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정 교수 (우리대학교 정경대)

‘2018년 대학기본역량진단’에서 원주캠이 ‘역량강화대학’으로 분류됐다. 최근 원주캠은 ACE+, LINC+, CK2 등 지원한 교육부 대형 사업마다 선정됐기에, 이번 평가 결과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지난 1978년 원주캠이 시작된 후 지방소재 대학이라는 한계와 신촌캠과 차별화해야 한다는 이중의 압박 속에 열과 성을 다해 학교발전을 위해 노력해 온 구성원들에게는 치욕이 아닐 수 없다.

연세대학교라기보다는 지방대학교로 자리매김한 원주캠은 대학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이미 위기상황에 처해 있었다. 정원을 채우더라도 우리대학교 위상에 걸맞은 우수 학생을 유치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다. 이에 더해 교육부는 ‘역량강화대학’으로 분류된 대학들에 오는 2021년까지 입학정원 10%의 감축을 포함한 구조조정을 권고했다. 이 권고사항을 따를 경우 매년 50억~60억 원의 등록금 수입 손실이 발생하며 손실 총액을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약 1천440억 원에 이른다. 등록금 의존율이 높은 원주캠은 심각한 재정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 두 위기가 결합하면 원주캠은 걷잡을 수 없는 쇠락의 길로 접어들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이 위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원주혁신위원회와 원주혁신실무위원회가 구성돼 지난 8월부터 가동되고 있으며 9월부터는 각 대학 단위의 혁신위원회가 구성돼 대학 단위의 혁신방안을 논의하고 10월 1일부터는 삼일회계법인의 컨설팅 팀을 고용해 혁신논의를 가속하고 있다. 혁신위원회의 이와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난 13일 원주캠 전체교수회의에서 발표된 혁신(초)안은 많은 구성원에게 심각한 우려를 던졌다.

현재 원주혁신위원회와 원주혁신실무위원회는 ‘2018 대학기본역량진단’ 평가에 원주캠이 제출한 보고서의 내용을 원주캠의 실상인 것으로 기정사실화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이로 인해 원주캠의 강점과 잠재적 역량은 무엇이고 약점과 문제점은 무엇인지, 따라서 어떤 방향의 혁신이 필요한지에 대해 구성원들의 간의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는 어떤 혁신안도 추진 동력을 얻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또한 구조조정에 필요한 재원 규모에 대한 추계와 조달 방안에 대한 논의가 전혀 없다. 정원을 10% 감축했을 때 발생할 손실을 어떻게 만회할 것인지 혁신 초안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10% 정원감축 권고를 받아들일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예상되는 비용과 편익의 비교 분석이 이뤄져야 하며, 정원감축안을 받아들일 경우 재정 결손을 보전하기 위해 재단과 원주캠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와 의견수렴이 요구된다. 현실성 있는 재정계획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구조 개혁안의 실현도 불투명해지기 때문이다.

이번에 발표된 혁신안 초안의 핵심은 모집단위를 문과와 이과 두 개로 광역화하자는 것인데, 이것은 이미 실패한 것으로 판명됐다. 지난 1996년에 우리나라 최초로 원주캠에서 학부제라는 이름으로 모집단위 광역화를 시도한 적이 있다. 이때도 모집단위는 문과 이과 두 개의 큰 단위였다. 그러나 직업교육의 성격이 강한 응용학문 분야가 전문대학원으로 분리되지 않고 학부 교육과정에 뒤섞여 있는 우리나라의 대학구조에서 모집단위 광역화를 시행하게 되면 직업교육 쪽으로 극심한 쏠림현상이 발생해 기초학문이 고사한다. 또한 학생들이 몰리는 학과나 전공이 경쟁력이 높은 학과라기보다 단순히 인기학과에 그칠 수 있다. 지난 2000년대 초 IT 붐을 타고 한때 인기학과였던 전공이 지금은 약세 전공 내지 트랙의 위치에 와 있고 비인기 전공이었던 국문학을 중심으로 한 인문학 관련 전공들이 원주캠을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주목받는 근대한국학 연구의 중심지로 만들어 낸 경험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잘못된 제도를 도입한 대가로 지난 20년간 혼란과 분란 그리고 비효율을 겪으면서 배운 교훈이 있다면 교육 콘텐츠를 고려하지 않은 대단위 모집단위 광역화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 실정에 맞지 않는 이미 실패한 정책을 혁신안의 핵심으로 들고나온 것을 보면서, 혁신위가 조급증 때문에 숙고 없이 졸속 혁신을 추진하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하게 된다. 그러나 미래 사회의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원운영의 유연성을 확보해야 하는 것 또한 사실인데 이를 위해서는 교육 콘텐츠가 제시되지 않은 대단위 모집단위 광역화보다 유사전공, 학과 간 또는 여러 학과가 참여하는 융합프로그램 중심의 중소규모 모집단위 광역화, 즉, ‘진정한 의미의 학부제’를 도입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문제는 총장이 원주캠 위기 극복의 방안으로 제시한, 연세라는 큰 틀 속에서 원주캠을 ‘미래캠퍼스’로 정립하자는 제안을 혁신 초안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원주캠에 대한 내외의 인식은 ‘원주에 있는 연세대학교’보다 ‘연세대학교를 흉내 내는 지방대학교’라는 쪽에 훨씬 가깝게 자리하고 있다. 그동안 끊임없이 이뤄진 특성화와 교육과정 개혁을 위한 노력은 대학입시 시장에서 별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반면 캠퍼스 간 소속변경 및 이중 전공의 도입이 이뤄졌을 때, 원주캠의 입시경쟁률과 입학성적이 높아졌던 전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러한 경험을 되돌아볼 때, 한국의 특수한 대학교육 시장의 구조에서 지방에 소재한 원주캠이 경쟁력 있는 대학으로 발전하기 위해 원주캠이 지방대학으로서보다는 연세대학교라는 이미지를 확고하게 정립하는 방향으로 혁신이 이뤄져야 한다. 작금의 원주캠의 위기를 원주캠만의 위기로 규정하는 분리주의적 사고방식으로는 근본 해결책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하나의 연세” 정신이 표어에 그치지 않고 내실 있게 실천될 때 실효성 있고 지속 가능한 연세대학교 전체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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