생한 테킬라 베이스의 칵테일, 마가리타다. 라틴어로 ‘진주’, 스페인어로는 ‘데이지’란 아름다운 뜻을 가진 이 술. 1953년 잡지 『에스콰이어』에서는 ‘달의 술’이란 우아한 별명을 얻기도 했다. 여기까지 들으면 행복과 아름다움이 물씬 느껴지는 술인 듯한 마가리타. 하지만 마가리타의 탄생 비화에는 길고도 외로운 한 남자의 사랑과 그리움이 담겨 있다.

 

그녀가 사랑했던 술을 기억하기 위해

 

마가리타의 이야기는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LA의 바텐더, 존 듀레서(John Durlesser)에겐 술을 유독 좋아하던 연인이 있었다. 그녀는 특히 소금을 잔 주변에 묻힌 테킬라 샷을 즐겨 마셨다. 그러던 어느 날, 존과 함께 사냥을 나간 그녀는 불의의 총기 오발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하루아침에 예고도 없이 사랑하는 여자를 잃게 된 것이다. 그렇게 2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시간도 그의 그리움을 치유해주진 못했다.

1949년, 존의 사랑 이야기는 미국 최고의 칵테일을 뽑는 대회 ‘내셔널 칵테일 콘테스트’로 세상의 빛을 보게 된다. 생전 그녀가 사랑한 테킬라를 베이스로 해 라임을 넣은 뒤, 잔 주변에 소금을 섬세히 묻힌 칵테일로 말이다. 그리고 이 칵테일은 입선작에 당선됐다. 존은 그의 오랜 그리움과 사랑을 담은 이 칵테일에 ‘마가리타’란 이름을 붙였다. 마가리타는 존이 평생을 그리워한 그녀의 이름이었다.

 

토속주의 변신, 전 세계의 사랑을 얻다

 

이렇게 애절한 탄생 비화를 가진 마가리타는 곧 미국에서 전 세계로 퍼져 명성을 얻었다. 테킬라의 쓴맛을 감춰주는 라임과 레몬의 상큼한 풍미, 목을 넘어갈 때 느껴지는 짠맛, 그리고 잘게 부순 살얼음이 주는 시원함에 세계가 반한 것이다. 그 안에 담긴 낭만적인 이야기도 이 칵테일의 대중화에 한몫했다.

사실 마가리타란 칵테일이 탄생하기 전, 테킬라는 도수가 높은 멕시코의 토속주에 불과했다. 존의 연인처럼 테킬라에 소금을 곁들이는 방식 또한 멕시코의 노동자들이 독한 향을 덜 느끼기 위해 짠맛을 곁들인 데서 출발했다. 비록 그들은 당시 비쌌던 소금을 살 여력이 없어 손등에 떨어진 땀으로 소금을 대신했지만 말이다. 이렇게 싸구려 술로만 취급받던 테킬라는 마가리타의 주재료로 쓰이면서 칵테일에 빠져서는 안 될 술로 자리매김했다. 시간이 흐르며 마가리타의 제조 방식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베이스인 테킬라를 절반 이상 넣는 방식에는 변함이 없다.

 

깊은 맛과 더불어 가슴 아린 이야기까지 담긴 풍부한 매력의 마가리타. 기자는 글만으로 오롯이 느낄 수 없는 이 술의 매력을 직접 맛보고자 신촌의 칵테일 바 ‘Thinking Inside the Box’를 찾았다. 라임·레몬·딸기 마가리타가 있었지만, 정통의 맛을 경험하고자 라임을 택했다. 곧이어 입구가 넓고 허리가 좁은 잔에 담긴 마가리타가 나왔다. 바의 붉은 빛 조명을 배경으로 초록빛과 레몬 빛이 오묘하게 섞인 액체가 살얼음과 섞여 찰랑대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마가리타를 마실 때는 술과 함께 잔 주변에 묻힌 굵은 소금까지 꼭 입에 머금는 게 포인트다. 이 점을 유념해 마가리타 한 모금을 조심스레 넘겼다. 달콤함과 라임이 주는 짜릿한 산미가 입에 감돌았다. 라임 모히토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마가리타만의 풍미는 목을 넘어가면서 그 빛을 발한다. 라임의 향에 숨겨져 있던 테킬라의 씁쓸한 맛과 알코올 향이 잠시 지나다가, 곧 혀끝을 감싸는 소금의 저릿한 짠맛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술 한 모금으로 이렇게 다양한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기자의 마가리타 한 잔을 더욱 반짝이게 해 준 것은 마가리타의 맛만큼이나 다채로웠던 그 날의 이야기다. 달콤한 사랑 이야기와 씁쓸하고 짠내 가득한, 아픈 기억이 한데 얽혔다. 마가리타와 닮은 ‘달콤하고도 씁쓸한’ 기억의 공유는 술자리란 단어로 매듭짓기 아까운, 초가을의 반짝이는 순간으로 남게 됐다.

어쩌면 존에게도 마가리타는 23년 동안 간직해 온 연인에 관한 기억을 담은 유형의 결실이 아니었을까. 잊고 싶지 않았을 그녀와의 달콤한 순간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치유되지 않는 쓰디쓴 아픔과 그녀를 향한 그리움이 그 재료였을 테다.

 

형용하기 힘든 외로움이 찾아온 날 밤, 혹은 큰 상처를 받고 힘겨워진 날 밤, 존과 마가리타의 순수하고도 진실한 사랑 이야기가 담긴 마가리타 한 잔을 머금어 보는 것은 어떨까. 달콤함과 씁쓸함이 한데 담긴 그 한 잔으로, 삶의 쓴맛에 못 이겨 잊고 있던 달콤한 기억을 되새길 수 있는 밤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글 민수빈 기자
soobni@yonsei.ac.kr 

사진 양하림 기자
dakharim0129@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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