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무심코 털어 넣는 술 한 잔은 익숙하지만, 과연 그 술의 탄생 비화에 귀 기울여 본 적이 있을까. 이런 호기심에서 출발해 그간 술과 영화를 이야기해 온 ‘술썰’이 술과 세계를 엮는 ‘세계주도(酒道)’로 돌아왔다. 어디선가 한 번은 들어보거나 마셔봤을 ‘그 술’에 얽힌 이야기에 푹 빠져보자. 아는 만큼 마시게 될 것이다.

 

첫 번째로 ‘세계주도’에서 방문해 볼 나라는 프랑스다. 총 30개의 포도 품종, 전 세계 와인 생산의 1/4을 책임지는 ‘와인 종주국’. 그런 프랑스인들에게 프랑스 안에서 가장 귀한 술이 뭔지 물으면 놀랍게도 와인이 아닌 ‘코냑’으로 답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어디선가 들어봤지만, 미지의 술, 코냑. 이 술의 탄생에 담긴 유럽인들의 지혜와 기막힌 우연, 그리고 프랑스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모든 코냑은 브랜디지만 모든 브랜디가 코냑은 아니다.’ 많은 설명이 집약된 한 마디다. 사실 코냑은 술의 이름이 아니다. 우리가 ‘코냑’으로 부르는 이 황금색 액체의 정확한 이름은 ‘Eau-de-vie de vin de Cognac’, 즉 ‘코냑 시에서 만든 와인 브랜디’라는 뜻이다. 코냑이란 이름은 사실 이 술이 태어난 프랑스의 도시 이름을 딴 것. 또 ‘와인 브랜디’는 여러 종류의 와인을 증류한 뒤 나무통에 보관해 마시는 술을 의미한다. 코냑은 브랜디 중에서도 최상의 품질과 천문학적인 가격을 자랑한다. 프랑스 샹파뉴 지역에서 생산된 와인만이 ‘샴페인’이라 불릴 수 있는 것처럼, 코냑 시에서 증류된 와인 브랜디만이 ‘코냑’이라 불릴 수 있다. 과연 코냑의 무엇이 그리 특별하기에, 작은 도시의 이름이 오늘날 전 세계 최고의 브랜디 이름으로 자리 잡은 것일까. 

그 이야기에는 네덜란드 상인들의 지혜가 있다. 16세기경 그들은 코냑 지방에 도착해 목재와 소금, 와인을 매입했다. 하지만 상인들은 발효주인 와인이 돌아가는 길에 모두 상해버릴 것을 걱정했고, 이를 증류해 운반하기로 했다. 이후 네덜란드인들은 이 와인을 ‘brandwijn’, 즉 ‘태운 와인’으로 불렀고, 이는 오늘날 브랜디의 어원이 됐다. 결국 브랜디 역시 코냑에서 탄생한 셈.

설령 상인들이 코냑의 와인을 그대로 본국에 가져갔더라도 코냑 지방은 유명해지지 못했을 것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코냑의 와인은 맛이 없기 때문이다. 바로 옆에 위치한 보르도의 와인이 ‘와인의 대명사’로 불릴 정도로 우수한 품질을 자랑하는 반면, 코냑 지방의 화이트 와인은 시큼한 맛이 강해 대중성이 떨어진다. 신맛의 원인은 코냑의 뜨거운 날씨다. 우리나라의 대구와 비슷한 분지 지형인 코냑 시는 여름 최고 기온 45℃를 기록하는, 프랑스에서 가장 더운 도시로 악명 높다. 이곳에서 뙤약볕을 오롯이 받아낸 포도는 건조한 산미만을 띤다고. 

