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휴머니즘으로 풀어낸 동물권 이야기

식용 개 농장 폐쇄 논쟁, 동물원에서 탈출해 사살당한 퓨마 ‘뽀롱이’, 동물권 단체 대표의 안락사 파문. 최근 ‘동물권’이라는 단어가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동물을 불쌍히 여기자는 온정주의적 구호는 옛말이 됐다. 동물도 주체성을 갖고 살 권리가 있다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배경에는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서려는 움직임, ‘포스트휴머니즘’이 자리해 있다.

▶▶ 학내에 위치한 도토리 저금통

인문학, 인간을 넘어서다


‘포스트휴먼’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연상되는가? 혹자는 공상과학 영화에 등장하는 사이보그나 인공지능 로봇을 떠올린다. 유전자 조작 등으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신인류가 연상될 수도 있다. 포스트휴머니즘은 공학이나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인문학에도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있다.

근대 철학을 관통하는 핵심어는 이성(理性)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를 남긴 데카르트는 사유 능력이 곧 인간의 본질이라 주장했다. 데카르트의 합리론에서 출발한 계몽주의는 인간을 세계의 중심에 놓고 그 외 사물을 욕구 충족을 위한 수단으로 삼았다. 여기서 파생된 근대 휴머니즘은 세계와 가치판단의 기준을 인간에게서 찾았다.* 이후 비(非)인간에 대한 배타성은 근대 휴머니즘의 한계로 지적됐다.

포스트휴머니즘 학자들은 인간과 비인간 주체 간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한다. 여기서 비인간 주체란 동식물과 같은 자연물뿐만 아니라 사물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과학기술학자 브뤼노 라투르는 ‘행위자-연결망 이론’을 통해 문명 초기부터 인간과 비인간은 연결돼 있었다고 주장한다. 라투르의 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흔히 도구로 생각하는 비인간 주체는 각기 능동성을 갖고 있다. 비인간 역시 인간에 의해 일방적으로 소모되는 대상이 아닌 고유한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라투르는 연결망 내 모든 존재의 지위를 주체로 격상시켰다. 그의 이론은 인간중심주의 극복의 단초를 제공했다.

 

대상이 아닌 주체로서 ‘동물되기’


동물은 인간과 오랜 시간을 함께한 비인간 주체 중 하나지만, 동시에 철저히 인간의 관점에서 정의돼 온 존재다. 인류 역사에서 동물은 인간에게 효용 가치가 있는 수단으로 한정돼왔다. 소는 밭을 갈았고, 닭은 식탁 위에 올랐으며, 쥐의 몸에는 주삿바늘이 꽂혔다.

상기한 맥락에서 동물은 인간에게 소유의 대상이다. 동물이 정상적인 존재로 인정받으려면 인간의 소유물이 돼야 한다. 현행 「동물보호법」은 이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동물보호법」 제4조 제2항은 “도로·공원 등의 공공장소에서 소유자 등이 없이 배회하거나 내버려진 동물”을 ‘유기동물’로 규정한다. 인간에 의해 소유되지 않은 동물은 버려진 존재로 간주되는 셈이다. 그러나 서울시가 지난 2017년에 내놓은 통계에 따르면 서울에만 약 13만여 마리의 길고양이가 살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길에서 태어나 일생을 길에서 보낸다. 인간과의 소유 관계로는 파악되지 않는 존재다.*** 그러나 반려동물과 유기동물이라는 이분법 하에 어떤 동물은 인간에 의한 관리·감독의 대상이 되고, ‘구호 및 보호조치’라는 명목 하에 임의로 처분되기까지 한다.

철학자 질 들뢰즈와 펠릭스 과타리는 ‘되기(becoming)’라는 개념을 주창했다. 되기란 인간이라는 인식 주체를 벗어나 비인간의 입장에서 사고하는 것을 의미한다. 들뢰즈와 과타리는 인간과 비인간 사이 존재의 경계를 넘어설 때 비로소 인간중심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자칫 ‘인간이 마음만 먹으면 동물로 변할 수 있다’는 허황된 주장으로 읽힐 수 있다. 하지만 되기는 인간이 비인간을 통해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비인간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뜻한다.**** ‘역지사지’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되기는 인간과 동물 사이 수직적 위계를 허물고, 인간중심적으로 동물을 규정하는 사고의 대안을 제시했다는 의의가 있다.

 

도토리 줍기가 우리에게 남긴 것


소유로 매개되지 않은 동물과 인간은 공존할 수 있을까. ‘연세도토리수호대’(아래 수호대)를 통해 그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청송대를 걷다보면 우체통처럼 생긴 작은 나무 상자를 볼 수 있다. 바로 수호대가 설치한 도토리 저금통이다. 사람들이 도토리를 주워 저금통에 넣으면 숲속 동물들이 와서 꺼내 간다. 도토리는 숲속 동물들의 주식이지만, 사람들이 도토리를 무분별하게 채집하면서 캠퍼스 내 생태계에 문제가 발생했다. 지난 2016년과 2017년에는 먹이를 구하지 못한 멧돼지가 캠퍼스까지 내려오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에 문제의식을 느낀 학생들이 수호대를 결성해 생태계 보존을 위한 활동에 나섰다. 수호대 대장 사신원(중문/경영·15)씨는 “일반적인 반려동물과 달리 다람쥐·청설모·멧돼지 등 숲속 동물들은 공존의 대상으로 인식되지 못한다”며 “소외된 동물들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을 개선하고자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호대는 숲속 동물들과 공존하기 위해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택했다. 캠퍼스에 떨어진 도토리만을 수거한 뒤 숲에 돌려주는 방식을 채택한 것이다. ‘수호활동 때문에 야생동물의 개체수가 과도하게 늘어나지 않느냐’는 의문이 제기된 적도 있다고 한다. 사씨는 이에 “우리의 활동으로 인해 동물 개체 수가 늘더라도 이는 숲 생태계의 원래 균형을 되찾는 일”이라고 답했다. 수호대는 캠퍼스 내 생태계를 관리의 대상이 아닌 하나의 주체로 인식했다. 숲속 동물, 혹은 생태계로 ‘되기’를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사씨는 “수호대 활동으로 사람들을 변화시킬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며 “숲속 동물에 대한 고민이 우리 사회의 약자를 향한 고민으로 이어졌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캠퍼스 내 숲에서 시작된 도토리 줍기는 비인간과 인간의 공존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포스트휴머니즘은 인간과 비인간, 더 나아가 나와 타자의 경계를 허무는 일이라고 답한다.

 

 

*강영안, 이상헌. (2013). 「포스트휴머니즘에 관한 철학적 성찰」. 『지식의 지평』 15(15). pp 154-155
**브루노 라투르. (2018). 『인간 사물 동맹』. 홍성욱 역. 이음. pp 21-24
***전의령. (2017). 「“길냥이를 부탁해”: 포스트휴먼 공동체의 생정치」. 『한국문화인류학』 50-3. pp 9-13
****전세재. (2008). 「포스트휴먼: 의인화와 동물-되기의 기법」.  『문학과환경』 7(2). pp 163-178

 

글 박건 기자
petit_gunny@yonsei.ac.kr

사진 윤채원 기자
yuncw@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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