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청문회, 8년 만에 돌아온 변명

‘청문회’가 뜨거운 이슈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입니다. 포탈에서, 뉴스룸에서, 심지어 대학 강의실에서도 청문회 이야기는 끊이질 않습니다. 그런데 비슷한 시각, 숨죽여 지나간 청문회가 있습니다. 지난 8월 27~28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참사 진상규명 청문회’(아래 가습기살균제 청문회)입니다.

이번 가습기살균제 청문회는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가 주최했습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가 공식적으로 확인된 지난 2011년 이래로 특조위 차원의 청문회는 8년 만에 처음입니다. 특조위는 그간 쌓인 방대한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정부와 기업의 책임을 물었습니다. 폐가 굳어 죽어간 이들의 이름이 불렸고, 섬유화된 폐 사진이 화면에 오르내렸으며, 증인들의 아픈 목소리가 청문회장에 울렸습니다. 피해 사실이 무더기로 청문회장에 소환됐습니다. 

가습기살균제의 군부대 내 사용과 피해 여부에 관한 진상규명이 주요 쟁점이 되기도 했습니다. 지난 2011년 이전까지 해·공군 의무실 등 55곳서 문제가 된 가습기살균제 2천4백여 개가 사용됐다는 사실이 밝혀져 큰 충격을 줬는데요. 심지어 이는 육군 부대를 포함하지 않은 수치입니다. 현재 정부가 인정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835명. 그 안에 포함되지 못한 이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가습기살균제는 우리의 일상에 침투한 참사입니다. 누구도 안전하지 않고, 그래서 가습기살균제 청문회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가습기살균제 청문회 현장은 소외됐습니다. 지난 8월 27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내달 2~3일 이틀간 실시 예정’이라는 뉴스가 헤드라인을 장악했지만, 가습기살균제 청문회의 생방송은 전파를 타지 못했습니다. 

가습기살균제 청문회를 생중계한 방송국은 2곳에 그쳤습니다. 단지 지금이라서 외면받는 것이 아닙니다. 3년 전에도 그랬기 때문이죠. 민주언론시민연합의 자료에 따르면 주요 보도방송국* 가운데 지난 2016년 ‘국회 가습기살균제 특위 청문회’ 당시 생중계를 내보낸 방송국은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방송국은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더는 관심이 필요한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일까요? 말할 길이 끊기자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의 고통은 사람들에게 전달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아픔은 잊혔고, 그들만의 이야기로 고립됐습니다. 

국민적 관심에서 소외된 공개 청문회가 좋은 성과를 낼 리 만무합니다. 청문회 자리에 소환된 답변자들은 진실한 사과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명확한 해명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가장 많은 피해자를 만든 기업, 옥시레킷벤키저(아래 옥시RB) 외국인 임원 3명은 모두 불참했습니다. 그나마 청문회에 출석한 박동석 옥시RB 대표이사는 “처음 제품이 출시됐을 때 정부가 안전 기준을 만들고 철저히 관리·감독했다면 이 같은 참사가 일어날 수 있었을까 싶다”며 책임을 정부에게 돌렸습니다. 여전히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습니다. 

그렇게 8년을 기다린 청문회는 조용히 막을 내렸습니다. 청문회에서 확인한 것은 정당한 보상과 가해자 처벌을 위해서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사실뿐입니다. 

 

 

*KBS, MBC, SBS, JTBC, TV조선, 채널A, MBN, YTN 등 총 8개 방송국을 표본으로 조사한 자료다. 

 

글 김민정 기자
whitedwarf@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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