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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은 짧아도, 스케이트는 길게 탈래요.”쇼트트랙 대표팀의 든든한 맏형, 곽윤기 선수를 만나다.
  • 신은비, 박지현, 윤채원 기자
  • 승인 2018.11.11 22:59
  • 호수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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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좌절하고 낙담하는 시대다. 무너진 자존감을 일으키기 위해 ‘자존감 수업’을 받고 ‘뻔뻔하게 사는 법’을 배운다. 그렇기에 한 베테랑 쇼트트랙 선수의 자신 있는 선언은 더욱 돋보인다. 30대에 접어들고도 “내 전성기는 아직”이라 말하는 곽윤기(스포츠레저·08)선수다.

빙판에 선 소년, 대중을 사로잡다

곽씨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쇼트트랙에 입문했다. 계기는 그가 앓던 ‘비염’이었다. 빙상 운동이 비염에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어머니가 곽씨를 빙판으로 이끌었다. 선수의 길에 접어든 것도 어머니 덕이었다. 곽씨는 “어릴 땐 실력으로 돋보이지 못했다”며 “어머니께서 선수의 꿈을 놓지 않으신 덕에 한 길을 계속 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곽씨가 두각을 드러낸 것은 고등학생 때부터였다. 전국동계체육대회와 쇼트트랙 월드컵에서 연달아 금메달을 따냈고, 우리대학교에 입학했다. 지금은 유쾌한 이미지로 대중에게 친숙한 곽씨지만 ‘대학생 곽윤기’는 조금 달랐다. 곽씨에게 대학 생활은 외로움의 연속이었다. 시즌이 4월에 끝나는 쇼트트랙의 특성상 학기 초에 친구를 쉽게 사귈 수 없었다. 곽씨는 “과거로 돌아가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며 후회 없는 대학생활을 즐겨보고 싶다”고 말했다.

빙상계에선 이미 유명인사였던 곽씨. 그가 본격적으로 대중의 관심을 받은 계기는 지난 2010년 열린 밴쿠버올림픽이었다. 좋은 기록으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곽씨는 시상대에서 유명 걸그룹의 댄스를 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하고 싶었지만, 그런 퍼포먼스를 할 성격이 나뿐이었다”고 말했다.

뜨거운 관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올림픽이 끝나자 다수의 대중은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처음에는 허무하고 서운하기도 했다. 하지만 주위엔 그를 응원하는 이들이 있었다. 첫 올림픽을 계기로 그들의 존재 자체에 감사하는 법을 배웠다. 곽씨는 “올림픽 시즌이 아닐 때도 꾸준히 관심 가져주시는 분들이 있다”며 “그 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누군가 있다는 생각만으로 힘이 된다”고 말했다.

심연을 딛고 일어서는 법

4년이 지나 열린 소치올림픽은 곽씨에게 ‘아픈 손가락’이었다. 부상으로 참가가 좌절됐기 때문이다. 선발전을 한 달 앞둔 월드컵 시합에서 다리가 부러지고 말았다. 그는 “‘운동선수는 다치면 끝’이라는 말이 떠올랐다”며 “이제 끝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부정적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슬럼프가 찾아왔다. 그때 전화위복의 계기가 찾아왔다. 국가대표 선발에서 떨어진 후 떠난 네덜란드 전지훈련이 ‘신의 한 수’였다. 새벽 4시 50분에 기상해 잠들기 전까지 계속되는 훈련.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국가대표 일정에서 벗어나 네덜란드에서 새로운 것을 보고 배웠다. 시야는 넓어졌고 생각은 깊어졌다.

이전까지 그는 성적을 내거나 메달을 땄을 때 보람을 느꼈다. 하지만 소치 이후론 스케이트 위에서의 매 순간을 즐겼다. 더 이상 슬럼프는 없었다. 올해 3월, 곽씨는 세계쇼트트랙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의 쾌거를 이뤘다. 좌절의 경험은 그가 선수 생활을 지속할 원동력이 됐다. 그는 “심연에 빠지면, 그 심연에서 헤어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며 “그런데 시련은 반드시 끝난다. 시련은 단단함을 만든다”고 전했다.

올해 초 평창에서 곽씨는 진한 아쉬움을 삼켰다. 기대를 모았던 단체전에서 동료가 넘어지며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처음으로 한국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이었다. ‘아무렇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리라. 하지만 곽씨는 전보다 훨씬 단단해져 있었다. 성적에 연연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그는 “결과에 집중하고 성적에 연연하는 순간 부담감이 오고 멘탈이 흔들린다”며 “재밌게, 나중에 후회하지만 않게 타자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대표로만 아홉 시즌을 보냈다. 기라성같은 선배들을 제친 국내 최다 기록이다. 그럼에도 곽씨는 몸을 낮췄다. 비결을 묻자 “노력은 누구나 하는 것”이라며 “아픈 곳이 없었다는 게 비결”이란다. 대표팀 맏형으로서 부담스럽지 않냐는 질문에는 “후배들이 잘 버텨줘 오히려 기댈 때가 많았”단다. 겸손까지 겸비한 이 남자,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의 질주는 멈추지 않는다

곽씨는 올해로 30대에 접어들었다. 각종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수상했지만, 그는 아직 전성기가 오지 않았다고 말한다.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언제든 전성기가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곽씨는 “전성기는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며 “나이는 결코 걸림돌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제 곽씨는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겨냥한다. 그렇기에 당분간은 몸 관리에 집중할 예정이다. 곽씨는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이 3년 정도 남았다”며 “내년까지는 체력을 비축하고, 남은 2년 정도 연습에 매진할 계획”이라 말했다.

최대한 오래 현역으로 뛰고 싶다는 곽씨는 바람도 남다르다. 남들은 듣기 싫어하는 ‘노장’ 소리를 듣고 싶단다. 그 이후엔 ‘저 선수 아직도 해?’라는 이야기까지 듣고 싶다고. 이는 ‘선수 곽윤기’는 물론 ‘선배 곽윤기’의 바람이기도 하다. 곽씨는 “나를 통해 후배들이 긴 선수 생활의 가능성을 확인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고되고 재미없는 생활이 반복돼도 곽씨의 스케이트 날은 마를 날이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마르지 않을 것이다. 20년 넘게 탄 스케이트지만 변함없이 즐겁다는 곽씨. 빙판을 누비는 ‘노장 곽윤기’의 모습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글 신은비 기자
god_is_rain@yonsei.ac.kr
박지현 기자
pjh8763@yonsei.ac.kr

사진 윤채원 기자
yuncw@yonsei.ac.kr

신은비, 박지현, 윤채원 기자  god_is_rain@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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