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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연세문화상] 호텔 헤밍웨이

[박영준 문학상(소설 분야) 가작]

호텔 헤밍웨이

이다혜(철학·16)

1

또독.. 또도독...

미치겠다. 또 시작이다. 고무양동이 속으로 물이 한두 방울 떨어진다. 밖에 비가 또 오나 보다. 일전에 잘 펼쳐놓은 철사 옷걸이를 집어들고 방 천장을 꾸욱 꾸욱 눌러준다. 밑에 받쳐놓은 갈색 양동이로 빗물이 촤르르 쏟아져 내린다. 한꺼번에 다 쏟아져서 물바다가 되지 않게 하려면 이렇게 미리 한 번씩 야무지게 눌러주어야 한다.

“글러 먹었어. 아예 다 부수고 새로 지어야 해.”

찢어진 천장을 보고선 호텔 매니저가 처음 한 말이었다. 사정을 들어보니 이 건물을 처음 지을 때부터가 문제였다는 것이다. 당시의 건물주는 돈방석에 나앉은 중국인이었는데, 한국말도 제대로 못하고 이곳 물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는 한국 건설업자들이 그 불쌍한 할아버지를 만만하게 보고선 건설비의 일부를 떼어먹고는 부실공사를 했다고 한다. 이후 몇 명의 주인들이 돌아가며 이 호텔을 인수해서는 장사를 여러 번 시원하게 말아 드시고, 지금의 건물주가 2년 전쯤 사들인 것이 현재의 호텔이었다. 인수 당시 내부공사는 일이 너무 커지니 외관만 살짝 리모델링했다고 한다. 겉은 그럴 듯해 보여도 내부는 썩어빠진 이 호텔의 역사를 브리핑하자면 그러하다. 아무리 이십 년이 훌쩍 넘은 건물이라고는 해도 장마철이라고 배수관이 샌다는 건 너무하지 않나 싶다. 별 몇 개나 달 수 있을 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름 호텔인데.

7월 초에 큰 비가 한 번 온 적 있다. 그 때가 시작이었던 것 같다. 내가 사는 지하방의 낮은 천장에는 벽지 여러 장이 나눠서 발려져 있는데, 천장 가운데 쪽 벽지들을 잇는 마감선 부분이 이미 조금 측축해 보이긴 했다. 그 때만 해도 업무 후 쏟아지는 피곤함과 이십대 청춘다운 안전불감증으로 점철되어 있던 나는 누런 천장 따위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괜찮겠지 싶었다.

7월 중순으로 접어들고 장마철이 오면서 마감선의 붉은 기는 슬슬 불안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 선을 중심으로 천장은 불룩해지기 시작했는데, 현실감각이 한참이고 떨어지는 나는 이불 위에 누워 그 축축한 천장을 보면서도 고등학교 생물 시간에 배웠던 공변세포 따위나 떠올리고 있었다. 매니저에게 얘기를 해야 될까 싶기도 했지만 한창 성수기라 일개 신입직원 따위에겐 신경도 안 쓸 게 눈에 선했고, 그러면 또 혼자 비참해질 미래의 이은수가 안쓰러워 가만히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다. 자려고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웠는데, 머리 바로 옆에서 뭔가 촤르륵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무서운 마음에 후다닥 스위치 쪽으로 달려가 불을 켰다. 그러고선 휙 등을 돌려 방을 돌아 봤는데, 그 때의 황당함은 뭐라 표현하기 힘들다.

방에서 비가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천장에서 비가 내리고 있었다. 공변세포는 도톰한 입술을 벌리고 맑은 빗물을 있는 힘껏 토해내고 있었고 너무 어이가 없던 나는 멍하니 웃으며 그 꼴을 한참 쳐다봤다. 십 분 정도 지났나. 비가 그쳤다. 나는 밖으로 나가 호텔 뒷구석에 대충 널브러져 있던 고무양동이를 하나 가져와 비가 내리던 지점 바로 아래에 세워 두었다. 창고에 쌓여있던 수건도 한 무더기 챙겨 와서 방바닥에 고인 웅덩이 위로 펼쳐 놓았다. 물을 먹어 못 생겨진 흰 수건들에는 파랗고 반듯한 글씨로 ‘HOTEL HEMINGWAY’가 적혀 있었다.

2

대학에서의 4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돈 없어도 술은 먹어야겠다면서 삼 천원어치 떡볶이에 소주 몇 병씩을 까며 진상을 부리던 친구들은 일 년 이 년이 지나며 한 명씩 어디론가 사라졌다. 밥 사내라 술 사내라 하던 귀여운 후배들도 몇 년이 흐르자 하나 둘씩 군대도 갔다 오고, 교환학생도 다녀오면서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누가 어디 시험에 합격했니 어디 공모전에 당선됐니 하는 얘기들이 대학 사람들 사이에서 오르내렸고, 다들 멋진 이름으로 불리는 프로젝트나 소모임은 한두 개씩 하고 있었다. 하다못해 복수전공, 부전공이라도 하는 게 정상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졸업할 무렵이 되었다. 그제서야 주변을 돌아본 나는 동기들이 굽 높은 신발을 신고 다니거나 정장을 한 벌씩 맞추기 시작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취업으로는 답 없는 과에 온 이상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닭집 차려서 순살강정이나 튀기며 밥 벌어먹고 살자는 등 농담따먹기를 하던 친구들이 은근슬쩍 탄탄대로를 밟아가며 조금씩 멀어지는 모습을 보며 배신감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시간과 사람은 흘러가고 있었고 멈춰있는 것은 나 이은수 뿐이었다.

“니는 설칠 만큼 설쳤고, 부모 속 썩일 만큼 썩였으면 이젠 좀 하기 싫은 것도 해야 되지 않겠냐.”

제대한 직후의 경태가 내게 해 준 말이다. 꼰대새끼. 속으로 중얼거렸다. 군대 한 번 갔다 오더니 지 혼자 세상 모든 걸 아는 척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부정할 수는 없었다. 쓴소리 해줄 친구도 몇 남지 않았다. 진심어린 친구의 걱정마저 귀 틀어막고 모른 체 할 정도의 배짱은 없었고, 번듯한 연대생 타이틀만 믿고 버티기엔 눈앞에 닥쳐오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결국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으나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에, 인턴이고 공모전이고 이것저것 알아보기 시작했다.

남들이 해낼 때는 깔끔하고 예쁘장한 결과만 보여서 그랬는지, 쟤가 할 정도면 나도 하겠다 싶었던 것들이 막상 직접 하려니 참 깝깝했다. 학교 다니면서 놀고 먹기만 한 것도 아닌데. 열심히 수업을 하나씩 듣다 보면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를 자연스레 알게 될 것이라던 선배들의 말은 죄다 새하얀 공갈빵이었는지, 지난 사 년은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흘러왔다. 자기소개서는 나만의 스토리가 제일 중요하다고 모두가 그렇게들 핏대를 세우던데, 별다른 필연성 없이 살아온 일개 학부생 이은수는 탄탄한 스토리는 커녕 뚜렷한 목표의식 하나 없었다. 명문사학을 다니면서도 넣는 회사마다 우수수 떨어지는 나는, 서울 사*버 대학만 나와도 나를 찾는 회사 많아진다는 지상파 광고가 저 멀리서 들려올 때마다 이 우연성 투성이의 인생을 대체 어떻게 복구해야하나 시름에 빠진 채로 덜컥 졸업을 하게 되었다.

최후의 보루는 하나 남아있었다.

딱히 답이 없어 보였던 것은 그 분들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저녁 때 집에 들어가면 누구네 집 아들이 이번에 몇 급 합격했다드라, 이쪽으론 이 학원이 제일 잘 나간대드라, 아빠가 요새 너 걱정을 많이 한다, 그렇다고 엄마가 부담 주는 것은 절대 아니다, 등등의 말들이 온 집안을 둥둥 떠다녔다. 저녁이 있는 삶을 주장하던 누군가를 속으로 욕하며 나는 어서 부모님이 잠에 들기만을 간절히 원했으나, 처음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말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내 맘속에 콕콕 박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절대 부담을 받은 적 없는 나는 어쩌다보니 k모학원 행시종합 종일A반 수강생으로 등록이 되어 있었다.

하기 싫었다. 하기 싫었고, 재미도 없었다. 같은 ‘행종종A반’ 수강생들의 얼굴은 노량진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세 번 넘게 튀겨진 오래된 오징어튀김 마냥 눅눅했고 그런 얼굴들에겐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그닥 들지 않았다. 그들 눈에 비춰지는 내 모습도 비슷했을 거다. 세 장 묶어 만 원에 판매하던 이마트 반팔티를 요일별로 흰색 회색 검정색 돌려가며 입는 고시생이 누군가의 눈에 띄기란 어려운 법이다. 그렇다고 해서 얼굴이 받쳐주랴, 성적이 뛰어나랴, 고시 정보통이 있으랴. 친구가 된다 해도 이렇다 할 메리트가 없던 나는 다른 고시생들 입장에서도 굳이 시간과 감정을 할애하면서 친해질 필요 없는 인간유형의 적절한 표본이었다.