그러나 상인들의 묘안으로 증류라는 신기술을 알게 된 코냑의 농장주들은 참나무로 엮은 나무통에 시큼한 화이트 와인과 와인 브랜디를 섞어 숙성하는 방식을 고안해 냈다. 우연히 발동된 상인들의 꾀, 코냑 시의 불볕더위로 울창하게 자란 참나무만이 가진 풍미, 그리고 숱한 시행착오 끝에 찾아낸 황금비율의 만남은 훗날 ‘생명의 물’이란 칭호를 얻는 명주, 코냑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만 만들 수 있는 술’이란 특징에도 불구하고, 코냑은 와인처럼 프랑스의 대표적 술로 인정받지 못했다. 정작 프랑스인들은 코냑을 즐겨 마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수가 40℃에 가까운 독주를 그들은 반기지 않았다. 오히려 코냑을 원했던 나라는 바다 건너 영국이었다. 영국에서는 이미 프랑스보다 브랜디가 대중적인 술이었기 때문이다. 가정집에서도 ‘코디얼(Cordial, 브랜디에 당밀 혹은 허브를 섞어 마시는 음료)’이 치료제 용도로 자주 사용되는 등 영국 내 브랜디의 수요는 대단했다. 이런 판세를 읽은 상인들은 곧 코냑을 비싼 값에 영국에 팔기 시작했다. 풍부한 향과 원숙함을 품은 맛에 열광한 영국인들은 수입한 코냑을 장기간 숙성해 더욱 질 좋은 코냑을 만들어냈고, 이때 만들어진 코냑은 오늘날 세계 5대 코냑 기업의 시초가 됐다.

흥미로운 점은 오늘날 영국 기업이 판매하는 유명한 코냑의 이름이 대부분 프랑스어라는 사실이다. 19세기에 접어들어 코냑의 판권과 유통권 대부분이 영국에 귀속된 이후에도 이들은 ‘프랑스’란 정체성을 벗기지 않았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예컨대 40년에서 100년 정도로 제일 오래 숙성시킨 코냑에 ‘루이 13세’, ‘나폴레옹’이란 이름을 붙이기까지 했다. 궁금해졌다. 왜 영국은 끝까지 코냑이란 술에 프랑스를 덧씌우고자 했던 걸까. 

 

기자는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더운 공기가 거리를 온통 채운 한여름 밤, 신촌의 ‘하우스라운지’를 방문했다. 처음 코냑을 마셔본다는 말에 사장님은 코냑 중 상대적으로 목 넘김이 부드럽다는 ‘레미 마르틴 VSOP’를 내어주셨다. 첫인상은 강렬했다. 술잔을 받은 순간부터 코를 찌르는 알코올 향에 머리가 띵했다. 빨대로 반 모금을 입에 넣으니 처음 느껴보는 뜨거움이 온몸을 감쌌다. 숲 한가운데서 맡을 법한 짙은 나무 향이 느껴졌다. 부드러움이라곤 찾아볼 수 없어 너무도 마시기 어려운 술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장님께 코냑을 좀 더 맛있게 즐기는 방법을 물었다. 워낙 도수가 높아 코냑을 찾는 손님들은 대부분 얼음에 원액을 붓는 ‘온더록스’ 방식을 택한다고 한다. 매우 강한 향 때문에 저렴한 코냑으로는 칵테일 만들기도 어렵다고. 결국 코냑은 원액과 온더록스, 둘 중 하나를 택해 마셔야만 하는 셈이다. 

사견 가득한 추측이지만, 코냑을 팔았던 상인들도 이 술맛이 매력적이지 않다는 걸 알고 있지 않았을까. 술이 더는 치료제로 쓰이지 않는 시대에 그들은 독하고 쓴 코냑을 매력적으로 꾸며줄 ‘이미지’가 필요했을 테다. 화려한 프랑스의 궁중, 전 세계를 제패했던 절대 군주의 초상은 그 환상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영국이 고집한 ‘프랑스의 코냑’은 ‘너도 이 영웅들과 함께 승리감을 맛보지 않을래?’란 유혹이자 상술이 아니었을까.

프랑스에서 생산돼 네덜란드가 판매했고, 영국에서 가공과 발전이 이뤄진, 문화의 혼재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술. 어찌 보면 코냑은 프랑스의 실패다. 프랑스에만 허락된 ‘신의 선물’을 관심 부족으로 허무하게 내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심지어 코냑의 대중화에 앞장섰던 영국조차도 코냑을 자국의 술이라 주장하지 않는다. 코냑이란 술에 담긴 프랑스는 단순한 원산지가 아닌,  코냑의 정체성을 만들어낸 문화 그 자체기 때문이다. 그래서 코냑은 여전히 프랑스의 술이다. 

무더위의 끝자락에 다다른 요즘, 몸을 덥히는 약간의 뜨거움과 남다른 향에 취해보고 싶다면 좋은 술친구와의 코냑 한 잔을 추천한다. 그 자리에서의 대화에 이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코냑 한 모금에 담긴 프랑스와 우연, 문화의 역사를 느껴보길 바란다.

 

글 민수빈 기자
soobni@yonsei.ac.kr

사진 연세춘추
chunch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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