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워킹홀리데이의 이면, 노동착취에 시달리는 청년들

워킹홀리데이란 협정체결국 만 18~30세청년들이 문화체험과 여행을 목적으로 해외에 1년간 체류하는 동안 경비 마련을 위한 취업을 허용하는 프로그램이다. 지난 2018년 4만 명이 넘는 청년들이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청년들에게 워킹홀리데이는 여행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매력적인 기회다. 그러나 일부는 기대와 다른 현실에 좌절한 채 한국으로 돌아온다. 

 

‘홀리데이’ 찾아 호주로 떠난
청년들의 ‘워킹’ 수난 일기

 

외교부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는 23개국과 협정을 맺고 있으며, 최근 5년간 20만 명이 넘는 청년들이 워킹홀리데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중 가장 많은 청년이 떠나는 국가는 호주로, 최근 5년간 전체 워홀러 중 60%가량을 차지한다. 최저시급이 협정국 중 가장 높다는 점과 쿼터제*가 없다는 점이 유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부푼 기대를 안고 떠난 호주에서 청년들은 차가운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지난 3월 호주 브리즈번으로 4개월간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온 이모씨(26)는 본인과 주변 워홀러들이 겪은 실상을 털어놓았다. 호주에서 청년들이 마주한 현실은 ▲최저임금 미달 ▲고용계약서 미작성 ▲캐시 잡 등이었다. 지난 2017년 호주리서치센터가 발표한 「호주 한인 워홀러 실태 및 의식 조사 최종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45.1%는 법정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호주의 일자리는 사장이 호주인이거나 외국인인 업장 ‘오지 잡(job)’과 한인 사장의 업장 ‘한인 잡(job)’으로 나뉘는데, 특히 한인 잡에서 위 같은 피해가 두드러졌다. 한인 업주가 운영하는 한식당에서 근무한 이씨는 “한인 잡은 최저시급을 주는 곳이 어디에도 없었다”며 “공휴일, 주말이 따로 없었고, 야간수당도 지급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고용계약서 미작성도 큰 문제다. 우리나라 워홀러들은 52.8%가 고용계약서 없이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때 현지인 고용주의 고용계약서 작성률은 89.2%인 것에 비해 한인 고용주의 고용계약서 작성률은 34.8%에 불과했다. 이씨는 “구직활동을 하면서 고용계약서를 작성하는 곳은 본 적이 없었다”며 전반적인 고용법 위반에 대해 “한인 고용주는 일자리를 구하는 워홀러들이 많다는 점을 이용해 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외에도 한인 업주들 밑에서 종종 맺어지는 ‘캐시 잡’ 계약도 문제다. 호주 일자리는 ‘텍스 잡’(Tax job)과 ‘캐시 잡’(Cash job)으로 나뉜다. 텍스 잡은 호주 노동법이 지켜지는 일자리로, 고용주와 노동자 모두 세금을 내고 노동자는 최저시급을 보장받는다. 반면 캐시 잡은 고용주가 노동자를 정부에 신고하지 않고, 임금을 현금으로 지불하는 형태의 불법 근로계약이다. 캐시 잡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호주 노동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어 호주 내에서도 문제가 지적된다. 이씨는 “우리나라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겪는 상황과 비슷하다”며 “종종 사장이 임금을 떼어 가거나 심하면 안 주는 상황도 있다”고 말했다. 

 

▶▶ 「호주 한인 워홀러 실태 및 의식조사 최종 보고서」에 나타난 호주 한인 워홀러들이 노동자로서 겪은 대표적인 부당한 대우 통계조사다.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

 

경북대 사회학과 이소훈 연구원은 “한인 워홀러 노동착취는 외국인 노동자가 겪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의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구조적 문제로는 ▲호주의 열악한 외국인 노동환경 ▲다단계 도급관리 시스템 ▲단기적인 워킹홀리데이 프로그램 등이 있다. 

호주는 외국인 노동환경이 취약한 국가다. 외국인 노동자인 한인 청년들이 종사하는 일자리는 주로 호주 내국인이 피하는 분야다. 지난 2018년 FWO**에서 발표된 「태즈메이니아 슈퍼마켓 청소원 조달에 대한 옴부즈맨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흔히 영어가 제한되고, 호주 내 근로 경험이 거의 없어 착취에 취약한 외국인 근로자들은 청소와 같은 직종에 종사한다”고 나와 있다. 이 연구원은 “건설업·청소·요식업·유흥업 등은 호주 노동관리국인 FWO에서 정기적으로 실태조사를 할 만큼 노동법 위반이 빈번한 업종”이라며 “최근 실태조사 결과 요식업 일식 테이크아웃점은 과반수가 노동법을 지키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나아가 이 연구원은 호주의 다단계 도급 구조를 지적했다. 다단계의 도급 구조에서는 도급이 내려올수록 하청 노동자의 임금이 깎인다. 더불어 임금 체불 발생 시 고용주를 찾기 힘들어 노동자에게 불리한 구조다. 호주에는 중앙정부에서 도급 구조를 직접 관리하는 도급관리법이 없다. 이 연구원은 “건설이나 청소·농장의 경우 한인 청년들은 주로 다단계 구조에서 고용된다”고 전했다.호주 내에서도 문제 제기가 이어져 주 단위로 도급관리법을 만들려는 노력이 최근 3~4년간 있었으나 결국 제정되지 못했다. 