외로웠다. 사람은 많은데 온기는 없었다. 초여름인데도 찌는 폭염을 뚫고 낡은 냄새가 나는 일호선에 시체처럼 실려가 도착한 학원은 이 계절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냉랭했다. 에어컨이 풀가동 되는 강의실에 앉아 파리한 형광등 밑에서 우리는 뭔가를 하긴 했다. 유일하게 따뜻하다고 느꼈던 곳은 건물 뒤쪽 흡연장소였다. 학원 뒷문을 밀고 섭씨 30도가 넘는 밖으로 나갈 때면 마치 추운 겨울날 몸을 부르르 떨며 따뜻한 우동집을 들어가는 것처럼 묘하게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쉬는 시간은 너무 짧았기에 나는 항상 허겁지겁이었다. 훅훅 양볼을 바쁘게 움직이면 어느새 성큼 다가온 빨간 가루들은 더 이상 탈 수 없었다. 나는 짧아진 꽁초를 땅에 버려 뒤꿈치로 지져 끄고선 다시 강의실로 들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학원이 끝난 뒤, 집으로 가는 열차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전철역 한구석에 기대어 꾸벅꾸벅 졸던 참이었다. 경태로부터 전화가 왔다. 뭐라 뭐라 하는데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열두 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라 주변엔 사람도 별로 없었는데 뭔가 너무 시끄러웠다. 믹서기라도 돌아가는 듯한 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경태로부터 성진이 이름을 들은 것 같았고, 자전거가 어쨌다 했고, 트럭이 어쨌다 했다.

전화를 받은 다음날 학원은 그만뒀다. 못 하겠다고 엄마에게 말했다. 아빠에겐 차마 말 할 용기도 없었다. 그러고 난 뒤 구인구직 사이트를 뒤져 숙식제공 일자리를 구해선 필요한 짐만 달랑 싸서 떠나버렸다.

3

핫바는 삼천 원, 맥주는 사천 원입니다. 헤밍웨이 모히또는 무알콜입니다. 영수증 버려드릴까요? 감사합니다. 쓰레기는 꼭 쓰레기통에 버려주세요.

제주도까지 와서는 수영장 관리를 한다고 했을 때 다들 하나같이 비슷한 반응이었다. 어릴 때부터 창의교육이다 뭐다 하며 주구장창 가르쳐봐야 뭐 하겠나. 어차피 우리네들 커서 하는 생각은 다 비슷비슷한 거 아닐까 싶다.

“제주도 왔어.”

“와 정말? 부럽다! 거긴 뭐 하러 간 거야?”

“호텔에서 수영장 청소하는데.”

삐빅- 이런 대목이 되면 대부분 당황하고 어떻게 말 이을까 어버버하다가, 결국은 근거 없는 동경으로 상황을 무마시키려 하는 것이 일반적인 대화흐름이었다.

“아... 그래도, 제주도잖아. 좋겠다!”

사실 이 섬이 대한민국 청춘들에게 그렇게 특별한 장소였는지는 그곳에 도착한 후에 알게 되었다. 다급했던 나는 서울을 벗어나고 싶었고, 알바몬을 뒤지며 숙식제공이 되는 일자리를 구하다 보니 강원도도 전라도도 아닌 우연히 제주도였을 뿐이었다. 물론 다른 도시들에 비해 덜 갑갑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당장 내가 잘 곳이 있고 돈 벌 곳을 찾았다는 점이었다.

여름 성수기였기 때문에 직원을 구하는 호텔들은 많았으나 굳이 이 곳을 고른 이유는 이름 때문이었다. 시설이나 위치 같은 건 제대로 보지도 않았다. 헤밍웨이를 그렇게 잘 알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나였지만, ‘호텔 파라다이스’, ‘호텔 뉴비치’ 이런 보급형 느낌의 이름보다는 ‘호텔 헤밍웨이’가 훨씬 나았다. 헤밍웨이, 헤밍웨이라는 그 부드러운 어감이 좋았다.

“하기 싫은 일도 해 보라는 말이 막 나가라는 뜻은 아니었다.”

제주도에 왔다고 통보하는 내 전화를 받고선 경태는 한숨부터 쉬었다.

“수영장 청소를 니가 꼭 해야 돼? 밥은 제대로 주냐. 페이는 얼만데.”

“니가 생각하는 것처럼 나쁘진 않아. 곱게 큰 연대생이 은근 블루칼라 무시하네.”

실제로 일은 어렵지 않았다. 바닷가에 위치한 이 8층짜리 건물 전체가 모두 호텔 헤밍웨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내가 일하는 곳은 옥상에 있는 야외수영장이었다. 시설이 최신식은 아니었으나, 옥상 난간 너머로 보이는 바다 뷰만큼은 오성급 호텔 저리가라였다. 매니저는 이 공간을 ‘루프탑 라운지’라고 불렀다.

나의 주업무는 수영장을 관리하고 그 옆에 있는 ‘스낵코너’에서 시시껄렁한 주전부리를 파는 일이었다. 메뉴도 세 개밖에 없었다. 핫바, 생맥주, ‘헤밍웨이 모히또’. 사람이 몰리는 오후 시간대에 나는 주구장창 핫바 비닐껍질을 까고 생맥주를 뽑아냈다. 헤밍웨이 모히또라니 말만 그럴싸 하지, 시중에 판매되는 모히또 시럽에 얼음과 사이다만 부으면 끝이었다. 이상하게도 모히또를 주문하는 사람들의 절반은 헤밍웨이를 꼭 ‘허밍웨이’라고 잘못 발음했다. 허밍웨이가 아니라 헤밍웨이에요, 라고 처음엔 하나하나 정정해주던 나도 나중엔 귀찮아서 그냥 아무 말 하지 않았다. 헤밍웨이 정도면 인지도나 네임밸류 측면에선 S급 소설가라고 생각했는데. 아저씨도 별 거 없었네요. 옥상 한 구석에 있는 헤밍웨이의 동상을 바라보며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축축한 수영장 옆에 뜬금없이 놓여있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동상을 처음 봤을 땐 뭐지 싶었다. 이런 거 하나 만들려면 최소 몇 백은 든다는데, 원래부터 이렇게 천대받았을 리는 없다. 아마도 인문학적 환상에 촉촉히 젖어든 역대 건물주들 중 한 명이 헤밍웨이의 소설을 읽고선 감명 받아 호텔 이름도 헤밍웨이로 짓고 동상도 주문제작하고 하지 않았을까. 과거엔 호텔 입구나 로비 중앙에 놓여 나름 포토존을 이루었을 법한 이 크고 무거운 머리는, 시대가 변하고 새로운 주인님을 섬기면서 옥상 구석으로 옮겨진 듯 했다.

지금의 건물주는 사실 이 동상의 존재조차 모르는 것 같았다. 골프와 술을 좋아하고 보라색 등산복을 즐겨 입으시는 칠십 다 된 할아버지였는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이 섬에만 해도 큰 건물이 몇 개 있고 서귀포 어딘가에서는 거대한 감귤농장도 운영하는, 제주도에서 손 꼽히는 유지 중 한 명이라고 했다. 그 돈 많은 할아버지가 호텔 로비에 비스듬히 앉아 매니저에게 신나서 골프 얘기를 늘어놓는 걸 멀리서 몇 번 보기만 할 뿐 그와 직접 말을 해 볼 기회는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 어르신께서 헤밍웨이가 누구인지는 물론, 그게 사람 이름이라는 것조차 모른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 또한 헤밍웨이를 ‘허밍웨이’라고 발음하는 사람들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저녁 열 시가 되면 사람들을 내보내고 나와 헤밍웨이만 남은 옥상에서 마감청소를 시작했다. 수중 청소기로 머리카락과 먼지들을 빨아들이고 걸레로 바닥얼룩들을 닦아냈다. 어질러진 의자와 테이블들을 하나씩 걷어와 한쪽 벽에 차곡차곡 쌓았다. 한치잡이배가 가장 밝게 빛나는 시간이 될 때쯤엔 청소가 끝났다. 온몸에 락스냄새가 배인 나는 옥상 문을 잠근 뒤 지하방으로 내려와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4

처음부터 지하방에 살았던 건 아니다. 호텔 근처에 위치한 작은 빌라에 직원숙소가 따로 있었다. 매니저가 알려 준 숙소에 짐을 풀고 다른 부서에서 일하는 언니들과 함께 네 명이서 한 방을 썼다. 그 방은 시설도 괜찮고 크기도 커서 네 명이 살기에 전혀 비좁지 않았다.

