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포토뉴스/영상기획
배움을 향한 두드림, '공동체'를 열다
  • 박건 하수민 윤채원
  • 승인 2018.12.03 07:06
  • 호수 1824
  • 댓글 0

#1. ‘오뚜기’들의 일요일

“어나더 데이 이즈 곤~ 아임 스틸 올 얼론~”

“선생님 너무 빨라요” “내 귀에는 ‘어나더’로 안 들리는데?”

여남은 책상이 꽉 들어찬 교실 안에서 영어 수업이 한창이다. 오늘은 마이클 잭슨의 노래 「You Are Not Alone」을 배우는 날이다. 발음은 서툴지만 박자를 놓치지 않으려는 학생들의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고운 백발과 돋보기안경, 펜을 움켜쥔 주름진 손. 앞에서 열띤 목소리로 수업하는 교사는 대학생이다. 모두가 여유를 즐기는 일요일 오후, ‘오뚜기일요학교’가 가장 분주한 시간이다.

서울시 영등포구 도림동에 위치한 오뚜기일요학교는 지난 1981년 문을 연 전국 유일의 일요야학이다. 원래 야학은 학생과 교사 모두 낮에는 직장이나 학교에 다녀야 하므로 밤에만 수업이 진행된다. 하지만 오뚜기일요학교는 처음 설립됐을 때부터 일요일에만 수업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이곳의 학생들은 과거에 배움의 기회를 놓쳤지만, 다시 학교의 문을 두드린 사람들이다. 교사는 그런 이들을 ‘오뚜기’라고 부른다.

“여러분, 절대군주제 하면 뭐가 떠오르세요?” “김정일!” “근데 요즘 애들은 김정일도 잘 모른 대잖아.” 사회 수업이 진행되는 교실 안에서 한바탕 수다가 벌어졌다. 잡담이 계속되자 교사는 진땀을 뺀다. 하지만 수업 분위기가 늘 장난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학생들의 눈은 칠판과 공책을 쉴 새 없이 오가느라 바쁘다. 이들은 궁금증이 생기면 언제든 주저 없이 손을 든다. 덕분에 교실은 교사와 학생들의 목소리로 조용할 틈이 없다. 열띤 수업이 끝나면 쉬는 시간이 찾아온다. 친구들과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고 화장실도 다녀오려면 10분은 빠듯하다. 여느 학교와 다를 바 없는 풍경이다.

모든 수업이 끝나고, 종례 시간이 다가왔다. 학생들은 교가를 부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청춘을 담보하고 불굴의 의지로 하면 된다. 우리는 내일에 산다. 그 이름 장하다. 칠전팔기 오뚜기” 학생들은 다음 주를 기약하며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2. 가을밤, 하나 된 오뚜기들

오뚜기일요학교는 매년 일일호프를 연다. 오래전 학교를 졸업한 동문과 재학생 ,그리고 전·현직 교사들이 하나 되는 자리다. 동창회를 방불케 하는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는다. 문에 달린 종은 쉴 새 없이 울리고, 술잔을 주고받는 이들의 웃음소리도 덩달아 커진다.

일일호프를 찾은 학생들은 저마다 가슴에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그중 이름표에 적힌 별명이 눈에 띈다. ‘짜장면 인수기’. 25년 전 오뚜기일요학교의 문을 두드렸던 박인숙(46)씨다. 짜장면을 너무 좋아해서 학교에 다니던 시절 매주 짜장면 곱빼기만 먹었단다. 모처럼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일일호프를 찾았다는 박씨는 “옛날로 다시 돌아간 기분이 든다”며 웃어보였다.

#3. 배움을 넘어 공동체로

오뚜기일요학교의 학제는 2년 단위로 중등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디딤반’과 고등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도약반’으로 나뉜다. 누구나, 언제나, 무료로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오뚜기일요학교는 단순한 야학이 아닌 ‘배움 공동체’를 지향한다. 이곳은 매년 봄 소풍, 수학여행, 일일호프, 졸업식 등을 열어 학생들에게 학창시절의 추억을 선물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검정고시와 무관하게 이곳을 찾는 이들도 많다.

물론 어려움도 따른다. 오뚜기일요학교는 수업료 대신 후원금으로 운영되기에 안정적으로 학교를 운영하기 쉽지 않다. 교장 황채하(24)씨는 지난해부터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황씨는 “교사들은 매달 월급을 받는 것은 고사하고 회비를 내면서까지 수업을 하고 있다”며 “가르치고자 하는 교사와 배우고자 하는 학생의 열정이 없다면 학교는 운영되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홀로 서있는 오뚝이는 휘청거리기 마련이다. 서로에게 기대야만 넘어지지 않고 바로 설 수 있다. 이는 공동체가 가진 가치이자 힘이다. 좁은 교실 안 옹기종기 모여 앉은 ‘오뚜기’들이 이를 몸소 보여준다.

박건 기자
petit_gunny@yonsei.ac.kr
하수민 기자
charming_soo@yonsei.ac.kr
윤채원 기자
yuncw@yonsei.ac.kr

박건 하수민 윤채원  chunchu@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