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사회
"비닐봉지야, 이곳은"빈곤과 소외의 한 가운데 선 비닐하우스촌 주거민
  • 강우량 기자, 윤채원 기자
  • 승인 2019.03.11 00:04
  • 호수 1826
  • 댓글 1

‘행복 주택 분양 완료. 뜨거운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거대한 현수막 앞으로 8차선 도로가 지난다. 근처 공장에서 빠져나온 레미콘 차량은 연신 연기를 내뿜으며 그 위를 달린다. 옆으로는 비닐하우스촌이 보인다.
비닐하우스촌은 1980년대에 불량주택정비사업*이 시행됨에 따라 생겨났다. 빈민촌이 철거된 자리에는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다. 치솟는 집값을 감당할 수 없었던 도시 빈민들은 비닐하우스촌으로 밀려났다. 그들은 지금껏 비닐과 판자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지난 2월 기자는 송파구 장지동 화훼마을 비닐하우스촌을 방문했다.

▶▶송파구 화훼마을에 비닐하우스 동들이 줄지어 늘어선 모습이다.


도시 안 도시 아닌 이곳,
몸 편히 누이지 못하는 15평 비닐집


서울 지하철 8호선 복정역으로부터 걸어서 5분, 흰색 울타리로 둘러싸인 화훼마을에 도착했다. 2m 남짓한 울타리로도 마을은 시야에서 감춰졌다. 울타리 중간 통로로 들어가면 비닐하우스촌 골목이 나온다. 두 명이 나란히 걷기도 힘든 골목 사이로 출입문이 늘어서 있다. 긴 비닐하우스 하나가 비닐집 한 동이고, 동당 4~6가구가 입주한다. 한 동은 보통 70평 정도 크기고, 가구당 평수는 12~17평 남짓이다. 가구 사이는 그저 벽 하나로 구분된다. 좁은 공간 안에 부엌 시설과 욕실이 비집고 들어선다. 화장실이 모든 가구에 설치되지 않은 탓에 일부 주민들은 공용 화장실을 사용한다.

비닐집 구조는 단순하다. 합판을 깐 바닥과 벽면에 각목 기둥을 세운 후 다시 합판을 덧댄다. 같은 방식으로 지붕을 올리고 부직포나 비닐하우스용 비닐을 덮으면 끝이다. 추위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기자가 방문한 빈집 바닥에서는 한기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가구 대부분이 연탄을 사용하기 때문에 난방 효율 역시 낮다. 난방은 실내 중앙에 연탄 풍로를 두고 열기를 순환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합판 벽과 지붕은 그 열기를 충분히 가두지 못한다. 주민 B씨는 “한겨울에는 아무리 난방을 떼고 이불을 덮어도 오한이 든다”고 토로했다.

원활한 통풍과 환기 역시 기대할 수 없다. 가구마다 딸린 조그만 창문은 성인 남성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기조차 어려운 크기였다. 여름철 습기와 열기가 가득 찰 때면 실내는 한증막이나 다름없다. 가구별로 냉방 시설은 갖춰져 있지만, 주민들은 공공요금이 부담돼 사용을 꺼린다. B씨는 “추위만 버티면 되는 겨울이 차라리 낫다”며 “갑갑한 여름에는 차마 실내에서 버티고 있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공기가 순환되지 않는 실내 환경은 화재 위험과 직결된다. 불과 5개월 전인 지난 2018년 11월에도 몇몇 가구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화마가 휩쓸고 간 자리는 복구되지 않은 채 방치돼있다. 불에 잘 타는 재질의 합판과 환기가 어려운 벽면 구조, 실내 연탄 풍로에서 발생하는 열기를 고려하면 언제 불이 나도 이상하지 않다.

▶▶2018년 11월 발생한 화재로 비닐집이 타버린 모습이다. 5개월이 지났지만 지금 복구는 요원하다.


