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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통제가 아닌, 인정을 위해 존재합니다"15년간 인권 현장을 지켜온 황필규 변호사를 만나다
  • 강우량 기자, 양하림 기자
  • 승인 2019.05.13 00:46
  • 호수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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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세월호 참사, 가습기 살균제 사건 등 국가적 재난이 불거질 때면 ‘법은 강자의 도구’라는 한탄이 쏟아지곤 한다. 한편, 누구나 권리를 인정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온 이가 있다. 15년간 차별과 인권 침해의 현장을 누벼온 황필규 인권 변호사다. 법조계 일선에서 인권을 수호해온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간단한 본인 소개와 인권 변호사가 된 계기를 말해달라.
A.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소속 인권 변호사 황필규라고 한다. ‘공감’은 시민후원으로 운영되는 공익법인으로 국내외 인권 관련 소송 전반을 담당한다. 첫 소송을 난민 사건으로 시작한 이래 계속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난민·이주민 인권, 다국적 기업 소송 등 국제 인권 문제부터 아동·탈북자 등 국내 인권 관련 분쟁도 다룬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 재난 사건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인권 변호사는 법대생 시절부터 하고 싶은 일이었다. 당시 법률가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에 관해 의문을 가지곤 했다. 법은 어디까지나 사회적 도구에 그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인권 증진에 기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모든 법대생이 비슷한 고민을 하리라 본다. 그런 점에서 나는 ‘모든 법대생의 꿈을 이룬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Q. 인권 변호사로서 국가나 다국적 기업 등 거대한 권력에 맞서는 게 두렵진 않았나.
A. 딱히 두렵진 않았다. 현실에서 인권이 힘의 논리로 귀결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권력의 반대편에 설 때마다 인권 증진을 위해선 힘의 불균형을 극복해야 함을 통감한다. 다만 종종 무기력감을 느끼긴 한다. 권력이 인권이라는 가치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다수가 인권을 얼마나 성가셔하는지 깨닫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법이 인권을 보장할 도구로 기능할 수 있고, 기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Q. 현대 사회에서 법과 인권 사이에 근본적 괴리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우리 사회의 법체계는 인권에 기초하고 있다고 보는가. 또한, 법은 어느 범위까지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A. 법이 특정 누군가의 인권‘만’을 보장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됐다. 인권 개념에 비춰볼 때 법은 ‘권리를 인정하기 위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한 사회의 인권 수준은 ‘우리’라는 범주의 확장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 인간이 존엄하다는 표현 자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오직 ‘우리’로 인정받는 이들만이 존엄성을 보장받는다. 예를 들어, 아동이나 노인 등 사회적 약자가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말은 누구나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에는 엄청난 반발이 뒤따른다. 그들은 ‘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권의 관점에서 바람직한 법이란 모든 이들을 ‘우리’라는 권리 당사자로 인정해주는 제도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 사회의 법체계에는 허점이 존재한다. 일례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은 시위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에 방점이 찍혀 있다. 시민들의 정당한 권리를 보장할 방안으로서가 아닌, 통제 수단으로서 존재하는 셈이다. 사회 제도가 권리 보장에 기초해야 함을 인지할 때 비로소 바람직한 법률로 기능할 수 있다.

Q. 인권 이슈에서 첨예하게 대립하는 주제 중 하나가 난민법이다. 난민은 ‘사회 구성원’이 아니기에 법적 보호를 제공할 수 없다는 주장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A. ‘사회 구성원’만으로 사회가 존립한다는 전제에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한국 사람의 힘만으로 한국의 존립을 일궈냈는가.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미국과 터키, 영국 등의 우방은 한국 사회 구성원이 아니었다. 그들 없이는 한국이란 국가 자체가 없었을 터다. 한국을 방문하는 관광객이나 한국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들 역시 한국인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도 한국 국민과 같이 한국 사회에 영향을 끼친다. 그렇기에 사회 구성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난민의 권리를 부정하는 행위는 우리의 권리를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제주 예멘 난민 사건은 우리 사회가 외국인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제주는 관광 도시를 표방하며 풍요롭고 온정적인 이미지를 쌓아왔고, 이를 통해 외국 자본을 유치해왔다. 하지만 돈 없는 난민들이 권리 보호를 요청하자 문을 걸어 잠궜다. 받을 순 있으나 줄 순 없다는 논리다. 한국이 얼마나 계산적으로 보였을지 걱정된다. 지금이라도 국제 공동체적 권리 보호에 대해 사회적으로 협의해야 한다.

