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빈 교수 (우리대학교 생명대)

미생물(微生物)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보통 하찮고 귀찮고 마땅찮은 존재를 떠올린다. 하지만 미소(微小)의 매력에 빠져 30년 넘게 이 작은 녀석들과 사귀다 보니, 이들이 아름다운 생물 곧 미생물(美生物)로 보이기도 한다. 무한경쟁에 지친 우리에게 전하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볼 때 특히 그렇다.

생물과 이를 둘러싼 주변 환경을 통틀어 생태계라고 한다. 범위를 정하기에 따라 생태계의 규모와 종류는 천차만별이지만 기본 작동원리는 똑같다. 모든 생물은 결국 ‘먹고 먹히는 관계’에 놓여 있다. 흔히 말하는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생존경쟁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얘기다. 말 그대로 살기 위한 몸부림이기에 나는 무한 경쟁이 생물학적 운명이라고 체념하곤 했다. 지구 생태계를 떠받치고 있는 미시적(微視的) 삶들의 참모습을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펠라지박터 유비크(Pelagibacter ubique)는, ‘대양(pelagic)’과 ‘세균(bacteria)’, ‘어디에나 있는(ubiquitous)’을 뜻하는 단어가 합쳐진 이름 그대로 먼바다에 사는 가장 흔한 미생물이다. 이들은 깨끗한, 생태학적으로 말하면 영양분(유기물)이 매우 적은 환경에 잘 적응돼 있다. 적게 먹어서인지 몸집도 작아 우리 장 속에 사는 대장균의 10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스스로 살아가는 생물 중에서 가장 작다고 볼 수 있다. 몸집만이 아니다. 유전자 수도 미니멀 라이프에 꼭 필요한 만큼만 지니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최저 생계 수준에도 조금 못 미치는 정도다. 일부 아미노산 합성에 필요한 유전자도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생존에 필수적인 유전자 없이도 별 어려움 없이 살아가는 미생물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미생물은 대개 다른 생명체에 붙어서 산다. 기생 생물은 생존에 필수적인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 않아도 사는 데 별문제가 없다. 숙주가 있으니까. 하지만 펠라지박터 유비크처럼 독립생활을 하는 경우에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필수 아미노산을 만들지 못하면 삶을 이어갈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펠라지박터 유비크는 번성하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이들 가운데 어떤 것은 유전자 A가, 또 다른 어떤 것은 각각 B, C, D…… 유전자가 없다. 하지만 아무 문제없다. 각자가 생산 가능한 물질을 넉넉히 만들어, 그 일부를 몸(세포) 밖으로 분비하는 삶의 방식 덕분이다. 함께 어울리며 각자의 부족분을 채우면서 살게 되면, 필요한 모든 물질을 스스로 만들지 않아도 어렵지 않게 살아갈 수 있다. 나눔을 통한 아름다운 공생의 모습이다. 사실 보유한 유전자 수가 적다는 것은 생존과 번식에 큰 이점이 될 수 있다. 번식을 위해 세포 분열을 할 때마다 유전자를 복제해야 하는데, 그 수가 적으면 그만큼 수고(물질과 에너지)를 덜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유연관계가 아주 먼 두 세균, 즉 대장균과 아시네토박터(Acinetobacter) 사이의 미담(美談)을 소개해 보기로 하겠다. 참고로 아시네토박터는 흙에서 흔히 발견되는 세균이다. 한 연구진이 이들 세균에 돌연변이를 일으켜 각각 다른 아미노산의 생산 능력을 없애 버렸다. 그러고 나서 얄궂게도 이들이 만들 수 없는 아미노산을 뺀 배양액에 두 세균을 함께 넣고 지켜보았다. 우리에게는 호기심 천국이지만, 불의의 장애를 입은 세균들 입장에서는 죽음이 기다리는 지옥 전차에 떨어진 셈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두 세균 모두 꿋꿋하게 자라는 것이 아닌가! 최첨단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니 믿지 못할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대장균이 자기 몸길이만 한 가는 관을 만들어 아시네토박터 세균을 붙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 나노튜브(nanotube)가 두 세균의 세포벽을 관통하여 서로 필요로 하는 아미노산을 주고받는 통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죽음의 문턱까지 차버리는 절묘한 공생의 기술이 아닐 수 없다.

경쟁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래서인지 공생과 경쟁을 서로 대립하는 개념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한마디로 부대끼며 같이 사는 게 공생이다. 좀 더 전문적으로 말하면, 공생이란 서식지(공간)와 먹이(물질)를 공유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는 서로 돕기도 하지만, 때로 다투기도 한다. 우리의 일상도 그렇지 않은가? 함께 살다 보면 좋을 때도 있지만 나쁠 때도 있다. 문제는 공생의 원칙이다. 함께 하는 삶 속에서 우리에게는 타인의 노력을 존중해 주고 타인보다 잘하는 것이 있다면 그 능력을 나누어 서로를 돕는, 그런 지혜가 필요하다. 나는 그러한 삶의 방식을, 공생하는 법을 미생물에게서 배운다. 그리고 깨닫는다. 공생의 반대말은 경쟁이나 기생이나 홀로 살기 따위가 아니라 ‘공멸’이라고! 시인의 이해를 구하며 시 한 편을 패러디하며 글을 마친다.

“미생물 함부로 욕하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나눔의 미인(美人)이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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