‘임시 거처’ 비닐하우스촌
집이지만, 집이어선 안 된다?


열악한 주거 환경을 조금이나마 개선하기 위해선 벽면·지붕 소재 교체가 시급하다. A씨는 “컨테이너 소재인 플라스틱 판자만으로도 화재와 외풍 등의 위협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법적으로 불가능하다. 화훼마을의 비닐집들은 무허가건축물이기 때문이다.

화훼마을을 비롯한 비닐하우스촌의 부지는 주거용이 아니다. 주거용 부지가 아닌 토지 위에 주거를 목적으로 건립된 건축물은 무허가건축물로 분류된다. 현행법은 무허가건축물의 추가적인 개조나 보수를 불허한다. 마을 입구에는 주거용 건물 무단 설치 행위를 단속하겠다는 ‘불법 건축물 경고문’이 장승처럼 자리 잡고 있다. B씨는 “쥐가 합판을 갉아 먹고 나와 온 집안을 헤집고 다니는 상황”이라며 “보수조차 허가되지 않아 점점 낙후되고만 있다”고 말했다.

비닐하우스촌이 정식 거주지역으로 인정받기 위해선 부지 용도를 전환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주민들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국토의 계획과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오직 토지 소유주만이 토지 용도 변경을 신청할 수 있다. 대부분의 비닐하우스촌은 토지 소유주가 따로 존재한다. A씨는 “비닐집이 들어선 토지는 엄연히 다른 이의 소유”라며 “주민들은 비닐집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받고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토지 소유주와 주민들이 만나지 못하는 탓에 토지 용도 전환 협의는 어렵다. 주민 대부분은 비닐집에 입주할 때 토지 소유주가 아닌 원 거주민과 계약을 맺는다. 때문에 주민들은 토지 소유주가 누구인지조차 모른 채 살아간다. A씨는 “토지 소유주가 누군지 모른다”며 “만난 적도 당연히 없다”고 말했다. 부동산에서 등기부를 떼더라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소유주의 이름 정도다. 주민들에게는 주거 환경을 개선할 어떠한 노력도 허락되지 않는다. 그저 그곳에서 ‘쫓겨나지 않을 권리’만 보장받을 뿐이다.

▶▶일부 가구에서 사용하는 난방형 LPG는 비좁은 골목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찬란한 발전 가운데
누구도 빛 비추지 않는 비닐하우스촌


화훼마을이 낙후된 모습을 유지하는 사이, 주변은 급속도로 개발됐다. 지난 1986년, 마을 위로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공사가 시작됐다. 1998년에 마을 근교에 레미콘 공장이 들어섰고, 2005년에는 정부의 제2차 신도시 개발 사업에 따라 마을 바로 옆에 위례신도시 건립이 결정됐다. 화훼마을은 모든 개발 과정에서 배제됐다.

외곽순환고속도로와 레미콘 공장이 들어서는 동안 거주민들에게는 보상이 전혀 지급되지 않았다. 통상적으로 대규모 공사가 진행되면 인근 주민은 주거권을 행사해 보상금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화훼마을 주민들은 보상금을 청구하지 못했다. 지난 2009년 대법원의 판결**(이하 2009년 판결)이 있기 전까지 거주민으로서 권리를 인정받지 못해왔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보상금으로 골머리를 앓는 동아 공사판의 분진, 도로 소음, 각종 매연 등은 주거 환경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기자가 방문한 날은 미세먼지가 심각한 수준이 아니었음에도 마을 골목은 뿌옇게 흐렸다. B씨는 “공기 질이 너무 좋지 않다”고 토로했다. 이어 “마을의 공기 오염 수준은 최악 중의 최악일 것”이라 단언했다.

화훼마을은 위례신도시 개발 과정에서도 배제됐다. 신도시 개발 중심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신도시 개발은 노후지역 개발 방식 중 공공 재개발에 해당한다. 공공 재개발 시 관련 법령에 따라 정부는 무허가건축물 점유자에게도 주거 이전비를 지급해야 한다. 허나 신도시 개발에서 제외된 화훼마을 주민들은 정부로부터 주거 이전비를 받지 못했다.