같이 사는 언니들도 좋은 사람들이었다. 나이가 가장 어린 나를 보며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고, 뭐든 알려주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 방은 뭔지 모를 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내가 여기 온 지는 벌써 3년이 다 되어가니 은수보다는 한참 더 있었네. 아직도 그 식당을 한 번도 안 가봤어? 일은 어때, 거기 완전 하는 일 없잖아. 편한 줄 알아야 돼. 여긴 한 번 소문나면 끝장이야. 하긴 어리니 아직 잘 모를 수 있어. 불편한 거 있음 무조건 언니한테 말해, 내가 도와줄게.

퇴근 후 침대에 누우면 그 때부터 나의 머리 위로 수많은 얘기들이 오갔다. 누가 누구와 만난다, 오늘 매니저가 로비 직원에게 뭐라고 욕했다, 점심시간마다 걔가 몰래 밖으로 나가서 담배를 피우더라, 등의 것들이었다. 방은 환기도 잘 되고 분명히 넉넉한 것 같은데, 나는 어딘지 모르게 숨이 막혔다.

그 방에 들어간 지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 성수기를 맞아 새 직원이 한 명 더 들어왔다. 방이 좁고 침대가 모자란다는 언니들의 불평을 듣고 매니저는 호텔 지하에 남는 방이 있다면서 거기로 갈 사람은 가도 된다고 했다. 지하라서 창문도 없고 습하다는 그 방을 굳이 가겠다고 자처한 막내직원을 보며 언니들이 뭐라고 수근거렸을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오른손으로 친절을 건네 준 그들의 왼손바닥 아래엔 묘한 마음이 숨어 있는 듯했고, 그 마음을 견제라 부르든 우월감이라 부르든 이름은 뭐든 상관없다. 나는 그저 밤이 되어도 형광등을 환하게 켜 놓는 그 넓은 방을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다.

계단을 따라 호텔 지하로 내려가면 수건과 이불 등을 보관하는 커다란 창고가 있었다. 낡은 세탁기들을 지나 빽빽하게 수건을 쌓아 둔 선반들 사이로 좁은 복도를 걸어가자 제일 안쪽에 붉게 녹이 슨 작은 철문이 나왔다. 뻑뻑한 문을 밀고 들어가니 축축한 하수구 냄새와 찌는 듯한 열기가 온몸을 감쌌다. 불을 켜 보니 바닥에 깔린 누런 장판은 가위로 삐뚤삐뚤하게 잘려 있었고 한쪽 벽은 어린아이가 대충 그린 수채화처럼 생긴 곰팡이가 가득 피어 있었다. 내 방이었다.

영화 올드보이 속에서나 보던 서슬 퍼런 화장실이 실제로도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곰팡이가 검버섯처럼 울긋불긋 핀 그 초록괴물 안으로 들어갈 때면 난 두 눈을 꼭 감고 샤워했다. 제습기를 온종일 틀어놓아도 방의 꿉꿉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창문도 없고 이웃도 없는 이 작은 방은 하루 24시간이 고요한 한밤중이었다. 벽시계도 없는 지하방에서 혼자 이불을 깔고 누워 잠든 나는 타인의 아침을 알려주는 휴대폰 알람소리에 부스스 일어나 방을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층으로 올라가 옥상 문을 열면 시야 속으로 무례하게 들이닥친 햇빛에 나는 눈이 찌푸려졌다. 바닥을 대충 쓸고 간이의자를 적당한 위치에 옮겨놓는 등 손님 맞을 준비를 마치면 오픈 시간까지 십 분 십오 분 정도 남았다. 나는 네모난 수영장 둘레를 따라 선분처럼 가지런히 누워 꿈벅, 꿈벅, 눈을 감았다 떴다를 느리게 반복했다. 사심 없는 햇빛은 내 얼굴과 몸 곳곳에 균등하고 꼼꼼하게 쏟아져 내렸다.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은 흠 잡을 데 하나 없었다. 불개미처럼 작은 비행기 한 대만이 저 완벽한 천장을 함부로 베어내고 있었다.

*5*

섬사람들에게 흐르는 이 뻑뻑한 기류 속에서 나는 뭘 해야 할지를 몰랐다. 거지같은 교통편을 주구장창 원망하기도 했다. 기왕 관광지에 온 거 여행도 좀 다니면 좋겠다 싶었는데 막상 그게 잘 되지 않았다. 주 6일을 찌는 더위 속에 하루 종일 서 있자니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날씨와 관계없이 십여 년째 학교 앞에서 떡볶이를 끓여 온 그 분들이야말로 진정 시대의 영웅이구나 싶고...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던 중학교 시절 담임선생님이 떠오르며 나 여기 왜 온 걸까 싶고... 간신히 맞은 휴무 날도 별 다를 게 없었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 어기적어기적 편의점으로 걸어가선 대충 김밥을 사 먹고, 밀린 빨래를 돌린 뒤 방청소를 했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숨 돌려보면 어느새 저녁이 되어 있었다.

여행은 꿈도 못 꿨지만 바다는 실컷 보았다. 수영장 청소가 끝난 뒤 가끔씩 혼자 생맥주를 뽑아 마셨다. 공짜 맥주에 기분좋게 취한 채 타일바닥에 발라당 드러누워 밤하늘을 멍하니 쳐다볼 때면 파도소리가 조용히 들려왔다. 매일 달라지는 하늘색이었다.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일주일 내내 호텔 헤밍웨이를 벗어나지 못해도 그럴 때만큼은 나는 꼭 아무도 모를 나만의 시간 속에서 가슴이 뭉근해졌다.

항상 혼자 지냈던 것만은 아니다. 이 곳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로비에 일하던 분과 친해졌다. 키도 훤칠하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사람이었는데, 잘 웃는 성격 때문인지 호텔 사람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그런 사람이 말단 신입직원인 내게 매번 먼저 인사를 하고 관심 가져주는 게 고마웠다. 처음에는 호텔 사람들끼리 만나는 술자리에도 나를 몇 번 불러냈고, 쉬는 날에는 그 사람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저녁을 먹으러 나가기도 했다. 그를 비롯해 다른 직원들과도 가까워지며 나도 이제 이 곳에 나름 친구가 생겼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아무리 대학 친구들과 멀어지고 학원 사람들에겐 마음도 열지 못했지만 어디서든 인연은 새롭게 만들어가는 법이라는 생각에 괜스레 뿌듯해졌다.

그렇게 이삼 주를 지냈나. 언젠가부터 그는 연락이 뜸하기 시작했다. 쉬는 날에도 말없이 다른 직원들끼리 놀러 나가는 것 같았고 복도에서 나를 마주쳐도 건성으로 인사를 했다. 저녁을 같이 먹자해도 선약이 있다거나 야간근무를 서게 되었다는 그렇고 그런 답변이 돌아왔다. 그와 친한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를 피하는 것 같았다.

설마 했는데 한국 삼류영화 속에서나 자주 등장하던 전개가 내 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다. 며칠간 핫바를 데우고 수영장 바닥을 닦는 내내 어느 부분이 어떻게 잘못 된 건지 생각을 해도 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잠들기 전 이불 위에 몸을 동그랗게 웅크리고 누워 고민을 하다가, 어떻게든 만나서 얘기를 해봐야겠다는 마음에 그 사람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번 주말에는 꼭 시간을 내달라고 말했다.

그 사람은 알겠다고 했다. 답장을 읽은 뒤 나는 정자세로 바로 누워 다리를 쭉 펼쳤다. 핸드폰을 꼭 잡은 두 손을 배꼽 위에 올려놓고 천장을 멍하니 쳐다봤다. 그 때쯤에 천장은 이미 붉은 기를 띄고 있었다.

오후 다섯 시쯤 주차장으로 나가자 그 사람의 차가 보였다. 제주도에 처음 와본다는 내게, 너 하고 싶은 건 다 하자던 말은 거짓말이었나 보다. 그 말을 했던 이 주일 전에는 거짓말이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 운전석에 앉아 있던 그는 피곤해 하는 듯 했다. 그럼 그냥 간단히 저녁이나 먹자 했다. 며칠 내로 장마가 시작된다고 들었다. 날이 덥고 습했던 터라 시원한 게 먹고 싶었다. 그렇게 맛있다던 시내 밀면집이 전부터 가 보고 싶었다. 차를 타고 삼십 분 정도 가는 동안 서로 말 한 마디를 하지 않았다. 기왕 온 거 수육도 작은 걸로 하나를 시켰지만 그 사람은 잘 먹지도 않았고, 내가 거의 다 먹다가 결국은 남겨 버렸다. 입에서 살살 녹는 맛이었다.