단기간으로 이뤄지는 워킹홀리데이 프로그램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 체류 기간이 일 년 이하로 짧다 보니 청년들은 문제가 생겨도 끝까지 해결하지 못하고 흐지부지 넘기게 된다. 실제로 이씨 역시 부당한 대우를 받았지만 결국 신고하지 않고 4개월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씨는 “부당한 대우라는 사실은 인지했지만, 한국으로 돌아오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또 한인 청년들은 호주 노동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받고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 연구원은 “체류 기간도 짧고 구제 방법도 모르는 청년들이 고용주 입장에서는 착취하기 좋은 대상”이라고 말했다.

 

신고가 답은 아닌데…
미리 정보 제공부터 해야

 

정부는 해외 취업 장려 정책으로 워킹홀리데이 프로그램을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외교부는 피해 사례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는 실정이다. 이에 한인 워홀러들조차 외교부를 신뢰하지 못한다. 지난 2015년 외교부가 실시한 ‘워킹홀리데이 실태 파악 설문조사’를 살펴보면 ‘문제를 경험했을 때 재외공관이나 영사 콜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다’는 답변은 5% 수준에 그쳤다. 

‘외교부 워킹홀리데이 인포센터(아래 인포센터)’에는 노사문제 해결방법으로 FWO 신고가 제시돼있다. 그러나 워홀러와 전문가는 FWO 신고가 답은 아니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이씨는 “한인 업주들이 처음 면접 볼 때부터 신고하지 말라는 압박을 준다”며 “신고해도 호주 법원이 영주권자 혹은 시민권자인 현지 사장 편을 들기 때문에 외국인인 워홀러 입장에선 신고를 꺼리게 된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 역시 “신고가 능사는 아니다”고 말하며 FWO 신고의 실효성을 지적했다. 노동자 입장에서 신고는 돈과 시간이 많이 소요돼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설사 FWO에 신고한다고 하더라도 원래 받아야 할 금액을 돌려받기란 쉽지 않다. FWO 홈페이지를 보면 지난 2017~2018년 조정으로 해결된 건수는 2만 7천74건에 달하지만, 실제 조사가 들어간 건수는 1천201건에 불과했다. 전체 신고접수 중 약 96%가 조정으로 끝난 셈이다. 이 연구원은 “FWO는 조직의 규모보다 예산이 훨씬 적기 때문에 접수된 신고에 대한 조사 비율이 매우 낮고, 대부분 조정으로 처리된다”며 “조정으로 해결될 경우 노동법으로 정해진 금액을 보장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호주 노동법을 잘 모르는 청년들은 FWO를 전적으로 믿다가 결국 턱없이 적은 보상액을 손에 쥐게 된다. 

이에 호주연방기관 외에 우리 정부에서 직접 관리하는 핫라인 개설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그러나 해외에서 우리 국민이 겪는 노사문제를 우리 정부가 직접 해결하기란 쉽지 않다. 인포센터 봉장종 과장은 “우리 국민이 사건·사고를 당하면 해당 국가의 법률과 제도가 우선 적용되는 것이 국제법상의 원칙”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원 역시 “호주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한국 정부에서 규제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봉 과장은 “현재 주시드니총영사관에서 워홀러, 유학생들을 위한 ‘법률상담 서비스’를 매월 제공하고 있다”며 현재 진행되는 영사관 차원의 지원을 설명했다. 

그러나 단기간 체류하는 한인 워홀러들이 신고와 소송으로 구제받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한인 청년들이 노동자로서 권익을 보호받기 위해선 현실적인 정보 제공이 우선돼야 한다. 『호주 워킹홀리데이 완전정복』 저자 강태호 작가는 “정부는 해외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워킹홀리데이의 순기능을 강조하는 측면이 있다”며 “현지 실태를 제대로 알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 역시 “사후 지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확한 정보 제공을 통한 사전 예방”이라고 강조했다. 

 

잇따른 피해 사례에도 청년들은 여전히 워킹홀리데이를 나선다. 그러나 현지에서는 청년들의 환상을 이용한 노동력 착취가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다. 청년들이 마음 놓고 워킹홀리데이를 떠날 수 있도록 정부의 보호 정책이 시급하다. 

 


*쿼터제: 호주, 덴마크, 독일, 스웨덴, 칠레 등을 제외한 모든 국가에서는 워킹홀리데이 참가자 인원을 일정 수로 제한하고 있다. 
**FWO(Fair Work Ombudsman) : 공정근로옴부즈맨


글 박준영 기자 
jun0267@yonsei.ac.kr 

그림 나눔커뮤니케이션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