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현 2 재건축구역 철거집행 현장에 가다

“전 마포구 아현동 572-○○호에 월세로 어머니와 살고 있었는데 3번의 강제집행으로 모두 뺏기고 쫓겨나 이 가방 하나가 전부입니다. 추운 겨울에 씻지도 먹지도 자지도 못 하며 갈 곳도 없습니다. 3일간 추운 겨울을 보냈고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워 자살을 선택합니다.”

고(故) 박준경씨가 남긴 유서의 일부다. 지난 2018년 12월, 아현 2 단독주택 재건축구역에 거주하던 박씨는 아무런 이주대책을 보장받지 못한 채 쫓겨났다. 그의 자살이 알려지고 나서야 마포구청은 잠정적으로 공사를 중단했다. 용산 참사 10주기를 맞이한 지금, 아현동에는 당시의 비극이 되살아나고 있다.

▶▶'선대책 후 철거 이행하라' 등의 문구가 새겨져 있다.

24차례의 강제집행,
부서진 마을


아현뉴타운은 일곱 곳의 재개발구역과 한 곳의 재건축구역으로 나뉜다. 아현2구역은 아현뉴타운의 8개 구역 가운데 유일한 재건축구역이다. 재개발구역 세입자에게는 주거 이전비와 공공임대주택 입주자격 그리고 이사비가 주어진다. 반면 재건축 세입자에게는 퇴거 명령만이 떨어진다. 철거용역의 폭력에 저항해도 밀려난다는 결론은 변함이 없다. 같은 동네에서 살아온 세입자지만, 개발사업의 이름으로 운명이 갈렸다.

재건축 강제집행 이후 철거민은 빈집을 찾아 떠돈다. 바람이라도 피하려 전기도, 물도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하루를 버틴다. 철거 현장에는 사람이 거주할 수 없다. 외벽은 반쯤 허물어져 있고, 온갖 세간살이와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다. 사방이 깨진 유리 조각이라 몸을 뉠 곳조차 없다. 그러나 빈손으로 쫓겨난 철거민은 현장을 떠돌 수밖에 없다.

열악한 빈집 생활도 오래가지 못한다. 재건축 지역에 머무는 사실이 적발되면 재개발조합 관계자와 철거용역이 이들을 쫓아내기 때문이다. 이에 아현2구역 철거민들은 마포구청에 위기를 호소했다. 지난 2018년 11월 21일에는 재건축 중인 건물에서 고공농성이 벌어졌다.

재건축을 둘러싼 사업 주체와 세입자 간 갈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철거민은 지원이 절실하지만, 사업 주체는 이들에게 보상을 제공할 법적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아현2구역과 같은 단독주택 재건축 지역 세입자의 대부분은 자력으로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어렵다. 은평주거복지센터에서 주거취약계층 7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16년 주거복지실태조사』에 따르면 세입자의 80% 이상이 70대이다. 무직자 및 연금생활자의 비율도 88%에 달한다. 이강훈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부본부장은 “사회적 취약계층 비중이 높은 단독주택 재건축 세입자를 위한 실질적인 이전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무너져 내린 아현2구역 철거 현장의 모습이다.

