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원 즈음은 우스운 뮤지컬 관람료. 그리고 모르는 새 엉금엉금 올라가 버린 영화 티켓값. 마지막으로 책을 읽은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요즘. 안 그래도 부족한 시간과 돈에 점점 문화생활과 멀어져가는 청년들을 위해 『The Y』가 나섰다. 매달 정한 테마에 맞춰 기자들이 엄선한 3개의 작품으로 가득 차린 한 상. 「The Y의 리뷰식당」이다.

<무더운 6월, 당신의 뜨거운 희생을 기억하겠습니다>
본격적인 더위의 시작을 알리는 6월. 과거 우리나라엔 날씨도 이길 수 없는 뜨거운 투쟁을 벌인 사람들이 있었다. 누군가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다른 누군가는 더 나은 나라를 물려주기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당신의 삶에 찍힌 마침표가 자랑스러운 역사의 시발점이었음을 되새기고자 우리현대사의 영웅들을 기리는 작품들을 상에 올렸다.

 

#“니는 계속 시를 쓰라, 총은 내가 들 거니까”

영화 『동주』

영화는 시집의 표지를 펼치듯이 세로로 길쭉한 화면으로 시작된다. 멀리 보이는 두 청년의 뒷모습이 그 뒤를 잇는다. 누구나 한 번은 이름을 들어봤을 일제 강점기 대표 항일 시인인 윤동주와 그의 죽마고우 송몽규의 이야기, 『동주』다. 이준익 감독은 수없이 읽히고 쓰인 시들에 가려진 윤동주의 ‘생’에 주목했다.

영화는 윤동주의 삶과 문학처럼 ‘부끄러움’과 ‘외로움’의 정서가 짙다. 동갑내기 친구로 태어나 비슷한 시기에 세상을 등진 송몽규의 이야기는 윤동주에 대한 세밀한 조명을 가능케 한다. 동주는 몽규의 뜨거운 항거에 함께하지 못하는 자신의 나약함에 괴로워한다. 그러나 그는 펜을 들어 독립에 대한 갈망을 시에 녹여낸다. 조용히, 그러나 안간힘을 써 독립을 외치는 그의 생은 관객을 뭉클하게 한다. 영화 곳곳에서 동주가 읊조리는 시들이 아름답지만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동주』란 제목이 붙기 전 이 영화의 가제는 ‘시인’이었다고 한다. 끊임없이 자신을 들여다보며 “잎새에 이는 바람” 한 점에도 부끄러워할 줄 알았던 시인, 윤동주. 오래도록 가슴에 새겨야 할 일이 많은 6월, 독립을 향한 순수한 열정과 괴로움으로 빚어진 ‘동주’의 시와 함께 그의 생에 조용히 발을 디뎌 보는 것은 어떨까.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개인에 대해 기억할 때

소설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

안재성의 소설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는 ‘정찬우’라는 한국 전쟁 당시 실존 인물의 삶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작가는 독자가 전쟁을 실제처럼 느끼도록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묘사했다.

전북 고창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 만주로 넘어갔던 엘리트 정찬우는 북한 여학교의 역사 교사가 되자마자 22살에 북한군의 부름을 받는다. 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사회주의를 교육하기 위해 남한으로 파견된다.

‘내가 돌아가고 싶지 않은 땅에 다른 사람들을 돌려보낼 수 없다. 자유보다 더 소중한 게 어디 있으랴’라는 그의 혼잣말은 누군가의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가 누리는 자유도 없었으리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한다. 형제가 적이 돼 누가 누구를 누구로부터 지켜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싸우는 장면은 처절하게까지 느껴진다.

전쟁에 참여했던 사람 모두가 역사에 기록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을 잊을 수 있을까. 누군가가 그 시기를 겪고 버텼기에 지금의 우리가 존재한다. 작가는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은 권세를 누리는데, 이들 대신 죽은 사람들이 역사에 족적도 없이 사라져 서글프다’는 말을 전한 바 있다. 세월이 흘렀다고 해서 희생자들의 아픔이 잊히지 않도록 곱씹으며 읽어보자.

 

#지금이 99℃라고 생각하자

만화 『100℃: 뜨거운 기억, 6월 민주항쟁』

‘지금은 아주 당연한 일이 과거에는 당연하지 않았다.’ 어쩌면 지겹게 들어왔을 말이다. 하지만 활자로만 접한 역사를 피부로 실감하기는 어려웠을 터. 만화 『100℃: 뜨거운 기억, 6월 민주항쟁』은 생동감 넘치는 그림으로 30여 년 전 국민의 손으로 대표자를 뽑을 수 없었던 세상을 보여준다.

정권의 입맛에 따라 목숨이 좌우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고통에 빠진다. 1987년 고문으로 숨을 거둔 고(故) 박종철 열사의 후배 ‘영호.’ 데모에 나섰다 수감된 영호를 보며 울부짖는 영호의 어머니. 가족의 생계유지를 위해 양심을 외면할 수밖에 없는 영호의 형 ‘영진.’ 영호는 용기를 내 ‘독재타도’를 외치는 운동에 발을 들였다. 하지만 철창 안에서 그는 ‘언제 새로운 세상이 찾아올지 몰라 두렵다’고 고백한다. 그의 고뇌를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교도소에서 두려움을 털어놓는 영호에게 옆방에 수감된 누군가 ‘사람의 온도는 잴 수 없지만, 사람 역시 100℃에서 끓는다는 점을 역사가 증명한다’고 말한다. 이는 변화를 향한 국민의 열기가 모여 특정 지점에 이르면 사회는 그 염원대로 변한다는 의미다. 이어 그는 ‘지금이 99℃라고 생각하고 변혁의 움직임을 이어나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단 1℃만큼의 노력이 더해진다면 결국 민주주의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자는 것. 그의 말은 30년 전 사람들의 희생에 기대 현재의 ‘끓어야 할 지점’까지도 생각해보지 않는 스스로를 반성하게 한다.

지난 2009년 초판 발행 후 전국의 중·고등학교에 배포될 목적으로 쓰인 만화인 만큼 이해가 쉽다. 하지만 이야기는 1987년 6월에서 멈추지 않는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투표용지 한 장만으로 완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부록에서 작가는 정치를 향한 무관심을 경계하며 민주주의가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제시한다. 이 역시 여러 캐릭터가 대화를 나누는 만화로 그려져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다.

 

글 박지현 기자
 pjh8763@yonsei.ac.kr
민수빈 기자
soobni@yonsei.ac.kr
김인영 기자
hellodlsdud@gmail.com

자료사진 창비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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