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이어지는 조마이섬의 『모래톱 이야기』

지난 1966년 발표된 김정한의 단편소설 『모래톱 이야기』는 삶의 터전을 지키지 못하는 조마이섬 사람들의 이야기다. 갈밭새 영감을 포함한 조마이섬 사람들은 집도, 땅도 소유하지 못한다. 이들은 늘 삶의 터전에서 내쫓길 불안을 안고 산다. 

 

을숙도 주민의 눈물, 낙동강 하굿둑

 

“우리 조마이섬 사람들은 
지 땅이 없는 사람들이요.
와 처음부터 없기싸 없었겠소마는
 죄다 뺏기고 말았지요.”
… (중략) … “쥑일 놈들”

 

갈밭새 영감은 땅에 대한 울분을 토한다. ‘땅’은 단순한 토지 이상의 의미다. 땅은 삶의 공간 그 자체다. 섬에서 사람이 살 수 있도록 땅을 일군 이는 갈밭새 영감으로 대표되는 조마이섬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에게 자신의 집을 ‘내 것’이라 부를 권리는 없었다.

『모래톱 이야기』의 배경 조마이섬은 실재한다. 남해와 낙동강 하류가 맞닿는 곳에 있는 ‘을숙도’를 모티브로 했다. 주민들을 내모는 권력자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둑’과 땅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지 못하고 내몰리는 주민들. 이 두 가지 소재는 지난 1983년부터 1984년까지 진행된 ‘낙동강 하구언(하굿둑) 주민 생존권 투쟁’에서 재현됐다.

기자는 자신의 땅을 소유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공간, 을숙도로 발을 옮겼다. 부산 하단역에서 버스를 타고 낙동강 하굿둑 위 도로를 10여 분 달리면 을숙도에 다다른다. 부산 육지와 을숙도를 잇는 낙동강 하굿둑은 을숙도 주민들의 눈물 위에 지어졌다. 지난 1983년 신군부 정권은 용수 공급을 확대하고 교통을 개선하겠다며 하굿둑을 건설했다. 이 과정에서 을숙도 주민들은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고 강제로 쫓겨났다. 부산 당국은 국유지인 하천 부지에 주민들이 불법 건축물을 짓고 살았다며 온전한 보상을 해줄 수 없다고 했다. 농지를 잃으면서 주민들이 보상받아야 하는 개간비, 실농비* 등 복잡한 문제는 이농비에 해당 비용이 모두 포함됐다며 맥없이 일축됐다. 농사짓던 땅과 집을 다 잃은 사람들에게 고작 500여만 원만 쥐어졌다.

 

▶▶하단동과 명지동 사이를 잇는 하굿둑. 이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주민 약 800명이 강제 이주 당했다.

거대한 하굿둑을 지나는 동안 기자는 조마이섬 사람들과 을숙도 주민들의 묘한 동질감에 빠져들었다. 조마이섬 사람들은 살기 위해 둑을 부쉈다. 을숙도 주민들은 둑 때문에 삶의 터전을 빼앗겼다. 무력을 행사하는 권력자 ‘앞잡이’에게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고 외치던 조마이섬 사람들. 제대로 된 보상 없이 쫓겨날 수 없다고 외치던 을숙도 주민들.

을숙도를 일궜던 사람들은 일순간 국유지를 점거한 불법 거주민이 됐다. ‘불법’을 범한 을숙도 주민들은 충분한 보상금 없이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일생이 녹아든 땅이었지만 그들의 땅이 아니었다. 그렇게 을숙도의 ‘갈밭새 영감’들은 국가 권력에 등 떠밀려 떠나야 했다. 

 

강제로 정착한 마을에서
강제로 떠나기까지

 

“이 꼴이 되고 보니 선조 때부터 
둑을 맨들고 물과 싸워가며 살아온 
우리들은 대관절 우찌 되는기요?”
그의 꺽꺽한 목소리에는 …(중략),
그 무엇인가를 저주하듯 한 
감정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얼마나 그들의 땅에 대한 원한이 
컸던가를 가히 짐작할 수가 있었다.

