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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았던 결혼이주여성의 아픔그들은 왜 가정폭력에 저항할 수 없었나
  • 민소정 박준영 기자
  • 승인 2019.09.08 22:22
  • 호수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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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SNS에 퍼진 한 영상이 크게 이슈화됐다.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여성이 배우자에게 무차별적으로 폭행당하는 장면이었다. 피해자는 경찰 조사에서 “가정폭력으로 신고하면 불법체류자가 될까봐 견뎠다”고 밝혔다. 매매혼에 가까운 중개 과정부터 배우자에게 종속되도록 설계된 제도 등이 결혼이주여성들을 폭력에 저항할 수 없도록 만든다.

상품이 된 이주여성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18년 기준 국내 결혼이민자는 총 15만 9천206명, 이 중 여성 결혼이민자는 13만 2천391명에 이른다. 이 중 상당수가 사설 국제결혼 중개업체를 통해 한국인 배우자를 만난다. 2018년 여성가족부에서 발표한 ‘전국다문화가족실태조사’에 따르면 결혼이주여성 중 25.4%가 결혼중개업체를 통해 남편을 만났다고 답했다. 특히 베트남 출신 국적 이민자 중 51.9%가 결혼중개업체를 통해 배우자를 만난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통계청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6년 말 기준 국내 국제결혼 중개업체는 362개, 2014~2016년 이들 업체 명단에 신규 등록된 한국인 이용자는 2천705명이었다. 이들 중 96.3%가 결혼에 성공했다.

사설 업체의 중개 행태가 매매혼에 가깝다는 비판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사실상 한국인 남성이 외국인 여성을 ‘선택해 사 오는’ 방식이라는 지적이다. 지난 2010년 캄보디아 정부는 집단 맞선을 인신매매로 보고 한국인과의 결혼을 금지했다. 한국 남성이 한 번에 여러 명의 캄보디아 여성과 맞선을 보고 배우자를 고르는 방식을 금지한 조치다. 한국에서 관련 법률을 개정한 후에야 양국 국민 간 결혼을 재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우리 정부는 2012년 「결혼중개업의 관리에 관한 법률」을 개정했다. 한 업체가 한국인 이용자 한 명에게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2명 이상의 여성을 한 번에 소개하는 행위를 금지했다.

그러나 결혼중개가 디지털화하면서 해당 법률은 유명무실해졌다. 베트남 국제결혼 전문 ‘Y’업체 홈페이지에 게시된 바에 따르면, 남성은 온라인으로 베트남 여성 3명의 사진을 미리 고른 후 베트남을 방문해 해당 여성들과 맞선을 본다. 반면 베트남 여성과 가족은 남성의 신상정보를 보고 맞선을 할지 여부만을 결정할 수 있다. 업체는 법망을 피하려고 장소를 이동하거나 서로 다른 날에 맞선을 진행한다. 사실상 한 업체가 한국인 이용자 한 명에게 여러 여성을 동시에 소개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결혼 과정에서 소요되는 비용을 모두 남성이 지불한다는 점도 매매혼의 근거다. 중개업체의 주선으로 여성이 사는 나라에 남성이 두 차례 방문해 맞선과 결혼식을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중개비는 물론 신부 왕복 교통비, 데이트 비용 등을 모두 남성이 지불하게 돼 있다. 심지어 신부 맞선비와 가족에게 줄 용돈까지 부담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인 남성이 여성을 만나는 대가로 돈을 지불하도록 하는 셈이다. ‘H’업체는 홈페이지에 ‘신부에게 별도로 요구하는 금액 일절 없습니다’라는 안내 문구를 게시하기도 했다.

남성이 ‘구매자’가 되다 보니, 중개 과정에서 성을 상품화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지난 8월 민주언론시민연합(아래 민언련)에서 실시한 유튜브 모니터링 결과에 따르면, 많은 국제결혼 중개업체들이 영상매체로 여성을 향한 왜곡된 시각을 조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체들은 여성들의 자기소개 영상을 유튜브 채널에 게시했다. 여성의 외모와 나이를 품평하는 중개업자의 목소리가 포함된 영상도 있었다. 민언련은 모니터링 결과를 두고 “국제결혼중개업체들이 여성들의 신체조건을 공개하고 품평하며 등급을 매기고 있다”고 밝혔다. 이주민 지원 공익센터 ‘감동’ 이현서 변호사는 “남성의 선택으로 혼인이 결정된다면 결혼이주여성을 혼인과 출산, 가사 노동을 위한 도구적 존재로 평가하는 분위기가 강화되기 마련”이라며 “이 때문에 ‘돈을 비싸게 주고 사 왔는데 내 말을 안 듣는다’는 이유로 가정폭력이 발생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매매혼 이후 마주한 현실은…
가정폭력 당하고도 말 못 해

중개업체를 통해 한국에 온 결혼이주여성들은 심각한 가정폭력 위협에 직면한다. 지난 2018년 경찰청에 집계된 결혼이주여성 가정폭력 사건은 1천273건이다. 이주여성이 경찰에 신고하는 것은 한국 여성보다 더 어렵다. 매매혼과 유사한 결혼중개 과정부터 이들은 배우자와 동등한 결혼 당사자가 아니었다. 여기에 이들을 ‘한국인의 배우자’로만 보는 현행 제도까지 더해져 가정폭력으로 인한 이주여성들의 고통은 가중된다. 이들이 가정폭력에 대응하지 못하는 구체적인 이유로는 ▲불합리한 체류 심사 ▲경제적 종속이 거론된다.