그냥 만나지를 말 걸 그랬나보다. 밥 먹을 때 자꾸 휴대폰을 보고 차 안에서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로 음악을 크게 틀어놓는 그 사람과 함께 있으면서 뭔가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뭘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까 그런데 다섯 시에 나가려면 몇 시부터 준비를 시작해야 하지 옷은 뭘 입고 나가지 그 옷을 입으면 신발은 뭘 신어야 하지 이런 시덥잖은 고민들을 하느라 혼자 긴장하던 나의 전날 밤이 부끄러워졌다. 결국은 그가 태워주는 차를 타고 저녁 일곱 시 쯤 동네 마트에 들러 생수와 휴지 이런 것들을 사서는 나의 지하방으로 들어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불룩해지는 나의 천장을 노려보았다. 멋있는 사람들은 어떤 기분일까. 나는 그렇게도 근사한 사람 앞에 앉아 시원한 국물을 마시면서도 턱... 목이 막혔는데 초라하게 목구멍이 갑갑해 버렸는데 그 사람은 후루룩후루룩 잘만 삼켜 버리던 그 면발들 그냥 나 혼자 와서 맛있게 먹고 갈걸 와장창 상을 엎어 버리고 싶은 기분 놋쇠그릇을 바닥에 내동댕이쳐 버리고 싶은 기분 그러고서도 식당을 나서기 전에 화장실에 가서 머리를 빗고 거울을 보며 입술색을 칠하던 나는 또 흘끗흘끗, 근사하다는 사람들을 흘끗흘끗, 쳐다보는 것이었다.

6

그 때 경태의 전화를 받고서도 성진이의 장례식은 가지 않았다. 가고 싶지 않았고 가는 게 맞는 걸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찌 됐든 안 갔다.

성진이를 처음 만난 건 갓 대학에 입학했을 때였다. 스무 살의 성진이는 키도 작았고 몸집도 왜소했다. 동글동글한 얼굴과 눈코입을 가졌었는데, 피부가 엄청 하얘서 작은 북극곰 같았다.

무언가를 기록하는 걸 좋아했던 성진이는 항상 작은 하늘색 노트를 들고 다녔다.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며 연필로 끄적이기도 했고, 아랫입술을 살짝 벌리고선 열심히 그림을 그릴 때도 있었다. 어렵거나 대단한 것들은 아니고 달, 새, 꽃잎 같은 것들이었는데, 나는 그게 나름 귀엽다고 생각했다.

성진이는 어딜 열심히 돌아다니는 사람은 아니었다. 나와 경태와 보내는 시간 이외에는 항상 집에서 조용히 책을 읽거나 혼자 산책을 나가는 시간이 많은 것 같았다. 학교에서도 수업 외 시간에는 자신의 하늘색 노트에다 뭔가를 기록하는 것 외에는 딱히 하는 일이 없어 보였다.

그런 성진이에게 나와 경태는 자꾸 어딜 가자고 했다. 학교 앞에 튀김집이 그렇게 맛있대드라, 이번 주말에 한강공원에 가수 누가 와서 공연을 한다더라, 하면서 조용조용한 성진이를 자꾸 밖으로 끄집어냈다.

그런 우리에게 성진이는 신기하다고 했다. 자기는 어디가 맛있는 식당인지도 모르고, 어딜 가면 그렇게 경치가 좋은지도 잘 모르는데, 해마다 계절마다 그렇게 맛있는 걸 먹고 좋은 걸 보러다니는 사람들이 신기하다는 거였다.

“야 니는 뭐가 다 그렇게 맛있냐. 너한테 맛없는 게 뭔데 그럼.”

“나는 이런거 잘 모르니까...”

답답해하는 나를 보면서도 성진이는 웃으면서 느릿느릿하게 대답했다. 성진이는 뭘 먹든 맛있다 했고 어딜 가든 다 멋지다고 했다. 그런 성진이는 사람을 편하게 했다. 까다로운 경태랑은 다르게 뭘 하든 좋아했고, 말이 많은 편도 아니라서 함께 있을 때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엄마 말을 잘 듣는 조용한 아기 같았다.

그런 성진이가 유일하게 자주 가는 곳이 한 군데 있었다.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했던 성진이는, 한 달에 한두 번씩 수업이 끝나면 학교 체육센터에서 낡은 자전거를 빌려서는 어딘가로 자꾸 가는 것이었다. 어딜 갔다 온 거냐 물었더니 바다라고 했다.

“학교 근처에 바다가 있어?”

“나만 아는 곳이야. 다음에 같이 가자. 거기 정말 좋아.”

사진을 보여달라 해도 성진이는 절대 보여주지 않았다. 그냥 다음에 자기와 직접 가자고만 했다. 나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이 학년이 되면서 나와 경태는 단과대학 학생회에 들었다.

학생회에는 말도 잘 하고 멋있는 선배들이 많았다. 역사나 정치와 같이 사회적인 문제들에 관심도 많았고, 다들 자기 주장도 또렷했다. 학생회 사람들끼리 만든 사회과학 소모임에도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되었다. 마르크스며 아도르노며 나는 어디선가 들어본 적 밖에 없는 서양 똑똑이들의 이름을 선배들은 막힘없이 거론하며 열을 다해 토론했고, 볼셰비키니 변증법이니 그런 것들이 뭔지 모르는 나는 뜨거운 목소리들 사이에 둘러싸인 채 내가 쌓아 온 무지와 무관심과 마주하게 되었다.

내가 뭘 너무 모르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연대생이라 해도 불타는 가슴으로 민주화를 외치던 몇 십 년 전의 그들과는 달리, 개인적인 문제들로 투정 부리기에 급급한 이십일 세기의 나는 부끄러웠다.

그런 나를 학생회 선배들은 누구보다도 더 잘 이해해주었다. 좋은 책들도 많이 추천해주었고, 자유토론시간에 기가 눌려 작은 목소리로 발언을 시작하는 내 말에도 항상 귀를 기울여주었다. 공모전이나 세미나 등 다양한 행사들도 많이 기획했고, 학기말에는 각자 쓴 에세이들을 엮어 문집을 출판할 예정이라고 했다. 멋진 대학생들이었다.

나서는 성격이 아니었던 성진이는 당연히 학생회에 지원하지 않았다. 매일 그림만 그리고 자전거만 타러 다니는 성진이가, 노수석 열사가 누구인지, 윤동주의 시가 우리 문학사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등을 알 리 없었다.

성진이가 같이 다니기에 재밌는 사람이진 않았다. 술도 잘 마시고 말도 잘 하는 학생회 사람들에 비해, 무슨 말을 해도 말없이 씩 웃기만 하는 성진이에겐 새로움이 없었다. 원래도 왜소한 체격인데다, 항상 어깨를 움츠리고 다니는 모습은 더욱 자신감 없어 보였다. 성진이가 대학생처럼 꾸밀 줄을 모르고 어린아이 같은 옷들만 입는 게 내심 창피했던 것도 사실이다.

매주 진행되는 회의와 소모임, 뒤풀이에 참석하느라 온종일 학생회 사람들과 시간을 보냈다. 자연스럽게 학생회 사람들끼리 무리지어 다니며 밥도 함께 먹고 수업을 들을 때도 모여 앉았다. 바쁜 건 경태도 마찬가지였다. 나와 경태가 없으면 성진이는 혼자 다닐 것을 알긴 했지만 새롭게 다가오는 인연들을 제쳐두고 성진이에게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어린애도 아니고, 대학생쯤 됐는데 알아서 하겠지 싶었다.

성진이는 그렇게 조금씩 멀어졌다. 같이 밥 먹자는 성진이의 연락에 이미 선약이 있거나 할 게 너무 많다고 하면 항상 다른말 없이 알겠다는 답장이 왔다. 그게 몇 번 반복되었고, 성진이는 더이상 먼저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서운한 티를 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나도 경태도 알았다. 그래서인지 성진이와 같은 기숙사에 사는 경태는 주말에 가끔씩 성진이를 불러내서는 일부러 배달음식도 시켜먹고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성진이에게 먼저 한 번을 연락하지 않았다. 성진이는 그렇게 이은수의 스무 살을 함께한 기억들과 나란히 접혀서 서랍 속 어딘가에 잘 놓여졌고, 난 그 스무 번째 서랍을 굳이 다시 열려 하진 않았다.

그렇게 몇 달이 흐른 뒤 어느 날 수업시간이었다. 나는 어김없이 강의실 뒤쪽에 학생회 사람들과 모여 앉았다. 그 수업에는 성진이도 있었다. 성진이는 항상 맨 앞자리에 앉았다. 각자 써 온 글을 발표하는 시간이었는데, 마지막 발표자로 교탁 바로 앞에 앉은 성진이가 지목되었다.