Q. 한국은 동아시아 국가로서는 드물게 난민법을 갖추고 있다. 난민법 제정 당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는데, 현재 난민법의 의의와 개선점은 무엇인가.
A. 과거에는 난민 신청 절차만 존재했고, 난민 인정 이후 절차는 정부가 자의적으로 진행했다. 체류 절차나 지위 보호 수단 등이 이에 해당한다. 지난 2016년 제정된 난민법은 난민 인정 이후의 권리 보장을 명문화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하지만 현재 난민법은 정치적 타협에 따른 ‘누더기’ 법안에 불과하다. 일례로 현행 이의신청제도*는 이의신청 ‘박탈’제도처럼 기능한다. 담당관 한 명은 이의신청자 700명을 한 번에 심사한다. 24시간 내내 일해도 이의신청자 한 명에게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2분 남짓이다. 현실성이 결여된 인원 분배에 이의신청제도는 형식적 심사에 그친다. 이러한 법제의 허점은 난민들이 오롯이 부담해야 한다.
경제적 사유에 따른 난민의 지위 불인정 문제도 있다. 국제적으로 난민 인정 사유는 인종·국적·종교·정치·사회 다섯 가지로 한정된다. 극심한 빈곤으로 모국을 떠난 ‘경제적’ 난민은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다만 국제 사회는 경제적 난민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보충적 보호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해당 논의가 한국에서는 전무하다.

Q. 세월호 참사 당시 안산에서 1년간 상주하며 유가족과 함께했다. 이후에도 메르스 사태 등 주요 국가 재난 사건의 진상규명과 피해자 권리 보호에 힘써왔다고 알고 있다. 국가 재난 사건에서 정부의 역할과 책임은 무엇인가.
A. 인권에 기초한 법의 원칙은 의무자의 의무와 권리자의 권리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재난이 발생했을 때 국가는 누가 의무를 다했는지, 누구의 권리가 침해됐는지만 철저히 규명하면 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피해자는 정권을 위협하고 피해 사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악성 민원인으로 여겨졌다. 정부는 원칙 없이 사건마다 상이하게 대처했다. 피해자의 외침이 언론에 보도될 때만 단발적으로 요구를 수용하는 식이었다.
세월호 참사 당일을 잊을 수 없다. 당시 슬픔에 놓인 유가족분들을 위로하는 것이 스스로의 사명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진도에 내려갔지만, 유가족의 마음을 열기는 쉽지 않았다. 고민 끝에 다시 상경한 후 안산으로 출퇴근하기 시작했다. 언론의 과격한 취재와 정부 사찰 등을 막아 더는 유가족의 일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노력했다. 지금은 정부의 특별조사위원으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에 늦게나마 뛰어들었다. 여전히 특별 조사가 필요하다는 게 너무나 아쉽다. 지난 5년간 소요된 정치적 비용을 진상규명과 피해자 보상에만 쏟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너무 많은 것을 소진했다. 지금이라도 반드시 참사 진상을 밝혀내야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Q. 난민과 재난 문제 모두에서 국제적 네트워크 형성을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국제적 네트워크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A. 난민 소송을 처음으로 맡았을 때 가장 도움을 많이 주신 분이 일본 변호사다. 난민법 제정도 국제적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난민법을 제정한 이후에는 한국 인권 변호사들이 난민법이 없는 근교 국가를 돕고 있다. 이처럼 국제적 네트워크는 인권을 증진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데 필수적이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통해 배우며 함께 진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적 지지를 기반으로 인권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다는 점 역시 주된 효과다. 젠더나 아동 문제와 같은 국내 인권 이슈에서도 마찬가지다. 국제적 공조 없이는 우리라는 범주 속에서 편협한 시선을 깨기 힘들다.

Q. 인권 변호사는 패소하기 쉽다는 통념과 달리, 난민 관련 재판에서 승소 경험이 상당하다. 승소할 수 있던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A. 잘못된 정보를 가져오셨다.(웃음) 처음 세 번 승리한 이후로는 지는 경우가 더 많았다. 통념대로 정말로 이기기 쉽지 않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반려될 것이 분명해도 목소리를 내기 위해 재판에 나서기도 한다. 그러나 가끔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요구가 받아들여진다. 생각도 못한 변화가 나타나기도 한다. 가끔 ‘이게 될까’ 싶을 때 그러한 경험들을 되뇐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문제를 제기할 때 변화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Q. 인권 변호사로서 가지는 사회적 책무는 무엇인가. 더불어 본인이 인권 변호사로서 지향하는 목표는 무엇인가.
A. 두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같다. 인권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다. 거창한 이상보다는 현실의 변화를 추구한다. 이를 위해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뛰어다닐 생각이다. 법조인을 꿈꾸는 이들에게도 같은 조언을 하고 싶다.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법을 통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매번 고민했으면 좋겠다. 자신이 ‘왜’ 법을 다루고자 하는지 계속 고민해야 할 것이다. 나 역시 같은 고민을 멈추지 않겠다.

우리 사회는 줄곧 상처받은 이들을 외면해왔다. 그들이 사회 안정을 해친다며 손가락질하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가난과 고통이 개인의 무능에 따른 결과물로 여겨지는 요즘, 황 변호사는 법이 지켜내야 할 인간다움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다. 지난 15년간 법의 일선에서 인권을 지켜온 황 변호사. 그의 행보가 ‘모든 법조인의 꿈’이 되길 바란다.


*이의신청제도: 「난민법」 제21조에 의거해 난민 신청자는 불인정 통보를 받을 시 30일 이내에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지면 난민 지위가 인정된다.

글 강우량 기자
dnfid0413@yonsei.ac.kr

사진 양하림 기자
dakharim0129@yonsei.ac.kr

강우량 기자, 양하림 기자  dnfid0413@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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