재개발이냐 재건축이냐,
엇갈린 희비


재개발과 재건축사업의 차이는 미묘하다. 두 사업은 공공 인프라*를 기준으로 나뉜다. 공공 인프라가 노후한 지역은 재개발이 이뤄지고, 상대적으로 양호한 지역은 재건축이 진행된다. 「토지보상법」 제78조는 ‘공익사업으로 인해 주거지를 상실하는 자에게는 대통령령에 따라 이주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재개발사업은 공익사업의 범주에 놓인다는 이유로 토지보상법에 따라 세입자에게 보상규정이 적용된다. 반면 재건축사업은 공익사업으로 인정되지 않으며 보상 적용대상에서도 제외된다.
이렇게 보상규정이 다른 것은 재건축사업이 민간사업으로 규정됐기 때문이다. 개발 초기에 재건축사업은 ‘개인의 사적 이익 창출’ 수단이라는 성격이 두드러졌다. 이는 오래된 아파트를 재건축함에 따라 집값이 급증한 것과 맞닿아 있다. 1970년대 후반에 형성된 강남 일대 아파트 단지는 재건축을 통해 새롭게 정비됐다. 집값은 큰 폭으로 상승했고, 재건축 예정 아파트는 투자가치가 높은 재산으로 거듭났다. 안전등급진단에서 D등급을 받아 재건축사업 인가받은 것을 플래카드를 내걸며 축하할 정도였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재건축구역 거주자들에 대한 보상대책은 불필요하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현재의 재건축사업은 강남 일대 아파트 단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주원 국토교통부장관 정책보좌관은 “단독주택 재건축사업은 도시정비 초기에는 없던 사업”이라며 “지난 2011년 도시정비법의 개정 및 통합과정에서 단독주택 재건축은 보상제도 대상에서 자연히 제외됐다”고 설명했다. 이원호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재건축사업도 도시환경을 개선하고, 주택 공급을 확대한다는 점에서 공공성을 지닌다”며 “보상의 기준이 되는 공공성을 규정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재건축사업 보상대책이 없다는 점이 계속 지적되자 법원은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청구했다.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은 지난 2월 4일 「재건축 시 세입자 보호 강화법」을 대표 발의했다. 금 의원은 “정비기반시설이 양호한 정도와 세입자 보호 여부의 필연적 관련성을 찾기 어렵다”며 “재건축구역 내 세입자에게도 재개발구역 세입자와 마찬가지로 손실보상 청구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건축구역 세입자에게 재개발구역과 동일한 보상대책이 내려져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철거민에게 지원되는 보상금이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현행 도시정비법에 따라 주거 이전비**는 200만 원가량으로 책정돼 있다. 이는 치솟는 서울 지역의 집값과 동떨어진 액수로, 임대보증금을 간신히 마련할 수 있는 정도다. 정상길 은평주거복지센터 센터장은 “보상대책의 빈틈은 지자체의 조례나 예산만으로도 메울 수 있다”며 “서울시에서 LH 공사의 장기 미임대 주택, 지역의 빈집 주택을 고쳐서 사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철거 후진국은 말이 없다


강제철거현장 퇴거자를 위한 보상대책만큼이나 철거 과정의 폭력 문제도 심각하다. 용역을 동원한 강제철거는 현행법상 정당한 행위다. 재건축조합이 철거민을 상대로 명도소송***을 청구할 경우, 법원의 강제집행 관련 규정에 따라 용역의 개입이 허용된다. 폭력 발생에 대비해 철거집행 현장에는 경찰과 인권 변호사를 비롯한 서울시 직원이 출동한다. 그러나 이들에겐 폭력적인 강제철거를 제어할 권한이 없다. 김민수 개포 8단지 상가대책위원장은 “강제철거 현장에서 인권지킴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며 “현장에서 발생한 폭력 사태에 대한 행정 조치를 넣어도 제대로 된 답변을 얻기 어렵다”며 무용한 행정 조치를 비판했다.

한국의 철거 현장은 잔혹하기로 악명높다. 개포 8단지 공무원연금매장 철거 현장에서는 8명의 상인을 끌어내기 위해 400명의 용역이 동원됐다. 이들은 상인들이 점거한 건물 안에 소화기를 살포해 상인들을 건물 밖으로 끌어냈다.

한국 국회는 1990년 유엔 사회권 규약을 비준했지만 규약에 명시된 주거권 보호와 강제퇴거 금지의 원칙을 지키지 않고 있다. 지난 2001년 있었던 유엔사회권위원회(ICESCR)는 민간개발 사업에 의한 강제철거 피해자들에게 보상과 임시주거시설 등의 보호를 제공하지 않는 실태를 지적했다. 2018년 5월 한국 주거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아현 2 재건축구역의 현장을 방문한 유엔주거권특별보고관 역시 규약 위반을 지적했다.

 

강제철거로 사람이 죽었다. 이번에도 “보상대책을 빠른 시일 내에 마련하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10년 전 용산 참사 때와 다름없이 모든 것이 그대로다. 누군가가 목숨을 내놓아야 논의가 이뤄지고, 남겨진 이들을 위한 대책은 아직 없다. 재건축 공사는 오는 3월부터 재개된다. 재건축구역 철거민은 봄이 오는 것이 두렵다.

 

 

*공공 인프라 : 도로, 상하수도, 공원, 공용주차장 등 일반적으로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공급하는 정비기반시설
**주거 이전비 : 공익사업의 손실 보상 중 하나로 주거용 건물의 소유자 및 세입자에게 지급되는 돈으로, 임시거처 마련에 쓰인다.
***명도소송 : 채무자나 세입자 등 인도 명령 대상자가 일정 부동산을 점유하고 있을 때 매수인이 관할 법원에 부동산을 넘겨 달라고 제기하는 소송

 

 김민정 기자
whitedwarf@yonsei.ac.kr

사진 최능모 기자
phil413@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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