성진이는 작고 느린 목소리로 글을 읽기 시작했다. 워드 파일이 저장된 노트북을 가져오거나 깔끔한 에이포 용지를 인쇄해 온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하늘색 노트에 손으로 직접 써 온 것 같았다. 긴 글이었는데 에이포 용지 세 장 분량은 족히 되는 듯 했다.

사실 이번 과제는 점수에 직접적인 영향이 없어서 다들 대충 쓰거나 짧게 써 온 것 같은 눈치였다. 방학이 다가오는 학기말이기도 했고, 수업시간도 얼마 남지 않아 다들 곧 저녁 먹으러 갈 생각에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강의실 맨 앞에 앉은 성진이가 자신의 노트에 코를 박고 혼자 진지하게 글을 읽어 내려가는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우스웠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낮은 목소리 때문인지 내용이 잘 들리지 않았고 특별히 잘 쓴 글이라는 느낌도 받지 못했다.

그런 성진이를 보며 강의실에 있던 학생들은 지루해했다. 처음엔 서로 말없이 웃음기 섞인 눈빛을 교환하다가 나중엔 조금씩 킥킥대기 시작했고, 큰소리로 하품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중에서도 우리 쪽이 제일 어수선했다. 책도 많이 읽고 글도 여러 번 써본 사람들이라는 걸 티 내고 싶은 마음일까, 학생회 사람들은 성진이의 서투른 문장들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가 눈에 선했다. 아직도 성진이는 바보처럼 열심히 과제를 읽고 있는데 내 친구들은 대놓고 잡담을 하다가 일부러 소리를 내며 지익 필통 지퍼를 닫고 부산스럽게 가방을 챙겼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재미없는 글을 열심히 들어주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면 나 또한 성진이와 같은 재미없고, 쓸데없이 진지한 사람처럼 보일 게 분명했다. 나는 그냥 뻔뻔하기로 택했다. 의자 뒤에 걸어놨던 가방을 챙겨 책상 위에 올려놓고, 주머니에서 꺼낸 핸드폰을 쳐다보며 문자를 확인했다. 소란스런 분위기에도 성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자기 글을 읽었다.

수업이 끝난 뒤 성진이는 말없이 가방을 챙겼다. 내가 있는 쪽을 바라보는 게 느껴졌지만 나는 그 시선에 굳이 답하지 않았다. 때마침 학생회 사람들이 다음 주에 있을 오픈세미나에 대해 말을 걸어주어서 다행이었다. 나는 일부러 밝고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성진이는 나를 지나쳐 뒷문 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오른손으로 하늘색 노트를 쥐고 있었다. 문 옆에는 낡은 플라스틱 쓰레기통이 있었다. 성진이는 거기에 노트를 툭 던지고선 강의실을 나갔다.

놀란 나는 성진이의 뒤통수가 사라져 버린 뒷문만 멍하니 쳐다봤다. 그러다 뭘 먹고 싶냐는 선배들의 말에, 아무렇지 않게 메뉴를 고르고선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오후 일곱 시가 넘었는데도 해는 질 생각이 없었고, 창문을 활짝 열어놓은 가게들은 하나 둘씩 북적이기 시작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신촌 대로변을 누비던 우리들의 목소리는 시끄러웠다. 더운 여름날이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나는 강의실로 돌아와서 쓰레기통을 살펴 보았다. 쓰레기통은 텅 비어 있었다.

7

“은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렇게 평생을 함께할 것 같았던 학생회 사람들과의 인연이 길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가을이 되어 캠퍼스는 울긋불긋 물들었고 총학생회 선거 기간이 다가왔다. 우리 단과대 학생회 안에서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하려는 선본이 두 개나 만들어졌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원래부터도 사이가 안 좋았던 두 선본의 대표는 선거준비과정에서 더욱 사이가 틀어진 것 같았다, 나머지 학생회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지지선본에 따라 파가 나뉘었다.

답답했다. 그냥 마음에 안 들면 싫다 말하고 욕하고 싶은 건 욕하면 차라리 좋겠는데 서로 눈치를 보느라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조심하는 것이었다. 욕먹기 무서운 마음인지 저쪽을 이기고 싶은 마음인지 뭔진 몰라도, 엄밀하게 말하기 좋아하고 토씨 하나에 목숨을 거는 이 사람들 속에서 나는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급기야 학생회 사람들의 SNS에는 상대 선본의 이름만 거론하지 않았을 뿐, 서로를 어른스럽고 체계적으로 비난하는 긴 글들이 연속극처럼 올라왔고 그에 달리는 좋아요 갯수로 배틀이 펼쳐지는 광경은 말을 잃게 만들었다.

세칙 문제에 대한 안건은 그렇게도 빠르게 처리하고 경철 수고를 발제할 땐 그렇게도 깔끔하게 요약해 내던 사람들이, 어느 날 뜬금없이 아침드라마 속에 내던져지자 그 멋있던 모습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감정 섞인 말들만 허공에 둥둥 떠다녔다. 그 속에 이은수는 꿔다놓은 보릿자루마냥 뚱했다. 점잖고 논리적인 말들의 행진을 피곤하게 느낀 나는 민주사회의 시민으로서 덜 떨어져도 한참은 덜 떨어지는 레벨이었던 것이다. 그런 나의 김빠진 태도가 학생회 사람들에게 좋게 보일 리 없었다는 것은 나도 안다. 그래서 은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니고 미지근하게 구는 은수가 마음에 안 든다는 선배들의 말을 경태로부터 전해 들었을 때에도 나는 놀라지 않았다. 그냥 어서 올해가 지나고 학생회 임기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이후 학생회 사람들과는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다. 나의 스물 한 번째 서랍도 그렇게 닫혔다.

*8*

비가 오는 제주바다는 참 묘하다. 두꺼운 안개는 향처럼 피어올라 검은 바다를 뒤덮었고 층층이 갈라진 회색 하늘은 흐린 바닷물과 한 이불을 덮는다. 난간 아래 작게 웅크린 나는 그 엄숙한 과정을 숨죽이고 쳐다본다. 수평선이 사라지자 발 디딜 곳을 잃은 풍력발전기들은 중심을 못 잡고 허공에서 빙빙 돌아간다. 빗소리와 환풍기 소리에 가려진 파도는 고요히 넘어지길 반복할 뿐이다. 어젯밤 경태에게서 전화가 왔다. 주말에 시간 내서 한 번 놀러오겠다고 했다. 여태 말만 몇 번을 했는지 모른다. 입만 살아 갖고는. 오금이 저리는 기분이 들어 일어났다. 난간에 기대어 양손바닥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어젯밤 일을 마치고 청소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비가 내렸지만 우산을 쓰지 않아도 괜찮은 이슬비였다. 새로 산 레몬향 락스로 청소를 해서 그런지, 독한 락스와 새콤달콤한 레몬향이 섞인 냄새가 바닥에서 올라오는 게 왠지 기분이 종았다. 내일은 쉬는 날이었고, 방에 내려가면 뜨거운 물에 샤워하고선 지난주에 다운받아 놓은 영화를 보다 잘 생각이었다. 이번 주 동안 쌓인 쓰레기봉투만 버리면 이제 퇴근이었다. 뚱뚱하게 주름진 봉투의 끈을 손톱으로 묶어 문 쪽으로 끌어당겼다. 아뿔싸, 두 번 묶었어야 하는데 급한 마음에 한 번만 묶었나 보다. 순식간에 매듭이 풀리면서 백 리터짜리 쓰레기봉투가 한 쪽으로 기울며 쓰러졌다. 안에 꾹꾹 눌러 담았던 스낵코너 영수증들이 젖은 수영장 바닥 위로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버릴 때 구겨서 버리기라도 할 걸, 여기저기 널브러진 영수증 종이들은 물을 먹어 빗자루로 쓸어 담을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옥상 한 가운데에 쪼그리고 앉아 비에 젖은 낙엽처럼 평평하게 들러붙은 영수증들을 한 장 한 장 손으로 집어 다시 봉투에 담았다.

반 정도 주웠을까. 축축한 종이들은 쉽게 찢어져 버리며 검은 대리석 바닥에 자꾸만 눌러 붙었다. 글씨도 알아볼 수 없는 조각들이었다. 내가 만든 쓰레기를 내가 모아두었다가 내가 흘렸다가 다시 또 열심히 줍는 스스로가 바보 같아서 허연 종이들만 멍하니 쳐다보다가, 갑자기 어딘가 서러워진 나는 빗물이 흥건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그만 울음을 터뜨렸다.

헤밍웨이의 검게 주름진 얼굴은 내게 아무 말이 없었다.

