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을 사랑하는 백종원 대표를 만나다

‘여기 앉아유’ 충청도 억양이 묻어난 목소리를 들으니 괜스레 입꼬리가 올라간다. 말씨의 주인공은 ‘더본코리아’ 백종원(사복‧85) 대표다. 혜성처럼 등장해 각종 예능 프로그램을 섭렵했다. 푸근한 웃음부터 날카로운 비판까지, ‘백종원’ 하면 떠오르는 표현은 무한하다. 강남구 논현동 먹자골목에서 그를 만났다.

 

‘나는 먹는 게 좋다’
먹기 좋아하는 소년에서 외식업 CEO로

 


많은 이들은 백종원을 ‘요리하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요리가 업(業)인 셰프(Chef)이자 한식 기업의 대표지만, 요리를 즐기진 않는다. 대신 그의 주된 관심사는 ‘먹는 것’이다. 

그의 음식 사랑은 유년 시절부터 남달랐다. 그 배경엔 그의 가족이 있다. 백 대표 스스로 “먹는 것에 유난스러운 가족”이라고 고백할 정도였다. 식사할 때마다 레시피와 식재료, 맛을 두고 가족끼리 설전을 벌였다. 여행지에 도착하면 주변 식당의 위치부터 찾았다. 계곡에 놀러 가도 물놀이보다 백숙 한 마리가 더 관심사였다. 백 대표는 “해수욕장을 갈 때도 경치보다는 가까운 식당가를 중시했다”고 전했다.

콩 심은 데 콩 난다고 했다. 그런 가정에서 자란 백 대표가 음식을 좋아하는 건 퍽 자연스럽다. 백 대표의 ‘식(食) 예찬’은 대학생이 돼서도 이어졌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 신촌 일대 음식점은 그의 손바닥 위에 있었다. 30년이 지난 지금, 백 대표는 당시 신촌을 기억하고 있을까. ‘신촌’ 하면 떠오르는 맛집으로 주저 없이 ‘신촌반점’과 ‘연세갈비’를 꼽은 그는 “지금은 없어진 신촌반점은 짜장면에 꽂힌 젓가락이 움직이지 않을 만큼 양이 많은 집이었다”고 회상했다.

백 대표가 처음 외식업에 뛰어든 것도 대학생 때였다. 동네 사람들과 이야기하다가 ‘어디 식당 할 곳 없냐’며 농담 반으로 던진 한마디가 계기였다. 마침 자리가 난 곳이 있었고, 장난스레 제시한 낮은 액수에 덜컥 가게를 인수하게 됐다. 당시만 해도 흔치 않던 청년 창업은 훗날 그가 외식업 CEO로 성장하는 데 든든한 밑거름이 됐다. 백 대표는 “당시엔 별 고민 없이 ‘돈 많이 벌어보자’는 생각으로 쌈밥집을 열었다”며 “나중에 창업할 때 큰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믿고 먹는 ‘백종원표’
비결은 ‘물음표’

 

백종원은 국내 외식업계의 ‘큰 손’이다. 백 대표가 시도한 프랜차이즈는 줄줄이 성공한다. 이러니 ‘믿고 먹는 백종원표’ 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그러나 ‘백종원표’라고 떡잎부터 남달랐던 건 아니다. 잇따른 성공의 비결을 묻자 백 대표는 ‘물음표’라고 답했다. 그는 “지금껏 탄생한 프랜차이즈는 모두 내가 불편했거나 싫었던 것들을 되돌아보는 데서 시작했다”며 “어떻게 해야 이윤을 남길지가 아니라, ‘왜 이럴까’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백 대표가 던진 의문의 결실은 그의 사업 전반에서 ‘백종원스러움’으로 드러난다. 대표적인 것이 브랜드 운영 방식이다. 백 대표는 각양각색의 브랜드를 직접 관리한다. 종류부터 매장 인테리어·컨셉까지 전 과정에 관여한다. 커피전문점 ‘빽다방’만 해도 점포 위치부터 가격에 이르기까지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부분이 없다. 

하나부터 열까지 백 대표가 직접 관리하니 완성도가 높아짐은 물론, 제품 가격도 내려갔다. 기존 음식점의 높은 가격에 불만을 느꼈던 백 대표기에 어떻게든 단가를 낮추려고 했다. 본사에서 완제품을 만들어 점포로 보내는 방식이 한 예다. 백 대표는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가격이 싸서 손님이 붐비고 우리도 바삐 일하면 서로 좋은 일 아니냐”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가 물음표만으로 성공한 건 아니다. 궁금증이 성공의 절반이라면 나머지 절반은 ‘데이터’다. 요리학교 출신이 아님에도 백 대표가 남부럽지 않은 레시피를 확보할 수 있었던 건 끊임없는 정보 수집 덕이다. 백 대표는 “레시피를 배워서 요리하는 데엔 한계가 있다”며 “많이 먹으러 다니며 자연스레 데이터가 쌓이다 보니 음식 맛의 원리를 터득한 것 같다”고 역설했다. 끊임없는 질문과 정보 수집이 한 데 모여 ‘백 선생’을 만들었다. 

 

방송계까지 손 뻗은 백 대표
소통의 힘을 믿다

 

백 대표는 「마이 리틀 텔레비전」(아래 마리텔) 출연으로 대중적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방송 출연에 응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것을 느꼈다. 그는 특히 시청자와 소통하는 과정에서 뿌듯함을 느꼈다.

뿌듯함은 쌓여 자신감이 됐다. 백 대표는 방송을 매개로 국내 외식업계 상황을 개선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외식업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을 바꾸고자 했다. 백 대표에 의하면, “대중은 외식업이 얼마나 힘들고 복잡한지 잘 모른다”고 한다. ‘외식업이나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무모하게 업계에 뛰어든다는 것이다. 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외식업계 종사자를 하대하기도 한다.

백 대표는 시청자와의 소통이 이런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방송을 통해 현실을 보여주면 외식업에 대한 이해도가 향상되리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음식 하는 사람들의 애환,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전파를 탄다면 손님들의 매너도 조금씩 좋아지지 않을까 싶다”는 소소한 바람을 전했다. 

 

백종원이 말하는 ‘행복’

 

성공한 사람은 적다. 성공과 행복을 동시에 거머쥔 사람은 더욱 적다. 백 대표가 성공한 CEO이자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남의 즐거움이 아닌 ‘나’의 즐거움을 좇았기 때문이다.

그는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았다. 그렇다고 순탄하지만은 않은 과정이었다. 비행기 타기만 수십 번, 국내·외 가리지 않고 음식을 맛보러 다녔다. 그 과정에서 진상 손님 응대부터 수백만 원 적자 경험까지 여러 역경을 마주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는 이 모든 경험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가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백 대표는 후배들에게 전하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백 대표는 “요즘 대학생들은 버릇처럼 ‘행복해지고 싶다’고 말하는데 이때 이들의 행복을 나누는 기준은 돈인 것 같다”고 걱정 어린 시선을 보냈다. 이어 그는 “그렇게 대학 생활을 보내기엔 시간이 아깝다”며 “남들과 같은 목표를 향해 허송세월할 바엔 자신이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들이 어디를 향해 가는지는 상관없다. ‘내가’ 어떻게 하면 행복할지가 중요하다.” 진부하지만, 좋아하는 일만 하며 일생을 살아온 이가 남긴 말이다. 속는 셈 치고 한 번쯤 믿어보는 건 어떨까.

 

 

 

글 강현정 기자
hyunzzang99@yonsei.ac.kr
이찬주 기자
zzanjoo@yonsei.ac.kr

<자료사진 더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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