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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
  • 김민정 기자
  • 승인 2019.03.11 00:04
  • 호수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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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니까 청춘이다.’ 지난 2010년 출간된 베스트셀러의 제목은 어느덧 현실이 됐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정신질환 진료 현황 자료」에 따르면 정신질환자의 약 17%는 20대다. 20대 정신질환자 수는 지난 5년간 44% 증가했다. 그러나 위 비율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어도 병원에 가지 않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아파도 진료받을 수 없는 이들의 속사정을 들어봤다.


정신과를 찾기까지 걸린 시간
‘7년’


정신질환을 호소하는 20대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20대가 가장 많이 앓는 정신질환은 우울 에피소드*다. 지난 2017년 기준 우울 에피소드를 앓는 20대는 6만 5천141명이었다. 불안장애(3만 7천93명), 심한 스트레스와 적응장애(1만 7천338명), 조울증(1만 3천912명), 조현병(1만 3천653명)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 관계자는 “취업난·주택난·낮은 혼인율에서 오는 20대의 상대적 빈곤감이 그 원인이라고 본다”며 20대 정신질환자 급증 원인을 진단했다.

그럼에도 정신과 진료를 받는 환자 수는 좀처럼 늘지 않는다. 보건복지부의 「2016년도 정신질환 실태조사」에 따르면 정신질환자는 전체 인구의 25.1%다. 그중 정신과 진료경험이 있는 대상자는 7%에 불과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울증 환자의 20%는 다른 진료과나 치료기관 등 3곳 이상을 거치고 나서야 정신과를 찾았다. 증상을 발견하고 처음 진료를 받기까지 평균 7년이 걸린다.

정신과 진료를 받으면 국제질병분류 기호에 따라 ‘F코드’(정신 및 행동장애)가 진단서에 기록된다. 의사가 기록한 진단서는 병원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 전송된다. 진료기록은 환자 본인과 의사 그리고 건강보험공단만이 열람할 수 있다.

F코드 기록은 민간 보험가입 제한으로 이어진다. 민간 보험에 가입하려면 의료기록 열람에 동의해야 한다. 보험 회사들은 이를 통해 가입자의 진료기록을 열람할 수 있다. 보험연구원의 2017년 조사결과에 따르면 정신과 진료기록이 있는 사람은 최소 1년간 실손보험에 가입하지 못했다. 정신과 병력이 있는 환자는 완치가 어렵고 자살 기도 위험이 높다는 이유에서였다. 주요 대형보험사 3곳에 문의해본 결과, 3개 회사 모두 약물 처방 전적이 있으면 최소 1년 뒤부터 보험가입이 가능하다고 답했다.


‘민감정보 수집에 동의하십니까?’


현행 의료법에 따라 공공기관 및 사기업은 지원자의 정신과 진료기록을 열람할 수 없다. 「정신건강복지법」은 ‘정신질환자 혹은 정신질환자였다는 이유로 교육, 고용, 시설이용의 기회를 제한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즉 공식적으로 정신과 진료기록은 입사 시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문제는 미흡한 정보 고지에서 오는 지원자들의 불안감이다. ‘민감정보’ 제공 동의는 입사지원서 작성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정보수집 약관에 따르면 민감정보에는 사상·신념, 노동조합·정당의 가입·탈퇴, 정치적 견해, 건강 등이 포함된다. 그중 건강정보는 면접 진출자나 최종 합격자를 대상으로 기업에서 실시하는 신체검사 결과를 말한다. 그렇기에 기업은 지원자의 이전 정신과 진료기록을 열람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 사실은 기업인사팀에 문의해야만 확인할 수 있다. 지난 2018년 상반기 한 대기업 공채에 합격한 신모씨는 “민감정보라는 걸 지원하면서 처음 알았다”며 “약관만 읽어서는 무엇을 수집하겠다는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신과 진료는 ‘산 넘어 산’
편견 문턱 넘었더니 이제는 치료비 폭탄


정부는 정신과 진료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해소하고자 애써왔다. 지난 2013년 보건복지부가 건강보험 청구절차를 개정한 것이 그 노력의 일환이다. 개정된 청구절차에 따르면 정신과 전문의는 약물 처방이 동반되지 않은 상담을 했을 때 진단서에 F코드 대신 ‘Z코드’(보건일반상담)를 기록할 수 있다. Z코드는 F코드 때문에 보험에 가입하지 못했던 경증 정신질환자들을 구제했다.

그 결과 정신과 진료를 받은 뒤 일부러 Z코드를 요청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개정 이후로 Z코드 분류 환자는 매년 20%씩 증가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관계자는 “급증한 보건일반상담(Z코드)의 대부분은 정신과 진료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정신과 진료기록이 승진 등에 미칠 불이익을 우려한 환자들이 이를 이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Z코드는 정신과 진료의 진입장벽을 낮췄다. 하지만 ▲환자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다는 점 ▲비보험 진료를 택하는 환자들이 늘어나는 점 등의 한계도 지닌다. Z코드로는 약물 처방이나 심리검사를 할 수 없다. 약물 처방으로 빠르게 완치할 수 있어도 상담 진료만을 고집하다 치료가 지연되는 경우도 있다. Z코드를 남기려면 상담 진료밖에 할 수 없기 때문이다. Z코드의 이런 한계 탓에 보험처리를 하지 않는 환자들도 등장했다. 비보험 진료를 받으면 해당 병원에만 기록이 남고 국민건강보험공단 등 기타 기관에 기록이 넘어가지 않는다. 물론 건강보험 급여를 받더라도 현행법상 진료기록은 본인만 열람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관계를 확인받아도 20대 환자들은 취업에 불이익을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하다.

지난 3월 5일, 기자는 연희동의 A 정신과 의원을 찾았다. 30분의 상담 및 스트레스 검사 대가로 지불한 진료비는 2만 5천800원이다. 항우울제나 수면제 등의 약물을 처방받으면 4만 원가량의 비용이 나온다. 보험처리를 받지 않으면 그 금액은 10만 원을 훌쩍 넘는다. A 의원 접수처는 “정신과 진료를 보러 오는 20대의 열에 아홉은 기록이 어떻게 남는지 물어본다”며 “진료를 받고 약을 처방받는 것까지 타 의원과 똑같은데 유독 걱정을 많이 한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마음의 감기’라고 불리는 정신질환은 누구나 앓을 수 있는 병이다. 그러나 정신질환자는 아프다는 사실을 숨겨야 하고, 병명이 발목을 붙잡을까 두려워 진료비 폭탄을 떠안는다. 정부는 올해 범정부 차원의 ‘정신질환 차별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수십 년간 정신질환자를 옭아맸던 사회적 차별을 걷어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우울 에피소드 : 우울증에 대한 진단분류 중 하나다. 우울증 진단분류는 우울 에피소드(F32), 재발성우울증(F33), 기분부전증(F34.1), 혼합형불안우울장애(F41.2) 등 총 4가지다.

글 김민정 기자
whitedwarf@yonsei.ac.kr

<자료사진 연합뉴스>

김민정 기자  whitedwarf@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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