*9*

“진짜 미쳤구나. 여기서 사람이 산다고? 겁 없다 니도 참.”

“겁이 없는 게 아니라 돈이 없는 거겠지.”

“꼭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냐?”

“꼭 나쁘지만은 않아.”

“그럼 뭐가 좋은데? 천장에선 비 내리고 화장실엔 곰팡이꽃이 흐드러지고? 니가 이렇게까지 에코프렌들리한 삶을 원하는지 나는 여태 몰랐다야.”

말로만 온다온다 노래를 부르던 경태가 진짜로 놀러왔다. 호텔에 짐을 풀고, 방을 구경하겠다며 부랴부랴 지하로 내려와서는 내 방을 보자마자 하는 소리는 뻔했다. 이제쯤 적응되기 시작한 공간인데 막상 제 삼자가 욕을 하니, 괜히 내 새끼 감싸돌 듯 방을 두둔하고 싶어지는 나를 보며 나도 참 제정신이 아니다 싶어 말을 돌렸다.

“오늘 어디어디 둘러봤어?”

“둘러보긴 어딜 둘러 보냐. 안 그래도 출발시간 늦은 비행기로 끊었는데 비 때문에 연착돼서 방금 도착했어.”

“그러게 좀 여유 있게 오라니까.”

“어우 내가 여길 뭐 여행 다니려고 왔냐. 그냥 니 살아있나 보러 온 거지. 애만 살아있는 게 아니라 온갖 벌레에 곰팡이도 다 살아있네.”

“됐어. 1절만 해. 술이나 먹자. 루프탑 가서 맥주 뽑아 올게.”

“이거 순 양아치네. 그거 원래 공짜로 먹어도 돼?”

“원래 되는 게 어딨어. 어차피 밤에는 아무도 안 올라와.”

핫바도 있고 맥주도 공짜로 먹을 수 있으니, 갖출 건 다 갖췄다는 내 말에도 경태는 굳이 편의점에 가서 소주를 사 왔다. 맥주는 배만 부른다나. 기왕 편의점 갈 거면 먹을 것도 좀 사오지, 소주 몇 병만 달랑 사 들고 온 경태는 스무 살 때나 지금이나 융통성 없는 건 변할래야 변할 수가 없나보다.

“여기 와서 만났다던 그 사람은 어떻게 됐냐. 같이 일한다매.”

“아 그 기생오라비? 끝났지 뭐. 애초에 잘 안 될 것 같았어.”

꾸깃한 이불은 방구석에 아무렇게나 밀어놓고 장판바닥에 신문지를 대충 깔아 술판을 벌렸다. 핫바 두어 개를 전자레인지에 데워 왔고, 수영장에서 쓰는 일회용 맥주컵에 한라산을 따랐다.

“너는 요즘 뭐 하는데.”

“그냥 뭐, 복학하고 하니까, 기분 이상하지 뭐.”

“학생회 사람들은 만나?”

“만나겠냐. 그 때 그 꼴 다 보고서도.”

혼자 있던 시간이 길었던 탓인가. 오랜만에 보는 친구가 너무 반가웠다. 티는 안 냈지만 여기까지 와준 것도 고마웠다. 편의점에서 소주를 안 사왔더라면 술이 부족할 뻔 했다. 큰 컵으로 벌컥벌컥 한라산을 마신 우리는 얼마 되지 않아 금새 얼굴이 벌게졌다.

“야, 닌 몰라도, 난 사실 처음부터 찜찜했어.”

“뭐가.”

“그냥, 학생회 하는데, 뭔가 자꾸 걸리더라.”

기계적 중립충이니 뭐니 하면서 욕먹은 나야 그렇다 쳐도, 사람들 앞에서 싹싹하게 잘만 하던 경태가 이제 와서 뭔 소리 하나 싶었다.

“왜, 대학을 다니다 보면 그럴 때가 종종 있잖냐. 교양수업시간에 쿤데라를 읽으며 울컥 하는 기분을 느끼거나, 도서관에서 유독 나무냄새 짙게 나는 팔백 번대 서가를 지나칠 때면 괜히 혼자 고즈넉해지거나. 또 매년 봄 비슷한 시기가 되면 선생님들은 으레 많은 일들이 있었던 지난 날들의 4월을 돌아보는 말씀을 하시고, 그 말들이 우리 마음 속으로 날카롭게 들어왔잖아.

그러나 막상 그 순간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분위기 좋은 커피숍에 앉아 맥북을 펼치고선 이번 주말엔 어떤 여가를 즐길지 고민한다든지, 자기 전 따듯한 이불 속에 누워 스마트폰을 켜서 평론가들 트위터나 엿보며 한줄 지식을 접한다든지, 혹은 대화는 겉돌고 소음만 떠다니는 왁자지껄한 술자리에 밤늦도록 남아 술만 진탕 마셔버리고는 에라 모르겠다 한다든지... 그게 전형적인 연대생 아냐?

우리의 부끄러움은 기호식품이 되어버린 것 같더라. 그게 나는 괴로웠어. 졸리면 커피를 마시고 손이 떨리면 담배를 찾듯이, 필요할 땐 그 부끄럽고 죄스러운 기분을 호출해 내서는 교묘하게 즐기고 이용하다가 적당한 시간이 지나면 오늘은 그쯤 했으니 가봐, 하고선 다시 훌훌 털어내는 거야. 진실을 동경하고 우수와 정의심으로 가득 찬 그러나 그것들에 무게를 실어줄 만큼의 자신과 열정은 없는 명문대생, 그게 그 때의 우리 아니었을까. 사실 정말로 진실을 동경했는지, 아니면 진실을 동경하는, 우수에 찬 대학생의 이미지를 동경했던 건지,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확실한 건, 우리의 부끄러움은 가능세계의 순간들에만 머물렀을 뿐 현실로 나아가지 않았다는 거야.“

학생회 얘기는 그만 듣고 싶었다. 이미 오래 전에 닫아버린 서랍이었다.

“뭘 이제 와서 그런 재미없는 얘길 하냐.”

“그래 미안하다. 이제 니 얘기 좀 해 봐.”

“할 얘기 딱히 없어. 요새 별 볼 일 없이 사는 거 알잖아.”

“없긴 뭐가 없어. 장례식은 왜 안 온건데.”

훅 들어왔다. 장례식이라니.

“야 근데 너 앉은 자리 조심해야 된다. 언제 또 물 떨어질 지 모른다니까... 이거 어떻게 고칠 방법 없나 몰라.”

“말 돌리지 말고.”

경태 표정이 진지하다. 애초에 여길 온 이유가 성진이 얘길 꺼내려고 인걸까. 나는 입안이 깔깔해진다.

“나 너한테 말 안 한 거 있는데. 사실은 거기 성진이랑 예전에 갔다 왔었던 거 알아?”

“어딜?”

“성진이 바닷가 근처에서 죽었다매. 뒤에 트럭 오는 거 못 보고선. 나 거기 어딘지 알아.”

“니도 간 적 있어?”

“어. 우리 일 학년 때였는데, 한 오후 다섯 시 쯤이었나. 수업 다 끝나고선 성진이가 자기 좋아하는 곳 있다면서 같이 자전거 타러 가자고 했어. 삼십 분 정도만 가면 바다가 나오는데, 지금쯤 가면 딱 노을이 지기 시작하면서 예쁠 거라는 거야. 그래서 나는 그 말만 믿고선 성진이 따라 자전거 타러 갔지 뭐. 바다도 안 본지 오래 돼서 보고 싶었고.

가면서 성진이가 말해줬는데, 해수욕장이 따로 있거나 한 곳이 아니라 그냥 해안도로랑 맞닿아 있는 넓은 바다라고 했어. 학교 뒤쪽 공사장을 지나 샛길로 빠져서 조금만 가니 웬 억새밭이 나오는 거야. 사람도 없는 도시에 웬 억새를 그렇게 주구장창 심어놨나 몰라. 관리도 하나도 안 되어있었는데, 거인 같은 풀들만 한가득 모여서는 바람에 마구 흔들리는 거야. 무섭기도 한데 멋있더라. 그렇게 억새밭 사이를 가로질러 한 삼사십 분을 갔나. 성진이가 거의 다 왔다고 했어.

그런데 그 바다가 알고 보니까 간척지였던 거야. 성진이가 전에 갔을 땐 분명 그렇지 않았다는데, 최근 들어 공사를 시작한 것 같았어. 바다에 도착해보니 이미 어떤 건설업체가 해안선도로를 따라 쭈욱 펜스를 쳐 놨더라고.

