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자 ‘벌(閥)’은 흥미롭다. ‘문(門)’ 두 짝 사이에 ‘벌(伐)’이 자리 잡았다. 문 두 짝은 가족을 뜻한다. 벌은 사람의 목을 잘라 죽이는 형상에서 유래했다. 가족이면 문 안으로 데려와 품는다. 그렇지 않으면 목을 잘라 죽인다. 섬찟한 글자다.

그래서 벌(閥)은 타인에게 적대적이다. 벌이 한번 형성된 이상 어쩔 수 없다. 문밖에 있으면 우리가 아닌, ‘느그’다. 현실이 그렇다. 벌(閥)이 사용된 단어가 끼리끼리 뭉쳐있는 이유다. 당장 생각나는 것만 여럿이다. 한국사 수업 때나 듣던 문벌(門閥)과 파벌(派閥)이 있다. 그뿐이랴, 현대사 속 재벌(財閥)과 족벌(族閥)도 빼놓을 수 없다.

그중 압권은 ‘학벌(學閥)’이다. 반만년 역사에서 끈질기기로 소문난 벌이다. 가장 인기 있는 벌이기도 하다. 혈통이나 재물도 소용없다. 기준은 ‘가방끈’이다. 긴지 짧은지, 같은지 다른지 그게 중요하다.


2.
원주캠이 ‘2018 2주기 대학기본역량평가’ 결과를 받았다. 학내구성원 모두가 ‘하위 36%’ 주홍글씨를 실감했다. 

맨 처음 터져 나온 감정은 부끄러움이다. 입에서 입으로 낯선 대학들 이름이 전해진다. 원주캠과 비슷한 평가를 받은 대학들이다. 부끄러움 뒤는 분노다. 과녁은 대학 당국, 활시위는 모두가 당겼다. 

성명, 해명, 규명… 말(言)과 말이 충돌한다. 목소리가 높아진다. 파문이 인다. 여기까진 원주캠만의 이야기다. 그런데 웬걸, 신촌캠도 잔물결에 휩쓸린다.

발단은 메일 한 통이다. 발신인은 총장, 수신인은 원주캠이다. 메일 속 ‘본교·분교체제에서 one university, multi-campus로 전환’ 문구, 논란의 시작이다. 물결이 일렁인다.

글귀 하나가 여러 갈래로 뻗어간다. 이게 무슨 뜻이냐, 본·분교 통합이냐, 아니면 병립캠퍼스냐. 절대 반대다, 말도 안 된다, 어떻게 우리가 ‘하나’냐. 이는 백분위 3%와 16%가 같을 수 없다는 선언이다. 물결은 거침없다. 두 캠퍼스 모두 삼킬 기세다.


3.
대립의 뿌리를 더듬어 올라간 그곳엔, 학벌이 있다. 이편과 저편을 나누는 문(門)이다. 문을 넘기 위해선 가방끈을 보여야 한다. 같은지 다른지, 긴지 짧은지. 우리인지 느그인지. 문은 공고하다.


문, 그대로 두나. 그대로 둘 수 있나.
그대로 둘 이유는 있나.

문, 넘어야 하나. 넘을 수 있나.
넘을 이유는 있나.

문, 어떻게 하나. 어떻게 할 수 있나. 
어떻게 해야 하나.

 

 

글 정준기 기자
joonch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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