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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바로쓰기] 어떻게 일본에 ‘지지 않는' 싸움을 할까?

‘가솔린 테러에 가까운 예고, 협박처럼 들리는 수많은 전화나 메일이 사무국에 쇄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소녀상 전시 중단 사태에 대해 전 세계 예술가 72명이 발표한 연대 성명 중 일부입니다.

지난 4일 일본 아이치현 정부는 국제예술제 ‘아이치 트리엔날레’에서의 평화의 소녀상 전시를 사흘 만에 강제 중단시켰습니다. 지속적인 테러 위협으로 관람객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명목이었죠. 예술계는 최악의 예술 검열이라며 즉각 반발했습니다. 테러를 막는 것이 민주 정부의 일이라는 지적이었습니다. 일본 제1야당 대표마저 “폭력적인 협박으로 전시를 중단시키는 상황은 있어선 안 될 일”이라 비판했습니다.

우리 사회 역시 전시 취소와 관계자들을 향한 테러 위협에 크게 공분했습니다. 일본 정부에 대한 규탄도 함께였죠. 문재인 정부는 즉각 문화체육관광부 공동 성명을 통해 외교상 ‘깊은 유감’을 표시했습니다.

일본 사회의 혐한 분위기는 단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난 2018년 독일에서도 평화의 소녀상 전시가 무산됐습니다. 당시 일본 총영사관은 ‘위안부는 자발적 매춘부’라는 표현을 스스럼없이 사용했죠. 일본 우익단체들이 ‘혐한’ 시위를 벌이는 일도 빈번합니다. 2017년 일본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동년 1~4월까지 혐한 시위 횟수는 35건에 달했습니다. ‘조선인을 싹 쓸어 일본 사회를 정화해야 한다’는 과격한 구호도 볼 수 있었죠. 2009년에는 우익단체 ‘재일의 특권을 허락하지 않는 시민모임’이 재일조선학교 바로 앞에서 시위를 벌이며 학생들을 협박하기도 했습니다. 단지 시위에 그치는 것만은 아닙니다. 재일조선학교 보호 단체 ‘몽당연필’은 우익단체 회원이 재일조선인 여학생들의 치마를 칼로 긋는 ‘치마저고리 칼질 사건’이 여러 번 발생했다고 알렸습니다.

우리 정부가 일본 내 혐한 기류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이번 사례는 매우 이례적입니다. 조선학교가 일본 우익단체의 폭력 위협에 처했을 때, 우리 정부가 공식 진정서를 보낸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일본군 성노예 생존자와 평화의 소녀상을 두고도 마찬가지였죠. 지난 2007년 캘리포니아 의회에서 제정된 ‘미국 연방의회 일본군 위안부 사죄 결의안’은 재미 한인 사회와 민간단체인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노력이 만든 결과였습니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배경이 된 사건이죠. 영화에서도 드러나듯, 우리 정부는 그 가운데 소극적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심지어 2016년 부산 동구청은 소녀상이 불법 건축물이라며 철거를 결의하기까지 했었습니다.

최근 한일 갈등 국면의 시작이었던 대법원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돌아보죠. 강제징용 배상 소송이 제기된 시점은 2005년입니다. 당시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판결은 원고패소, 즉 ‘배상 책임 없음’이었습니다. 한 차례의 대법원 파기 환송을 거쳐, 서울고등법원이 피해자 1인당 1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때가 2013년이죠. 해당 판결이 확정된 2019년까지 무려 5년 2개월이 더 소요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가 판결을 뒤집기 위해 개입했다는 정황도 드러난 바 있습니다. 당시 김기춘 비서실장은 법원행정처 고위 간부들과 여러 차례 접촉해 소송 지연을 도모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소송을 넘겨 2013년 판결을 뒤집으려 했죠.

일본군 성노예, 강제징용, 재일교포 등은 모두 식민 지배의 아픈 역사로부터 시작돼, 여전히 실존하는 문제입니다. 우리 정부가 여태껏 이를 눈감아온 이유는 명확합니다. 외교적으로 ‘국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죠. 대한민국이라는 전체 집합의 공리를 위해, 부분집합인 피해자들의 아픔은 묵살해온 셈입니다. ‘한미일 안보 동맹 체제, 일본에서 수입하는 전략산업 물자 등 정치·경제적 이해관계를 고려해야만 한다’, ‘섣불리 일본을 자극해선 도움이 될 게 없다’ 등 언제나 국익이 우선시됐습니다. 최근 손학규 전 의원이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따른 행정 절차는 일본이 납득하는 방식으로 해야 할 것”이라 말한 이유도 이에 있습니다.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지금, 우리 정부는 작심한 듯 일본과의 대결을 준비하는 모습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는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는다”고 역설했습니다. 지난 4일 추경으로 2조 규모의 예산을 편성해 일본 경제 보복 피해 기업 보호책을 마련했습니다. 더불어, 한미일 안보 동맹의 큰 축이던 GSOMIA 폐기와 한일 교역의 핵심 중 하나인 일본산 식품 수입 및 폐기물 처리에 대한 검역 강화까지 거론되고 있습니다. 외교적 ‘실리’마저도 지금의 대결에 제동을 걸지 못하는 모양새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실리보다 중요한 명분, 그 명분이 무엇인지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목적은 무역 전쟁의 승리도, 일본 정부의 굴복도 아닙니다. 지금이라도 일본의 과오를 바로잡고, 피해자를 진정으로 보호하자는 것입니다. 좌우를 막론하고 한국 정부는 역사적 폭력의 희생자 앞에서 침묵으로 일관해왔습니다. 우리 사회 역시 일본에 대한 집단적 분노는 공유하면서도,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온정은 잃어왔습니다. 일본과 대결 구도로 접어든 지금이 바로 그 온정을 되찾을 시기입니다. 평화의 소녀상 보호 조치를 제도화하고,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지원을 확대해야 합니다. 더불어, 일본의 ‘혐한’ 범죄를 강력히 규탄하고, 그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 조치를 강구해야 합니다.

당장 오는 9월 강제징용 배상 행정 집행부터 시작입니다. 정부는 강제집행과 ‘1+1안(한일 기업 공동 기금 조성)’ 등을 폭넓게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침묵과 외면으로 방관해온 역사적 폭력, 그에 직면하는 것이 진정 ‘지지 않는’ 싸움입니다.

글 강우량 기자
dnfid0413@yonsei.ac.kr

강우량 기자  dnfid0413@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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