 

을숙도 주민들의 이야기는 완료형이다. 빼앗기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쳤으나 소용없었다. 결국 낙동강 하굿둑이 건설돼 육지에서 을숙도로 넘어가는 길이 됐다. 그렇게 ‘을숙도 이야기’는 끝났다. 하지만 부산 북구 만덕5지구는 아직 진행형이다. 주거환경개선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주민들은 내쫓겼고, 커다란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다. 기자는 또 다른 을숙도, 만덕5지구를 찾았다.

금정산 비탈에 있는 만덕5지구는 강제 이주로 형성된 마을이다. 1972년 부산의 판자촌을 철거하면서 만들어졌다. 판자촌에서 살던 일용직 노동자, 노점상 등 서민들은 금정산 비탈로 모여들었다. 당시에는 별다른 시설 없이 토지에 줄만 그어져 있었다. 주민들은 정착하기 위해 직접 시멘트와 벽돌을 날라 집을 지었다. 그렇게 30년을 살았다. 강제로 옮겨온 곳이었지만 만덕5지구는 그들의 집이었다.

하지만 2001년부터 삶의 공간이 위협받기 시작했다. 부산시는 낡은 주거환경을 개선하겠다며 만덕5지구를 주거환경개선 지구로 지정했다. 부산시 당국은 1천500여 세대가 사는 땅을 일괄적으로 매입했다. 낡은 주택을 모두 허물고 다시 짓는 재개발이 진행됐다. 

사업 승인은 2000년대 후반 완료됐지만 갖은 이유로 공사와 보상금 지급이 지연됐다. 지난 2011년부터 보상금을 두고 주민들과 LH가 본격적으로 대립하기 시작했다. 하루아침에 갈 곳을 잃게 된 사람들에게 LH는 턱없이 낮은 보상금을 제시했다. 2011년 지급된 금액은 2007년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하고 있었다. 건설사업이 승인된 시점이 2007년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보상금은 평당 260~320만 원으로 책정됐다. 평당 시세인 500~700만 원에 한참 못 미치는 액수다. 재개발이 진행되는 동안 집값이 많이 올라 적은 보상금으로는 턱도 없었다. 만덕5지구 주민들은 끊임없이 집회를 열었다. 만덕주민공동체를 꾸려 철탑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무용지물이었다. 끝내 만덕5지구를 지키던 17가구는 7가구로, 다시 네 명으로 줄었다. 폐허가 돼가는 마을에서 주민들은 마지막 남은 건물의 옥상에서 반대를 부르짖었다.
 

▶▶만덕5지구는 강제 이주자들의 새로운 터전이었다. 그러나 2001년 부산시는 다시 ‘개발’을 목적으로 그들을 쫓아내기 시작했다.

“없는 놈이 할 수 있나. 그저 이래 죽고 저래 죽는 기지 머!”
“이 개 같은 놈아, 사람의 목숨이 중하냐, 네놈들의 욕심이 중하냐?”

 

하지만 만덕5지구 주민들은 저항할 수 없는 권력 앞에 맥없이 스러졌다. 만덕5지구를 둘러보던 기자는 한 주민의 부름에 잠시 멈춰 섰다. 그는 무슨 일로 왔는지 물으며 “이곳의 일에 바깥사람들은 관심이 없다”며 운을 뗐다. 만덕5지구에서 벌어진 일을 한참 설명하던 그는 “공기도 좋고 살기 좋았던 동네지만 이런 모습은 아니었다”며 이야기를 끝맺었다. 삶의 터전에서 내몰린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렇게 마무리되는 중이다. 