인도나 자전거 도로는 당연히 없어서 우리도 그냥 차들 쌩쌩 달리는 도로를 따라 달렸는데, 거기 있던 차들 다 엄청 크고 무서웠어. 시꺼먼 바퀴가 열두 개나 달려 있는 화물차라든지, 뜨거운 회반죽이 쉬지 않고 돌아가는 레미콘이라든지... 그 길이 컨테이너 터미널로 향하는 도로였다는 건 나중에야 알았어.

도로를 달리면서 옆을 슬쩍슬쩍 보려고 해도 펜스가 너무 높아서 바다는 도무지 안 보였어. 그 때 앞에서 가고 있던 성진이가 갑자기 커브 길에서 자전거를 멈춰 세웠다? 그쪽 차도 옆에 공간이 조금 있었거든. 그러고선 펜스로 다가가더니 거기에 조금씩 튀어나오게 박힌 쇠못들을 밟고서는 쓱쓱 그 벽을 암벽 등반하듯이 올라가는 거야, 그 작은 몸으로. 나를 보고서도 뭐하냐고, 너도 빨리 올라오라 했어. 뒤에 화물차들이 그렇게 빨리 달리는데 나는 또 무슨 용기였나 몰라. 나도 옆 칸에 박힌 못들을 밟고선 엉금엉금 올라갔어. 그러고선 벽 위에 팔꿈치를 힘겹게 걸치고 고개를 들어 앞을 봤는데, 나, 그 때 봤던 바다가 잊을 수가 없어. 바다가 황금빛이었거든. 마악 빨갛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파랗지도 않았고. 새까맣도록 차가운 바닷물들 사이로 해가 비치면서 뭐가 자꾸 빤짝, 빤짝, 하는거야. 바다노을이 그렇게 물 위에서 찢어지고 부서졌다가 고장난 텔레비전마냥 치지직거리기를 반복하는데, 성진이와 나는 그걸 숨죽이고 눈이 아프도록 마냥 보고만 있었어.

그 때 성진이가 했던 말이 자꾸 생각이 나.

지금 죽어도 괜찮을 것 같아.

바다가 멋있다거나, 자기는 지금 행복하다거나, 그런 게 아니었어. 그렇다고 해서 그 때 죽고 싶다는 것도 아니었어. 그냥, 지금 죽어도 자긴 괜찮을 거 같다고, 성진이가 그러더라.

그 땐 쟤가 진짜 미쳤구나 싶었는데, 근데 다시 생각해 볼수록 좀 묘하더라고. 죽어도 괜찮다고...“

경태는 아무 말 없이 신문지 끝자락만 만지작거렸다. 내 말을 듣고 있기는 한 건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서 표정도 읽기 어려웠다.

“성진이는 그 후로도 바다노을을 보러 혼자 여러 번 가는 것 같더라. 그래서 물어봤어. 거기 큰 차들도 많아서 위험한데, 너 꼭 그렇게까지 바다 보러 가야 하냐고.

살아있는 기분을 느낀대. 잘 닦여진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따듯한 모래사장에 앉아서 바다를 보는 거 말고. 화물트럭들이 무섭게 달리는 고속도로를 뒤로 하고 자기 키의 두 배는 족히 되는 그런 가벽에 매달려서 바다를 보면 손끝이 따갑고 종아리가 지릿하는데, 그럴 때면 꼭 살아있다는 기분을 느낀다는 거야.

그게 그 때 성진이가 내게 한 대답이었어.“

술을 많이 마셨는지 경태가 만지고 있는 굵은 헤드라인 글자들이 두 개로 겹쳐 보였다. 얼굴이 후끈거렸다. 빈 소주병 옆면에는 투명한 물방울들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야 내가 얼마나 멍청한지 알아? 난 여기 오면 뭐라도 달라질 것 같았거든. 훌훌 털어 내고, 그래 솔직히 말해서 구질구질한 건 다 걷어내 버리고, 좀 멋지고 세련된 이은수로 다시 시작하고 싶었어. 왜, 터닝포인트란 말들 하잖아. 제주도! 얼마나 좋아, 바다도 있고, 섬바람은 시원하고, 여름밤 술잔을 기울이며 청춘들의 대화가 오가는 섬... 낭만적이잖아. 근데 나 혼자 바보가 됐어. 여기도 똑같이 사람 사는 곳인걸. 나 너무 순진했나 봐.

나 문득 옛날 기억들이 떠오를 때가 있거든. 그럴 때마다 내가 그 땐 왜 그랬지, 그런 말을 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혹은 왜 그렇게 어른인 척 굴었던 거지, 난 분명 엄청 바보같이 보였을 거야, 하면서 두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고개를 양옆으로 마구 흔들어. 시간을 돌리고 싶은데, 시간을 돌린다면 차라리 모든 일이 일어나기도 전에 헐레벌떡 뛰어서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도망쳐 버렸을 텐데, 그랬어야 했는데, 그래서 나는 아직도 그 순간들을 생각하면 부끄러운 마음에 가슴이 조마조마해. 그치만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걸. 기억하고 기억하지 않고를 내가 어떻게 할 수 있겠어. 그래서 내가 이제쯤엔 벗어날 수 있겠다 싶을 때에, 어느 날 유독 왼쪽 운동화 끈만 자꾸 풀린다든지, 혹은 사놓고 잊어버린 우유의 유통기한이 이미 한 달이나 지나 있는 걸 뒤늦게 발견한다든지, 그런 뭔가 익숙한 장면들 앞에 내가 또 한 번 불시에 툭 내던져질 때마다 나는 또 예전의 이은수를 떠올리고, 그러면 그 사람들 그 눈동자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씩씩거리며 내게 와선 거칠게 욕을 하고 발길질을 하고 비웃고 그러다 또다시 큰 소리로 나를 저주하는 거야, 그럼 난 또 발발 떨며 미안합니다,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그건 내가 아니었어요 그게 누군지는 나도 몰라요, 그러다 갑자기 분하고 억울한 마음에 받쳐, 당신이 뭔데 나한테 이래, 하면서 나도 도리어 악을 쓴다든지...

그런 미쳐버릴 것만 같은 마음들이 나 혼자서 들 때가 있어. 난 뭐가 그렇게 막 쏟아져 내려. 아무리 허겁지겁 퍼 내어도 차오르는 축축하고 끈적한 것들, 그것들에 난 숨이 막혀. 시간은 무섭게 흘러가고 있고 이십대는 다시 오지 않는다는 그런 말들이 귓가를 하루 종일 맴도는데 끝없이 차오르는 시간과 사람과 기억들 감정들 그 모든 것들을 꾸역꾸역 해 내이고 해내이고 또 해내어도 달라지는 것은 없이 뒤쳐지는 게 내 일상이란 말야.

근데 내가 제일 견디기 힘든 게 뭔지 알아? 잊어버리고 싶을 땐 그렇게도 죽도록 따라다니던 것들이, 막상 어느 때가 되면 한 번에 모두 끝나 버릴 것을 안다는 거야.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넌 무섭지도 않아? 우리의 몸이건 마음이건 단 한 조각도 남지 않은 상태에서도 모든 게 철저하게 정상적으로 흘러갈 거야. 난 그 생각을 하면 난 하루에도 몇 번씩 섬짓해. 나를 빙 둘러싼 이 불분명한 모든 것들 하나하나에 나는 서러움과 배신감을 느끼는데, 그런 내게 삶은 끝이 있기에 아름다운 거라느니, 결과보단 과정이 소중하다느니, 그런 말들을 내뱉는 온갖 소설 영화 티비쇼 그 모든 것들이 나는 역겨워. 그래, 솔직히 말해서 역겨워.

그런 내게 심판들 사이에 놓여진 지금의 이은수는 왠지 행복해야만 할 것 같아. 왜냐면 이은수는 청춘이니까! 가장 아름답고 가슴 설렌다는 봄이니까! 이런 시기는 또 오지 않는다며, 한 번 뿐이라며! 그래서 그런가, 나는 자꾸 아등바등거려. 나는 언제부턴가 내가 잘 알지도 못하고 바란 적도 없는 이름으로 덜컥 불리기 시작했고 그 이름에 걸맞는 사람이 되지 못 하면 엄청나게 큰 죄라도 저지른 것 같아. 가끔 식당 메뉴판에 있는 사진을 보고 주문을 했는데 막상 나온 요리는 내가 생각했던 그 맛과 모양이 아닐 때 있잖아. 그런 것처럼 내가 어른들에게 들어오던, 영화 속에서 봐 오던 청춘의 이미지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는데. 막상 내가 하고있는 것들은 그 모습과 너무도 다르다는 걸 깨달았을 때, 혹은 알고보니 그 영화들은 다 거짓이었고 사실은 내 앞에 펼쳐친 이 퍽퍽한 앙금들이 유일한 진짜일 수도 있겠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나는 당황스러운 마음에 자꾸만....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그 때였다. 가만히 있던 경태가 갑자기 방바닥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갈라진 천장 벽지의 한쪽 끝을 잡고선 부욱 찢었다.

