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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읽기] 나 개 있음에 감사하오
  • 김병관 이희연 기자
  • 승인 2019.09.02 02:55
  • 호수 51
  • 댓글 0

‘책 덕후’라면 이런 순간이 한 번쯤은 있었을 것이다. 좋은 책을 공유하고 싶었던 순간, 나와 같은 책을 읽은 다른 이들의 생각이 궁금했던 순간. 한 권의 책을 공유한다는 건 혼자 하는 독서보다 큰 의미가 있다. 좋은 책을 나누고 싶은 당신, ‘읽기’로 소통하고 싶은 당신을 위해 『The Y』가 나섰다.

누구나 한 번쯤 써봤을 추억 속 교환일기가 떠오르는 코너. 책 한 권을 두고 두 기자가 매달 쓰는 독서 일기, 「교환×읽기」다.


<책 소개>
반려견과 함께 사는 스무 명의 시인이 모여 출간한 시집, 『나 개 있음에 감사하오』다. 시인들은 만남부터 이별까지 개와 함께한 모든 순간을 40편의 시와 20편의 산문으로 기록했다. 그들과 반려견이 함께 찍은 사진은 감동을 더 한다. 가볍게 읽기 좋은 시집이지만, 읽다 보면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 병관 기자의 <개와 인간, 유대와 배신의 역사>
:『나 개 있음에 감사하오』에 붙이는 긴 각주

반려견 인구 천만 명 시대. 오늘날 인간에게 개는 어떤 존재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개와 함께 사는 스무 명의 시인이 나섰다. 시집 『나 개 있음에 감사하오』에서 그들은 “개와 함께한다는 건 나 아닌 한 생을 돌보는 것”이고, “세상을 보는 창이 밝은색 필터를 씌운 것처럼 환해지는 일”이며, “이별의 슬픔과 사랑의 용기를 배우는 일”이라고 말한다.

3만 년 전부터 함께 살기 시작해 인간의 가장 오랜 친구인, 개. 시집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오늘날 개와 인간은 ‘동반자’ 관계지만, 언제나 그랬던 건 아니다. 시대에 따라 개와 인간의 관계는 달라져 왔다. 개와 인간이 함께 살기 시작한 순간은 어땠을까? 유대관계였지만 오늘과 같은 ‘동반자’ 관계는 아니었다.

빙하기였던 4만 5천 년 전에는 늑대가 지구를 지배하고 있었다. 무리 생활을 하는 늑대는 뛰어난 후각과 민첩성으로 사냥에 쉽게 성공했다. 무리에서 낙오된 늑대들이 3만 년 전부터 인간과 함께 살기 시작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사냥능력이 떨어지는 늑대들이 인간이 남긴 음식물로 연명하며 곁에 머무르게 된 것이다.

처음에 인간들은 늑대를 경계했으나, 늑대와 함께 생활하면 이익이 된다는 걸 금세 깨달았다. 맹수가 다가오면 늑대들이 경보 역할을 했다. 서로가 필요한 늑대와 인간은 점차 가까워졌고, 이를 기점으로 인간과 생활하는 늑대들은 야생 늑대와 유전적으로 분리되기 시작했다. 인간과의 교감능력이 높아지고, 귀와 코가 뭉툭해지며 ‘개’라는 동물이 탄생한 것이다.

인간은 개를 길들이며 문명 생활을 꽃피웠다. 사냥꾼 본능이 남아있는 개 덕에 더 많은 식량을 얻을 수 있게 됐고, 양치기 개 덕분에 가축을 기르며 정착 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 일부 학자들은 인류가 지구의 주인공이 된 계기로 ‘사피엔스-개’ 동맹을 들기도 한다. 개와 인간은 전략적인 동맹 관계를 맺으며 지구에서 입지를 다져나갔다.

그러나 인류 문명이 발전하자 동맹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인간은 개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졌다. 중세와 근대 때 개는 종교·철학적 세계관에 따라 인간보다 미천한 생명체로 여겨졌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인간의 도구로 전락했다. 먹이를 주기 전에 종을 치는 행위를 반복하면, 나중에는 종소리만 들어도 침을 흘린다는 ‘파블로프의 개 실험’이 대표적이다. 파블로프는 침 분비량을 정확히 측정하기 위해 개의 침샘에 호스를 꽂았고, 바닥을 뜯고 벽을 물어뜯는 이상행동을 보일 때까지 실험을 계속했다. 수십 마리의 개들이 파블로프의 실험실에서 죽어 나갔다.

