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부 강리나 기자 (불문·18)

“아 행복했던 날들이었다. 꿈만 같았었지 이제 더는 없겠지만”. 밴드 ‘데이식스’의 앨범 『Remember Us : Youth Part 2』에 실린 타이틀곡 「행복했던 날들이었다」의 가사다. 기자 생활 마무리를 2개월여 앞둔 지금, 돌아보면 연세춘추에서 학보사 기자 생활은 정말 ‘행복한 날들’이었다.
 

물론 모든 기억이 아름답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준비했던 아이템이 무산됐을 때도 있었고 다 써둔 기사가 발행 취소되기도 했다. 냉정한 취재원의 태도에 상처받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 기억들마저 행복한 시절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아마 철없던 21살 학보사 기자를 놀라울 만큼 성장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기성 언론처럼 일반 사회 아이템을 다루는 사회부로의 배정은 그야말로 날벼락과도 같은 일이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은 교과서에서 접한 것이 전부였다. 누군가 “사회에 관심을 가져야 하나요?”라고 물으면 “네”라고 답할 수는 있지만 “왜 관심을 가져야 하나요?”라는 말에는 답할 수 없던 때였다. 사회에 대해 알지 못하고, 알아야 하는 이유를 제시할 수도 없는 사람이 기사를 쓰는 것이 맞는지 내게 수도 없이 질문했다. 그렇지만 답은 구할 수 없었다.
 

그래서 기사 준비에 더 매달렸다. 독자에게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사각지대에 놓인 장애인 콜택시, 미등록 이주 아동, 유기동물 보호소 등에 대해 쓰면서 놓치는 부분은 없는지 몇 번이고 다시 확인했다. 독자에게 정보를 전달하려면 기자가 모르는 부분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기자 생활을 하는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기성 언론의 기사와 보고서, 통계자료를 읽었다. 직접 부산에도, 사설 유기동물 보호소에도 다녀왔다. 그러면서 알았다. 우리가 소위 말하는 ‘사회’가 우리들의 삶이 펼쳐지는 그 모든 시간과 공간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을 뿐, 우리가 살아가는 그 모든 순간이 ‘사회’ 그 자체였다. 사회적 약자가 멀리 있지 않다는 것도 알았다. 약자는 어떤 형태로든 늘 우리 주변에 있었다. 기사를 준비하며 처음 장애인 콜택시를 접했다고 생각했지만, 등굣길에 늘 캠퍼스 안에서 보던 노란 택시가 바로 그것이었던 것처럼.
 

네이버에 접속하면 누구보다 빨리 연예면으로 손가락을 움직이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 사회면을 읽고 있다. 아무 생각 없이 걷던 길거리에서, 아무 생각 없이 어울리던 사람들 사이에서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게 됐다. 마냥 철부지였던, ‘나’만 생각하고, 앞만 볼 줄 알았던 사람이 변하고 있다. 그렇게 성장하는 중이다.
 

하지만 여전히, ‘좋은 기사를 썼는가?’에 대한 답은 얻지 못했다. 17개의 기사, 원고지 400매에 가까운 기사를 썼지만, 아직도 어렵다. 기자 생활을 마무리할 때까지 답은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막연히 드는 생각은 이렇다. 좋은 기사는 기자가 결정하지 않는다. 독자들이 판단하는 것이다. 독자가 새로운 사실을 알고 놀랐다면, 기사로 인해 작은 변화라도 겪게 된다면 그것이 독자에게 유의미하고 좋은 기사가 되지 않을까, 하고 어렴풋이 생각할 뿐이다. 2개월 후면 나는 ‘연세춘추 사회부 기자’라는 직함을 내려놓아야 한다. 행복했던 날들이었다. 취재를 위해 공부하던 순간이, 기사를 쓰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던 순간이, 기사를 완성하고 발행하기 위해 매주 밤을 새웠던 순간이. 춘추에서의 기자 생활이 하나도 빠짐없이 그랬다.
 

꿈만 같았다. 21살의 미숙한 기자에게 과분하다고 여겨졌던 일을 마치고 칭찬받았을 때, 취재하는 동안 관심 가져줘 고맙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리고 지금은 단잠을 자며 꾸는, 아주 찬란한 꿈의 막바지에 다다를 때처럼 아득한 기분이다. 아마 3학기 동안 나의 모든 일상을 차지했던 취재와 기사 쓰기가 사라질 것이 믿기지 않아 그런 듯싶다.
 

그리고 꿈이란 것이 그렇듯 연세춘추에서의 기자 생활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취재원에게 모진 말을 듣는 순간도, 기사가 마음껏 써지지 않아 좌절하는 순간까지도. 더 넓은 시야로 사회를 볼 수 있게 됐지만 모든 내용을 담지 못해 아쉽고, 더 많은 독자가 기사를 읽지 않았다는 사실이 슬프다.
 

그러나 나를 성숙한 어른으로 만들어줬다는 점에서 학보사 기자 생활을 행복한 순간으로 정의하고 싶다. 그리고 이렇게 연세춘추 안에서 기자가 꿨던 달콤한 꿈에서 깨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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