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교수 (우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현행 선거제도는 300명의 의석 중 253석은 각 지역선거구에서 가장 많이 득표한 후보에게 배정한다. 나머지 47석은 별도의 정당투표를 통해 각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배분하는 방식이다. 이에 비례대표의석이 전체의석의 1/6 수준에 불과한 데다 지역선거구에서 유권자 과반의 표가 대표 선출에 반영되지 못했다. 때문에 국민대표성을 효과적으로 반영하지 못하는 문제점이 줄곧 지적돼 왔다. 이 선거제도는 지역 기반을 가진 거대정당에 득표율보다 높은 의석률을 보장하고, 소수정당은 지지도에 못 미치는 의석을 배당해 국회의 다수세력을 조작적으로 형성하는 정의롭지 못한 선거제도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새누리당의 지역구 득표율은 각각 37%, 38.3%였지만 지역구 의석은 43.5%와 41.5%를 차지했다. 두 당의 정당 득표율이 각각 25.54%, 33.5%였음을 고려하면 이 편차는 더 커진다. 반면 7.23%의 정당 지지를 받은 정의당은 지역구 2석 포함 6석으로 2%의 의석만이 배정됐다.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의하면 최소 21석은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행 선거제의 조작성이 국민대표성을 얼마나 왜곡하는지 알 수 있다. 더구나 지역대표에 편중된 의석 배분은 지역주의를 만성화하고 신생정당의 등장을 구조적으로 가로막아 정치적 의사소통의 역동성을 줄여 국회가 국민 여론을 따르지 못하게 한다.

이 선거제도는 18세 이하 청소년 선거권 박탈과 교원 및 공무원 정당의 자유 박탈, 일반인의 선거운동 과다규제가 특징인 정치관계법과 결합해 민주공화국을 제한 민주주의로 전락시키는 문제점을 지닌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하고 더불어민주당과 야 3당이 합의한 것으로 알려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비례대표의석을 75석으로 늘렸지만 지역구의석수와 비례대표의석수는 1인 2표 선거제도에 의해 별도로 배분되는 점은 현 제도와 같다. 비례대표 75석은 두 단계를 거쳐 배분하는 것으로 개편된다. 전체의석수에 각 정당득표율을 곱한 후 각 정당의 지역구의석수를 빼고 난 값의 절반에 해당하는 의석을 우선 배정한다. 나머지 비례의석은 현행처럼 정당별 전국 정당득표율에 비례해 배분한다. 현행과 달리 정당득표율에 따른 기본의석을 우선함으로써 소수정당에게 불리한 현행 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국민대표성을 강화한 점이 특색이다. 한편 정당 내 비례대표 의석 배분은 각 정당의 권역별 득표율을 기준으로 지역주의를 완화했다.

예컨대 A정당의 정당득표율이 40%이고 지역구에서 획득한 의석수가 110석이라면 A정당은 300석의 40%인 120석에서 지역구 획득의석을 뺀 10석의 반인 5석을 우선 배정받는다. 이렇게 일차적으로 배정된 각 정당의 전국구의석수의 합계를 총전국구의석수 75석에서 뺀 나머지 의석수는 각 정당득표율에 따라 배분되기 때문에 추가의석수는 각 당의 정당투표 득표율 비율과 지역구획득의석수에 따라 유동적이다. 결국 A당은 115석보다 더 많은 총의석수를 가지게 된다.

이 대안은 현행 제도의 국민대표성 부족과 지역 정당화 경향을 일정 부분 해소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여전히 지역대표제와 비례제를 병립하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100% 연동형 비례대표제보다 비례성이 떨어진다. 연동형의 경우 의석수를 더 늘려야 하거나 초과의석이 생길 수 있어 의석수 증대에 부정적인 국민 여론을 반영하기 힘들다는 점이 고려된 듯하다. 또한 연동형의 경우 군소정당의 난립을 초래해 합의정치의 문화가 성숙하지 않은 현재, 국정 불안정이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그동안 야 3당이 요구해온 비례제의 전면적 도입이 현행제도의 문제점을 완화하는 수준으로 후퇴했지만 거대양당이 기득권을 일부 내려놓고 타협할 수 있는 고육책의 성격이 짙다. 이런 한계를 고려하면 자유한국당이 명백히 부정의한 현행 제도를 고집하는 것도 모자라 근거 없는 위헌론을 제기하거나 비례제를 전면적으로 폐지하는 퇴행적 선거제를 대안으로 제시한 것은 선거제 개혁을 통해 민주화를 한 층 더 강화하려는 국민 여망에 배치되는 것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우리 국민은 지난 1987년 대통령직선제를 쟁취함으로써 행정권 수반을 민주적으로 선출하는 제1차 민주화를 달성했다. 그러나 제1의 국정과정인 입법 권력 구성권이 국민대표성을 충실히 반영한 보통 민주주의를 실현하도록 선거제를 개혁하는 제2차 민주화에는 실패하고 있다. 이번에 정치권의 선거제개혁이 또다시 실패로 돌아간다면 이제 주권자인 국민이 의회 권력의 민주화를 위해 나설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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