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부 노지운 기자 (철학·17)

‘철학이 있는 기사’

두 학기째 나의 기자 소개란에 적혀 있는 문구다. 소속이 철학과라 써놓은 싱거운 한 마디로 보일 수 있겠지만 나에겐 하나의 도전으로 여겨지는 명제다. 처음 학보사 기자 직함을 받고 펜대를 쥐었지만, 기자 생활은 생각만큼 녹록지 않았다. 막상 노트북 앞에 앉으니 전에는 명확해 보였던 선악 구도도 흐릿해졌다. 각자는 각자의 사정과 논리가 있었다. ‘연세대’라는 작은 사회에서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고, 그 속에서 나만의 논조와 철학을 유지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그리고는 내 생각과 가치관에 확신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 나아가서는 나라는 인간이 비어있었음도 알았다.

 

13살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이름의 희귀난치병을 판정받고, 골수이식을 받은 뒤 3년 동안 병원에서만 지냈다. 등교는 고사하고, 먹기, 걷기, 계단 오르기 등 모든 것이 불가능했다. 긴 시간을 이 악물고 견디게 해준 목표는 단 하나, ‘일상으로의 복귀’였다. 남들과 똑같이 먹고 움직이고 학교에 다니는 것. 그것은 내 인생의 가장 큰 목표였고 도전이었다. 그것만이 나로 인해 고통받은 가족에게 보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완치된 후 학교로 돌아가 그토록 갈망하던 ‘일상’을 성취했을 때, 나와 가족은 누구보다 행복했다. 남들과 똑같이 산다는 기쁨은 내가 10대를 살아낸 동력이었다. 일상은 내가 피나는 노력 끝에 성취해낸 소중한 보상이었다. 그렇기에 일상이 지루하고 답답하다고 푸념하는 또래 친구들은 한심하고 안쓰러웠다.

 

나는 대학에 입학해서도 일상이 가져다주는 기쁨을 누리는 데 안주했다. 다른 동기들은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자아를 찾아 움직였다. 이는 내게 삶의 기쁨을 아직 찾지 못한 이들의 발버둥처럼 보였다. 그렇게 2학년이 됐고 학보사에 들어갔다. 새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훨씬 많아졌다. 그들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뭐니’, ‘가장 즐기는 취미가 뭐니’ 등의 질문을 던졌다. 어색함을 풀기 위해 하는 질문이었겠지만 그때마다 말문이 막혔다. 사실 말문이 막힌다기보다 가장 무난한 ‘정답’을 찾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남들과 똑같이 사는 일상을 목표로 하다 보니, 한 번도 나라는 사람의 기호와 남들과의 차이점을 고민해보지 않았음을 알았다. 내게 감정과 기호는 사치였다. 나로 인해 가족들이 고통받았다는 끔찍한 죄의식이 무의식 속에 자리했기 때문이다. 내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게 더 편했고, 내 기분이 상하더라도 주변 사람이 괜찮다면 참는 것을 택했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정작 나에 대한 탐구를 게을리하게 했다. 그동안 많은 책을 읽어오며 내 가치관과 주장에 대해 강한 확신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아가 없는 채로 하는 독서는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학보사에 몸담은 지 1년이 다 돼간다. 그 전과 후를 비교할 때 나는 많이 달라졌다. 내가 누구인지 아직 완벽히 알지 못하지만, 틀이 잡혀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전보다 내 감정에 충실해졌다. 이전 같으면 사치라고 생각했을 값비싼 점심과 커피 한 잔을 나에게 선물했다. 내가 어떤 분위기를 좋아하는지 깨달았으며, 좋아하는 음식을 찾아 먹는 것의 재미를 알았고, 남과 다른 나만의 루틴이 생겼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고 있다. 기사 쓰는 것에도 자신감이 붙었다. 이전에는 기사가 나를 휘둘렀지만, 이제는 내가 기사를 이끌어간다고 느꼈다. 그렇게 ‘철학이 있는 기사’를 향한 나의 도전은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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