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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칼럼] 혐오에 무뎌지는 사회, 그 처방전은

“암 걸릴 것 같아.”

놀고 싶은 맘을 억누르며 3월 모의고사 10회 독을 끝낸 뒤 처음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활자와의 오랜 씨름 뒤 드디어 첫입을 뗀 전우에게 친구들은 “진짜 극혐이지 않냐?”, “이걸 왜 틀렸지? 레알 병신 같다”는 말로 응했다. 이게 내가 기억하는 철없던 고등학생 시절 자습실의 풍경이다. 얼마나 무시무시한 말을 입에 담는지도 몰랐던 그때, 오로지 습관이 시키는 대로 말하고 뱉었다. ‘암 환자’, ‘병신’, ‘장애인’ 모든 게 나의 나쁜 기분을 해소하기 위해 한순간 입에 담았다가 버리면 되는 말들이었다.

그렇게 대수롭지 않은 말들이 대수롭지 않게 오고 가며 시간이 흘렀다. 스무 살이 되고, 많은 걸 배우고 보고 나서야 차차 알게 됐다. 나는 누군가의 단면만을 보고 있었다는 걸. 그렇게 내 경험을 반추해 켜켜이 쌓아, 나는 이 ‘혐오 사회’에 대한 작은 기록을 완성했다.

나와 내 친구들은 꽤 오랫동안 이 사회의 혐오에 일조했다. 짜증이 나면 ‘발암’. ‘장애’, ‘병신’ 등의 단어들로 상황을 표현했다. 이렇게 우리가 쉽게 쓰던 말들은 사회 전반의 감정을 반영했다. 누군가가 가진 질병이나 아픔을 ‘욕설’로 치부하는, 공감능력이 없는 사회. 일본의 애니메이션 『사카모토입니다만』의 유명한 대사가 그 예시다. 해당 방송의 “병신 같지만 멋있어”라는 대사는 한국 예능 프로그램의 자막에서도 활용되며 꽤 오래 유행어로 기능했다. 이렇게 미디어는 우스꽝스러운 인물을 두고 혐오 표현을 사용하며 웃음을 짜낸다. 혹자는 그 말을 듣고 자신이 겪은, 혹은 겪고 있는 고통을 떠올렸을 테다. 누군가에 상처를 남기는 말을 고민 없이 소비하는 사회는 기형적이다. 기형의 발단은 타인의 고통에 무뎌진 우리다. 앞서 언급한 표현을 듣고도 아무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면. 타인의 고통을 고민해본 적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고민하지 않은 사람은 공감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한 사람은 연대하지 못한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남의 처지에 무감각해졌을까. 그 뿌리는 남의 처지와 감정을 외면하는 게 습관이 된 우리 모습이다. 예상치 못한 문제 상황에 짜증을 느끼는 건 자연스럽다. 휠체어 이용자 때문에 엘리베이터 이용이 늦어지거나 카페에서 우는 아이 때문에 공부가 안될 때, 혹은 광화문 앞에서 집회 때문에 차가 막힐 때 느끼는 불쾌감은 너무나 당연하다. 문제는 그 대응방식이다.

이 불쾌감에 대응하는 선택지는 여러 가지가 있다. 내가 느낀 감정을 집단 전체를 향한 혐오 표현으로 분출하는 것, 혹은 내가 보지 못한 부분이 있을 걸 알고 이해하는 것. 하지만 우리는 그런 고민을 할 여유가 없다. 불쾌감을 마주했을 때 가장 쉬운 선택지는 ‘배제’다. 타인이 얽혀 있는 맥락을 배제하고, 지금 나를 불쾌하게 만드는 그 모습만 남기는 것이다. 맥락이 제거된 타인은 혐오 받아도 괜찮은, 아니 혐오 받아 마땅한 존재가 된다.

그래서 혐오는 누군가의 맥락을 잘라낼 도구, 즉 권력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힘을 가진 자만이 입체로 살아가는 사회에서 약자는 평면 위에 존재한다. 약자가 평면을 박차고 올라 입체와 대등해지긴 어렵다. 그래서 혐오는 대개 평면을 향해 내리꽂힌다. 혐오 표현이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사실은 내가 하고 있는 것은 차별이 아니다.

합리적인 나의 반응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가장 악랄했던 사례를 찾고 극한의 이미지를 찾는 것이다.

결국 그 언어들은 혐오와 차별의 정서를 합리화하려는 강박으로

부정적 스테레오 타입을 씌우는 것이다.

혐오는 누군가를 평가할 수 있는 위치의 힘 있는 자들이 가질 수 있는 권력감정이다.”

-사회학자 오찬호

그렇게 혐오는 강자가 아닌 약자를 향한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아랫목에 고여 원한으로 응어리진 사회를 만든다. 그렇게 원한에 찬 약자들은 더 낮은 곳의 약자를 혐오한다. 지옥도가 펼쳐진다. 어떻게 내리 닥치는 혐오를 멈출 수 있을까. 답은 보이지 않는 타인의 고통을 응시하는 것이다. 타인의 단면 너머에 존재하는 고통을 인지해야 우리는 공감할 수 있고, 공감해야 연대할 수 있다.

글 김현지 기자
hjkorea0508@yonsei.ac.kr

자료사진 클립아트 코리아

김현지 기자  hjkorea0508@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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