 

알지도 못하게, 권력에서 권력으로

 

<섬 얘기>란 제목의 그의 글은 
결코 미문이 아니었다. 
그러나 내용은 끔찍한 것이라 생각했다. 
일제 때는 억울하게도 
일본사람의 소유가 되어 있다가
해방 후부터는 어떤 국회의원의 명의로 둔갑이 되었는가 하면,
그 뒤는 또 그 조마이섬 앞강의 매립허가를 얻은
어떤 다른 유력자의 앞으로 넘어가 있다든가 하는 …

 

갈밭새 영감의 손자 건우의 <섬 얘기>에는 조마이섬 주인 변천사가 기록돼 있다. 삶의 터전에서 서민들이 소외될 때 땅은 권력자의 손에서 다른 권력자의 손으로 넘어갔다. 조마이섬 사람들이 ‘그저’ 땅에서 사는 동안 주인은 일본인에서 국회의원으로, 다시 유력자로 변한다. 땅에서 사는 사람들이 주인이 아니다. 땅에서 누가 살든 소유권은 권력자들의 손을 오간다. 

부산의 땅 잃은 시민들은 오늘날에도 투쟁하는 중이다. 부산시청 시민광장은 그들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시민광장에는 ‘풍산 그룹이 특혜를 얻는 센텀2지구 개발을 멈추라’는 현수막이 여럿 걸려 있다. 부산시는 현재 센텀2지구를 개발하기 위한 기초작업을 진행하는 중이다. 센텀2지구는 반여·반송·석대동 일대 194만 평을 일컫는다. 이곳에 신성장 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것이 부산시의 설명이다. 부산시 당국은 산업단지 조성을 위해 부지를 소유한 풍산 그룹에 4천895억 원의 보상금을 지급하려 한다. 

해당 부지는 지난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이 약 230억 원에 풍산 그룹으로 넘긴 땅이다. 국가에서 기업으로 소유주가 바뀐 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돼 엄청난 이익을 남기게 된 것이다. 부산시의 행보를 두고 특혜라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산업단지 조성을 위한 것이라는 부산시의 설명과 맞지 않게 상대적으로 교통이 편리한 부지의 중심에 주상복합단지 건설이 예정돼 있다. 이른바 ‘노른자 땅’에 주거용지가 설정된 것이다. 산업 성장을 위한 개발이라는 부산시의 설명에 의문이 들 여지가 충분하다. 삶의 공간인 땅이 특정 기업을 위한 특혜와 개발이익을 남기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했다.

센텀2지구에 지어진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도, 주거 공간으로 땅을 공유하는 부산 시민도 찬성하지 않는 계획이다. 시민광장에 현수막을 걸고, 부산시청 앞에서 집회를 진행하면서 시민들은 땅을 돌려 달라 끝없이 외친다. 그러나 사람들의 반대를 뒤로하고, 센텀2지구 개발은 계속 추진되는 중이다. 부산시장이 바뀌어도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땅을 소유해야 하는 사람들,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소유권이 없다. 땅은 국가와 기업이라는 권력자들의 손을 오간다. 사람들이 목청껏 반대를 말해도 닿지 않는다. 

땅은 삶의 공간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삶의 공간에 대한 최소한의 소유권조차 인정받지 못했다. 갈밭새 영감은 둑을 무너뜨리려는 ‘앞잡이’들과 실랑이를 벌이다 체포됐다. ‘앞잡이’들은 누군가의 삶의 공간을 침범한 존재였다. 1960년대 작가가 묘사했던 모습은 수십 년이 지나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반복됐다. 사건의 장소만 달랐다. 땅을 가진 권력자, 삶의 공간에 대한 소유권 없이 쫓겨나는 사람들. 터전을 상실한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 땅이 이곳 사람들의 땅이 아니랬지? …(중략) 그러나 두구 봐. 
언젠간 이 땅의 주인인 
너희들의 것이 될 거야.”


소설의 화자인 ‘나’는 자신의 학생 건우에게 언젠가는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땅의 주인이 될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소설이 발표된 지 53년, 삶의 터전에서 내몰리는 조마이섬 사람들의 ‘모래톱 이야기’는 계속 반복되는 중이다. 

 

 

*실농비: 이농비는 당해 지역 농민이 공익사업의 시행으로 인해 농업을 계속할 수 없게 돼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면 받는 보상을 의미한다. 실농비는 하천개발 등의 국가적 사업으로 인해 농사를 짓던 사람이 농토를 잃으면 얻게 되는 손해비용이다.

 

글 강리나 기자
lovelina@yonsei.ac.kr

사진 박민진 기자
katarina@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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