결혼이주여성을 대상으로 한 불합리한 체류 심사는 그들이 폭력에 저항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현행법률상 이주여성은 자신의 귀책사유로 혼인 관계가 해소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만 증명하면 계속 체류할 수 있다. 그러나 출입국 사무소는 한국인 남성 배우자에게 귀책사유가 있다는 사실까지도 이주여성이 증명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배우자의 가정폭력으로 이혼을 하는 경우, 그것을 피해자가 입증하기는 쉽지 않다. 법무법인 ‘온‧세상’ 김재련 변호사는 “일일이 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발급받아 두거나 수시로 폭언을 녹음하지 않는 이상 배우자의 유책 사유를 증명할만한 객관적 증거를 확보하기 어렵다”며 “민법상 이혼 사유로 성격 차이를 두고 있는 만큼 어느 일방의 귀책사유로 이혼하는 경우가 아니라 하더라도 대한민국에 계속 체류하도록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여성들이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종속돼있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다. 이주민센터 ‘친구’ 이진혜 변호사는 “경제적 학대 역시 가정폭력의 한 형태이기 때문에 경제적 자립 여부는 가정폭력의 발생비율과 직결돼 있다”고 밝혔다. 이주여성들은 자체적인 경제활동에 나서기 어렵다.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기 때문이다. ‘전국다문화가족실태조사’에 따르면, 필리핀 이주여성 중 51.6%가 ‘자녀 또는 가족을 돌봐야 해서 구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변했다. 이현서 변호사는 “결혼이주여성은 대부분 배우자와 나이 차가 많이 나고, 여전히 가부장적인 문화 때문에 육아와 가사노동에 전념하기를 요구받는다”며 “한국어 소통이 쉽지 않고, 직업을 소개해줄 지인도 적어 본국에서의 경력을 활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시간을 내 구직에 나서려 해도, 그럴 능력이나 자금이 부족하다. 한국어를 배우기 이전 단계의 여성들은 의사소통 장애에 부딪혀 자력으로 취직하기가 어렵다. 배우자로부터 넉넉한 경제적 지원을 받는 것도 아니다. 지난 6월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결혼이주여성 체류실태 결과발표 및 정책토론회’에 따르면, 가정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변한 이주여성 중 33.3%가 ‘배우자가 필요한 생활비나 용돈을 주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반복되는 가정폭력, 해결법은 이주여성의 자활?

정부는 각종 교육 프로그램으로 이주여성 문제해결을 도모하고 있다. 그러나 프로그램 대부분이 피해자인 이주여성만을 대상으로 한다. 정작 ‘교육’이 필요한 한국인 남성을 대상으로 하는 일은 드물다. 현재 법무부가 진행 중인 국제결혼 안내프로그램은 총 4시간이다. 그중 인권 교육은 1시간에 불과하다. 교육 대상자도 중국, 베트남, 몽골 등 특정 7개국 출신의 배우자와 결혼하는 한국인으로 제한하고 있다. 다문화가족정책 역시 이주여성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노원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 김지혜 팀장은 “결혼이주여성과 남성 배우자를 위한 프로그램 비율은 약 8:2 정도다”며 “남성 배우자가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주로 부부교육이나 가족문화체험프로그램 등의 가족 단위 프로그램뿐”이라고 말했다. 남성 배우자가 단독으로 듣는 교육은 사실상 없는 셈이다. 김 팀장은 “남성 배우자의 참여율이 워낙 낮아 배우자를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은 늘릴 수 없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이주여성들은 가정폭력을 피해 도움을 요청할 ‘이웃’조차 찾기 힘들다. 지난 2018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농촌의 사회통합 실태와 정책 개선방안’에 따르면, 농촌 이주여성이 마을주민들과 갈등을 경험한 비율은 15.6%, 차별이나 무시를 당한 경험이 있는 비율은 23.2%로 나타났다. 이주여성은 여전히 지역사회에서 ‘이방인’임을 보여준다. 한국이주여성 인권센터 한가은 사무국장은 “이주여성들만 교육을 받고 홀로 한국사회에 알아서 동화돼야만 하는 현실이 이주여성들의 정착에 어려움을 준다”며 “가족 구성원들과 시민들 역시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인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베트남은 2012년 50세 이상 한국 남성과의 국제결혼을 법으로 금지했다. 자국 출신 이주여성들이 폭력에 심각하게 노출된다는 이유였다. 정작 폭력의 가해자에 대해 우리나라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결혼이주여성이 한국인의 ‘배우자’로만 여겨질 때 그들은 인권 사각지대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들이 더는 폭력에 내던져지지 않도록 제도적‧인식적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글 민소정 기자
socio_jeong@yonsei.ac.kr
박준영 기자
jun0267@yonsei.ac.kr

그림 민예원

민소정 박준영 기자  socio_jeong@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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