또 다른 노후지역 개발 방식인 민간 재건축도 화훼마을을 구제하지 못한다. 민간 재건축 관련 법령에는 무허가건축물 점유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무허가건축물 점유자로서는 개발사와 타협해 소정의 보상금이라도 챙기는 게 최선이다. 재건축이 강행된다면 쫓겨나기 때문이다. A씨는 “실거주자인 주민들의 동의를 구해야만 재건축을 시행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토지주인이든 개발사든 동의를 받는데 필요한 비용을 감당하려는 이는 없다”라고 말했다.

법률 자문 등 거주민들의 권리 보장을 위한 장기적 지원은 미비하다. 한때 ‘화훼마을 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되기도 했으나, 지금은 와해됐다. 조직화된 활동이라곤 주민들이 임의로 모여 대책을 논의하는 것이 전부다. A씨는 “아무도 우리를 책임지고 도와주려 하지 않는다”고 탄식했다.

정부는 비닐하우스촌 주민 대상 주거대책으로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제도’(아래 주거지원제도)를 고안했다. 이는 쪽방이나 고시원, 비닐하우스촌 등지에서 사는 주거취약계층이나 범죄 피해자에게 공공임대주택을 지원하는 제도다. 주로 기존주택을 매입해 입주대상자에게 임대하는 방식이다. 세입자는 초기에 2년 계약을 체결하고, 최장 20년까지 임대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LH공사 주거복지사업처 매입임대사업1부 조재호 직원은 “비닐하우스 거주민 등 주거취약계층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수월하게 임대주택을 공급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주거지원제도는 비닐하우스촌 주민들에게만 유독 큰 부담을 요구한다. 주거취약계층 중 비닐하우스촌 주민만이 높은 보증금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닐하우스촌 주민은 범죄 피해자와 묶여 보증금 산정 시 매입 및 전세임대주택 기준을 따른다. 저소득층 대상 매입임대주택 보증금은 시세의 30%로 정해져 있다. 쪽방, 고시원, 여인숙 등 여타 주거취약계층은 고정적으로 50만 원만 지급하면 된다. 일례로 비닐하우스촌 주민이 15평(50m²)짜리 매입임대주택에 입주하는데 필요한 보증금은 475만 원 정도다. 여타 주거취약계층에 비해 9배 가까이 높은 금액이다. 조 직원은 “비닐하우스촌 거주민에게는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고 시인하면서도 “형편에 맞춰 적절한 임대주택을 공급하기 때문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닐하우스촌 주민들이 직면하는 문제 중 하나는 자존감의 탈락이다. 주민들은 기자에게 ‘우리는 빈민’이라고 몇 번이고 강조했다. 심지어 한 주민은 이곳은 비닐봉지와 같다고 말했다. 비닐봉지 안에 사는 자신이 쓰레기와 같다고 생각하는 현실이다. 주민들은 비닐집 안에서 자신들이 가난하고 쓸모없다는 생각을 매 순간 되뇌인다. 인간으로서의 존립을 확립하기 위해서라도 사회적 지원은 시급하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취를 위해 1981년부터 정부는 대대적으로 불량주택정비사업을 시작했다. 상계동과 미아동 등 주요 달동네와 판잣집 철거 및 고급 아파트 증축이 골자였다.
**지난 2009년 대법원은 과천 꿀벌마을 주민들에게 주민등록 전입 신고 허용을 판결했다. 해당 판결을 기점으로 전국 비닐하우스촌 주민들이 거주자로 인정됐다.

글 강우량 기자
dnfid0413@yonsei.ac.kr

사진 윤채원 기자
yuncw@yonsei.ac.kr

강우량 기자, 윤채원 기자  dnfid0413@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1
전체보기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