“방에서 비 오는 거 싫다매. 내가 고쳐 줄게.”

그러더니 다른쪽 천장 벽지도 마저 뜯는 것이었다. 물기를 머금어 축축한 회색 천장이 드러났다.

“너 진짜 미쳤어?”

“와... 이거 공사한 놈들 진짜 양심 없다. 그냥 툭 한 번 하면 천장 다 내려앉겠는데?”

경태는 방을 슥 돌아보다 구석에 놓인 나무의자를 보고선 의자 등받이를 거꾸로 잡아들었다. 그러고선 의자 다리로 천장을 내리치며 있는 힘껏 쿵 쿵 부수기 시작했다.

“제정신이야? 그만해, 호텔 사람들 다 깨잖아!”

“야 쫌만 기달려. 거의 다 했어.”

경태가 천장에 만든 구멍은 조금씩 커졌다. 그러다 의자 다리에 뭔가 부딪히는 탕 소리가 나더니, 그 큰 구멍 한 쪽에서 물이 콸콸콸 쏟아져 내렸다.

“야 이거 왜 이러냐?”

“몰라서 물어? 배수관 터진 거잖아. 여기 건물이 원래 그렇대. 싹 다 새로 짓지 않는 이상 답 없다더라. 사람 몇 번 불렀는데도 다들 그렇게 말했대.”

“뭐라고? 닌 그걸 왜 이제야 말해?”

“뭐?”

자신감 넘쳐 보이던 경태의 표정이 싹 바뀌었다. 나는 경태를 뚫어져라 봤다.

“아... 아니... 난 또... 그냥 작은 문젠 줄 알고... 야 내가 또 군대에 있을 때 이런 거 전문이었거든... 우리 부대에서 물 샐 때마다 내가 다 고쳤어요. 근데 아저씨들이 진짜로 안 된대? 내가 아까 대강 봤을 땐 어째 어째하면 될 것 같던데... 야 근데 난 진짜로 몰랐다.”

나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경태를 빤히 쳐다봤다. 술에 취해 얼굴이 벌건 경태는 뻘쭘한 표정을 짓다가 한 손에 나무의자를 든 채 고개를 푹 숙였다. 덩치도 큰 놈이 풀이 죽어 움츠리고 있다가, 고개를 빼꼼 들어 나와 눈이 마주쳤다. 어처구니없게도 웃음이 나왔다.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며 낄낄대기 시작했다.

“기왕 뿌신 거 더 뿌실까?”

“야 사실 나도 그 말 하려 했는데, 너가 화낼까 봐 차마 말은 못 꺼냈다.”

의자로 천장을 다시 내리치는 경태에 합세하여, 키가 작은 나는 장우산을 들고 침대 위로 올라가 뾰족한 우산 끝으로 천장을 마구 쑤셨다. 위에선 물이 폭포처럼 쏟아지는데 우리는 정신 나간 사람들처럼 숨이 넘어가도록 웃으며 구멍을 점점 더 크게 만들었다. 누런 바닥엔 천장에서 떨어진 축축한 시멘트 부스러기들이 톱밥처럼 쌓였다.

그러다 천장의 삼분의 이 정도가 시꺼멓게 드러났을 때, 나는 갑자기 덜컥 겁이 났다.

“야 근데 나 어떡하지?”

“뭘 어떡해.”

“이거 매니저가 보면 어떡해. 나 그럼 끝장이야.”

“도망칠래?”

“도망 어디로?”

“몰라 뭐... 옥상? 열쇠 니한테 있다매.”

경태는 자기가 말하고도 어이가 없었는지 히죽히죽 웃었다. 나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우린 또 미친 사람들처럼 낄낄대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방문을 활짝 열고선 저 멀리 보이는 엘리베이터를 향해 어둡고 비좁은 창고 복도 위를 질주했다. 옥상 열쇠는 내 오른쪽 바지주머니에 있었다.

“헐 야 뭐야... 점검중이야. 어떡해?”

“그럼 뭐 미쳤다고 계단으로 가냐?”

“야 계단 좋다. 빨리 따라 와.”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다. 엘리베이터 스크린에 뜬 점검중이라는 빨간 글자를 보자마자 옆에 있던 비상구 문을 벌컥 열고 달렸다. 앞에 놓인 계단만 바라보며 나도 경태도 숨을 헉헉대며 무작정 옥상까지 올라왔다. 속이 울렁거렸고 목구멍이 터질 것 같았다.

열쇠를 짤랑거리며 옥상 문을 열었다. 다음 주면 장마도 끝이라더니, 다급하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 우리의 눈앞엔 장대비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수영장 물은 넘쳤다 낮아졌다를 반복하며 섬뜩할 정도로 빠르게 출렁이고 있었다. 차고 굵은 빗줄기가 얼굴을 마구 때렸다.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한밤중이라 아무것도 잘 보이지 않았지만 누가 보기라도 할까 봐 불을 켤 수 없었다. 나와 경태는 대리석 바닥을 가로질러 앞으로 천천히 나아갔다. 그러다 경태가 섬뜩한 목소리로 수영장 한쪽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기 사람 있는데?”

심장이 덜컹 했다. 경태가 가리킨 쪽을 쳐다봤다.

휴... 헤밍웨이였다.

“야 걱정 안 해도 돼. 동상이야. 헤밍웨이 모르냐? 여기 호텔 헤밍웨이잖아.”

“어우, 저기에 저런 건 왜 있는 거냐 대체.”

우리는 난간 쪽으로 다가가서 팔을 괴고 기대었다. 맨 팔뚝에 닿는 창살이 너무 차가워 가슴이 콩닥거렸다. 빗줄기들 뒤로 어렴풋이 보이는 바다는 크고 어둡고 형체가 없었다. 작고 새하얀 한치잡이 배들만이 드문드문 떠서 수평선을 이루고 있었다. 비가 이렇게 쏟아지는데 기어코 배를 띄운 저들은 무슨 심보일까. 무슨 사정일까.

그 때, 경태가 난데없이 소리를 질렀다.

“헤밍-웨이-!”

“뭐야 갑자기?”

“야 여기 목소리 완전 울리는데? 니도 따라 해봐! 헤-밍-웨-이!”

“뭔 소리야, 하나도 안 울리는데. 술 먹어서 그래, 니만 들리겠지!”

“헤-밍-웨-이!”

경태는 그렇게 앵무새처럼 헤밍웨이만 반복하는 것이었다. 보이지도 않는 바다를 향해 난간에 매달려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는 경태는 정신이 나간 사람 같았다.

그러던 찰나였다. 갑자기 어느 순간부터 나도 메아리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헤-밍-웨-이!”

헤밍웨이, 헤밍웨이, 헤밍웨이... 악을 쓰는 경태의 목소리 뒤에 또다른 소리들이 울렁거리는 거였다. 헤밍웨이, 헤밍웨이, 헤밍웨이, 헤밍, 웨이... 헤밍... 웨이...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빗소리와 섞여 이곳 저곳에서 마구잡이로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이미 저 높이 올라간 경태를 따라 두 손으로 창살을 꼭 잡고선 한 칸 한 칸 올라갔다. 제일 높은 난간에 도착했을 때 움츠렸던 허리를 쭉 폈다. 찹찹한 바닷바람이 온몸으로 부딪쳐 왔다. 우리는 번쩍이는 난간에 나란히 매달려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아저씨! 아저씨네 호텔 완전 별로인거 알아요?!”

“헤-밍-웨-이!”

“그리고 솔직히 아저씨가 쓴 책 재미 하나도 없거든요!”

“헤-밍-웨-이!”

“진짜 구질구질하거든요, 근데 이대로 끝나는 건 싫고요!”

“헤-밍---웨—이-!”

“하나도 안 괜찮고요!”

“헤에—미잉—웨—이-----!”

“뭘 어떡해야 돼요?”

“헤에—미잉----웨에—이이----!”

“아무 말이나 좀 해 봐요!”

“헤에에----미잉---웨에에—----이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저 멀리 바다가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형체도 색깔도 없는 바다에선 뭔가 부서지고 무너지고 흩어지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속이 텅 빈 난간은 바람이 불 때마다 고요히 진동했다. 비에 젖어 이리저리 엉킨 머리카락이 볼과 뒷목에 붙어 끈적였다. 나는 이미 오래 전에 축축해져 버린 오른 소매로 빗물이 번진 얼굴을 닦아냈다. 종아리가 시렸다.

나의 뒤에선 굳게 다문 입을 가진 누군가가 모든 걸 지켜보고 있었다.

연세춘추  chunch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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