개를 인간의 동반자라고 생각하는 오늘날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여전히 수많은 개가 실험용으로 쓰이고 있고, 강아지를 대규모로 교배·사육하는 ‘강아지 공장’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반려견을 소유물이라고 생각해 유기하거나 학대하는 문제도 계속되고 있다. 인간의 곁을 3만 년 넘게 지켜온 개, 그들에게 그토록 많은 빚을 졌는데도 말이다. 대대손손 우리에게 주기만 해온 그들에게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

유계영 시인은 시집의 프롤로그에서 “시집이 닿는 곳마다 개에 대한 사랑이 깊어지길” 꿈꾼다며 기획 의도를 밝혔다. 시집을 읽고 “개를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다양한 실천법을 상상해보길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스무 명의 시인과 뜻을 함께하며 여기에 『나 개 있음에 감사하오』의 긴 각주를 붙인다. 이 글을 읽는 사람 모두가 각자의 실천법을 상상한다면 개와 인간이 진정한 반려 관계로 거듭나는 날이 머지않을 것이다.

◆ 희연 기자의 <나 ‘달래’ 있음에 감사하오>
:너에게 쓰는 두 번째 편지

▲달래(2세/여/웰시코기)

달래야, 안녕! 언니야. 너한테 편지를 다시 쓰게 될 줄은 정말 몰랐는데, 너에게 전하는 두 번째 글을 쓰게 됐네. 너를 생각하면서 글을 쓰면 세상에 얼마나 많은 감정이 존재하는지를 알 수 있어. 그리고 그것들이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도. 널 떠올리면 마음이 행복으로 가득 차는데, 이상하게 자꾸 한쪽이 시큰해. 환하게 널 그리면서 미소 짓다가도 떨어져 있다는 걸 깨달으면서 한없이 외로워지는 거야. 주책이다. 그치.

내가 썼던 첫 번째 편지를 기억해? 재작년에 재수생이었던 내가 ‘멍멍’이라는 단어만으로 종이 한 장을 꽉 채워서 가져왔었잖아. 넌 글을 모르니까 이렇게 써야 네가 알아듣는다면서. 심지어 그 편지를 읽어주기까지 했었지. 장난 같았던 그 편지는 사실 정말로 학원에서 네 생각에 썼던 글이야. 그날 학원에서 모의고사 성적표가 나왔었거든. 원래 엄마나 아빠한테 주로 편지를 썼는데, 그날은 이상하게 자꾸 네가 생각나더라. 부모님만큼 나를 지켜준 존재가 너였으니까. 자주 아팠던 내가 힘없이 침대 위에 누워 있을 때, 남들보다 뒤처지는 나 자신을 증오했을 때, 성적표를 손에 쥐고 울고 있을 때. 그럴 때마다 너는 가만히 다가와 내게 촉촉한 코를 대고 조용하게 숨을 쉬었지. 그렇게 숨을 쉬는 것만으로 넌 내게 위로였어. 온 가족이 너와 날 보며 한바탕 웃었던 그 날 내가 너에게 읽어줬던 수많은 ‘멍멍’들은 이런 의미였어. 내 옆에 있어 줘서 고맙다고. 네가 있어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다고.

장난감을 던져주고, 같이 산책을 하고, 맛있는 간식을 주고, 시간이 되면 수영을 좋아하는 너와 물놀이를 하는 일. 나를 살게 하는 너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라곤 이런 것뿐이야. 다음에 대전에 내려갈 때는 언니가 분홍색 장난감 사 갈게. 내가 네 언니로 살 수 있게 해 줘서, 내가 네 삶의 한 부분이 될 수 있게 해 줘서 항상 고마워.

개의 시간은 사람보다 빠르게 흐르니까 나의 평생에 네가 함께할 순 없겠지. 생각하기도 싫은 그 시간이 오면, 어쩌면 내 삶에 너와 같은 아이를 다시는 들일 수 없을지 몰라. 하지만 그때도 변함없이 너는 나를 살게 할 거야. 네가 좋아했던 장난감, 환하게 웃고 있는 너의 사진을 보면 난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겠지. 형체가 없어도 너는 항상 내 삶에 함께할 거야. 그러니까 나는 너를 생각하며 매일 속으로 기도할게. “나 달래 있음에 감사하오”라고.

글 김병관 기자
byeongmag@yonsei.ac.kr
이희연 기자
hyeun5939@yonsei.ac.kr

<자료사진 YES24, 이희연>

김병관 이희연 기자  byeongmag@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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