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부종합전형 폐지론, 과연 정시가 답일까?

 

조국 법무부 장관의 자녀 입시 부정 의혹으로 입시제도가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조 장관 부부가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자녀의 입시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학부모 간의 인맥을 이용해 고등학생을 논문 제1저자로 올리고, 교수 지위를 이용해 동양대 총장 표창장을 위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이에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지난 26일 전국 13개 대학에 대해 학생부종합전형 실태를 조사할 것이며, 생활기록부 비교과 영역을 대입에 반영하지 않는 등의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조 장관의 딸 조씨는 지난 2010년 ‘입학사정관제도’를 통해 고려대에 입학했습니다. 입학사정관제도는 학생들의 역량을 성적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비판을 수용해 만들어졌습니다. 교내외 활동 등을 통해 학생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겠다는 게 취지입니다. 그러나 이는 곧 ‘스펙 경쟁’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현재는 입학사정관제도와 비슷한 학생부종합전형이 남아있습니다. 많은 수도권 대학이 학생부종합전형 비율을 꾸준히 늘려왔습니다. 지난 2019학년도 우리대학교와 고려대, 서울대는 평균 58%의 학생을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선발했습니다. 2015학년도 38.9%에 비해 19.1%p 늘어난 수치입니다.

학생부종합전형은 생활기록부와 자기소개서, 교사추천서를 심사하고 최종적으로 면접을 통해 학생을 선발합니다. 입학사정관제도와 다른 점은 생활기록부와 자기소개서에 교내 활동만을 기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일부 대학 특기자 전형을 제외하면 부모의 사회적 지위를 암시하는 내용이나 교외 수상실적, 공인 어학성적을 기재하는 것은 엄격하게 금지됩니다. 

그런데도 학생부종합전형은 특목‧자사고 학생들에게 지나치게 유리하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합니다. 특목·자사고에는 일반계고등학교보다 교내대회 등 비교과를 위한 프로그램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일각에서는 수시를 대폭 축소하고 정시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정량화된 시험을 통해 학생을 평가하는 것이 가장 공정하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그런데 정시는 과연 수시보다 공정할까요? 오히려 정시보다는 수시가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유리합니다. 지난 2017년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54개 대학에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입학한 학생 중 소득분위 1~4분위 학생이 차지하는 비율은 27%입니다. 이는 정시에 비해 5.7%p 높은 수치입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학생이 차지하는 비율도 정시는 1.7%에 불과하지만, 학생부종합전형은 4.3%를 차지합니다. 수시냐 정시냐를 두고 싸우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를 참고한 제도를 도입하자는 의견도 있습니다. 바칼로레아는 포괄적이고 철학적인 주제에 대해 학생이 논술하기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취지의 제도가 도입되더라도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상 알고 있습니다. 해방 이후 총 16번 대대적인 대입제도 변화가 이뤄졌습니다. 또 각 대학이 각자의 전형으로 학생들을 뽑습니다. 그러나 개천에서 용 나기는 점점 어려워져만 갑니다.

사회적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거의 모든 이들이 자녀의 대학진학을 두고 ‘총력전’을 벌입니다. 학부모는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고등학교, 심지어는 유치원에서부터 대학입시를 위해 투자합니다. 이 ‘투자 싸움’에선 손에 쥔 자본이 적은 저소득층이 패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총력전이 벌어질까요? 고소득층이 사회적 지위와 문화적 자본을 세습하기에 가장 좋은 수단이 대학입시기 때문입니다. 지난 2017년 한국경제연구원 이진영 부연구위원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소득이 상위 50%에 해당하는 계층의 경우 자녀의 교육연수가 1년 증가하면 계층 대물림 확률이 최대 7.0% 증가했다고 합니다. 반면 저소득층의 빈곤 대물림 확률은 학벌이 높아진다고 해서 줄어들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고학력·고소득자일수록 사교육에 높은 비용을 투자하는 이유입니다. 가구소득이 월 200만 원 미만인 초중고 학생의 사교육 참여율이 43.1%인데 비해, 월 800만 원 이상이면 83.9%에 달했습니다. 사교육비도 5배 이상 차이가 납니다.

흔히 교육을 사다리에 비유합니다. 계층을 이동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수단이라는 것입니다. 좁은 사다리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대신 막힌 벽을 뚫기 위한 개혁이 필요합니다. 개천의 이무기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사다리 전쟁’을 끝내는 방법입니다.

 

글 민소정 기자 
socio_jeong@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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