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보단 연세대 선수들이 더 인기가 많았죠.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돌아온 이씨의 대답에는 우리대학교 농구부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났다. 소녀팬들이 반마다 옹기종기 모여앉아 농구선수 포스터를 나눠보던 시절까지 있었으니 말 다했다. 드라마 「마지막 승부」와 만화 『슬램덩크』가 일으킨 농구 열풍에 우리대학교 농구부는 쐐기를 박았다. 그 중심에 있었던 삼성 썬더스 이상민(경영·91) 감독을 만나봤다.


연고전에 반한 중학생,
독수리 비상의 중심에 서다

이씨가 연고전을 처음 본 것은 중학교 입학 직후였다. 체육관을 수놓은 파란 물결은 어린 그에게 진한 인상을 남겼다. 이씨는 “경기장을 가득 채운 젊은 관중의 열기가 가슴을 뛰게 했다”고 회상했다. 막연히 ‘연고전에서 뛰고 싶다’는 소망을 품은 그는 운명적으로 우리대학교 유니폼을 입게 됐다.

대학리그와 프로리그에서 여러 감독과 함께한 이씨는 학부 선수 시절 농구부를 이끈 최희암(체교·74) 감독을 은사로 꼽았다. 이씨는 “최 감독님은 선수 역량을 최대한으로 이끌어냈다”며 “선수들 앞에선 허점을 보이지 않는 스타일이었다”고 회상했다. 최 감독의 지도하에 선수들은 혹독한 훈련에 매진했다. 다른 운동부가 쉬는 날에도 농구부만큼은 운동을 계속했다. 때문에 이씨에게 축제나 엠티 등 평범한 학교생활은 남 얘기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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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시절, 가장 극적이었던 순간을 그에게 물었다. 이씨는 ‘94-95 농구대잔치’ 남자부 결승전을 꼽았다.우리대학교와 고려대의 라이벌전이었다. 이씨를 비롯한 선수들 모두가 비장한 각오로 경기에 임했다. 경기가 막바지에 이르고 코트와 관중석의 긴장감이 한 층 달아오를 무렵, 이씨는 점프 후 착지하는 과정에서 무릎 부상을 입었다. 이씨는 갑작스럽게 바닥에 뒹굴며 고통을 호소했고, 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던 팬들의 마음 역시 찢어졌다. 다행히 경기 종료를 약 4초가량 남기고 서장훈(사회체육·93) 선수가 버저비터*를 성공시켰다. 점수 77:75. 우리대학교의 우승이었다.

 

선수에서 감독까지,
팬들과 함께한 20년

 

농구 실력도 실력이지만, 이씨는 ‘9년 연속 올스타전 투표 1위’에 빛나는 선수다. 대학시절부터 프로선수를 거쳐 감독이 된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그를 응원하는 팬들 덕이다. 그에게 90년대 중반, 우리대학교 농구부의 인기를 물었다.

“궁금해요? 얼만큼 궁금해요?”라고 장난기 있게 반문한 이씨는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루에 팬레터만 2~3천 통 씩 받았다. 경기를 마치고 나오면 그의 얼굴을 한 번 보려는 팬들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그 사이를 헤치고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것도 일이었다. 화제가 팬으로 넘어가자, 그는 선수 시절 팬들에게 받은 선물에 얽힌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한 번은 팬으로부터 예쁘게 포장된 쓰레기를 받았다”며 “선물에는 황당하게도 ‘쓰레기 같은 인간이 되지 말라’는 한 마디가 쓰여 있었다”고 말했다.

이씨를 향한 팬들의 사랑은 그가 선수 생활을 매듭지은 후에도 끊이지 않았다. 어림잡아도 20년이 넘는 기간이다. 그를 쫓아다니던 소녀·소년 팬들은 어느덧 부모가 돼 자식들 손을 잡고 농구장을 찾아온다. 겉으로 잘 표현하지 않지만, 이씨는 골수팬 한 명 한 명을 모두 기억한다. 그는 “예전부터 선수 이상민을 좋아해 주던 팬들이 이제 다 결혼을 했다”며 “이제는 자녀를 데리고 농구장에 와서 감독 이상민을 응원해준다”고 말했다.

한편, 90년대와 비교하면 오늘날 대학 농구 인기는 아쉽기만 하다. 우리대학교 농구부 황금기의 일원이었던 그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는 “이전에 비정기전을 한 번 보러 갔다가 깜짝 놀랐다”며 “관중석 구석에 있는 응원단만 보일 정도로 사람이 없더라”고 토로했다.

이씨는 언론과 미디어에 농구 선수가 지금보다 더 많이 노출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요즘은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많다 보니 농구에 관한 관심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관건은 미디어 노출”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이씨는 “선수들이 미디어에 노출되다 보면 자연스레 선수들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늘 것”이라고 전했다. 더군다나 요즘 선수들은 농구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 재능이 많아 충분히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것이 이씨의 의견이다.

 

“후배들아, 즐겨라”

 

지난 9월 4일, 우리대학교 농구부는 ‘2018 KUSF 대학농구 U-리그’ 경기에서 고려대에 83:84로 석패했다. 연고전을 한 달가량 앞두고 치른 경기였기에 많은 이들이 아쉬움을 표했다. 소식을 기사로 접했다는 이씨는 “큰 의의를 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두 팀의 실력이 비슷하니 정기전 당일 몸 상태에 따라 경기 결과가 갈릴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상했다.

사실 선수 시절부터 줄곧 이씨에게 경기 외적인 요소는 크게 영향을 주지 않았다. 대표적인 예시가 ‘징크스’다. 운동선수 대부분은 징크스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실제로 이씨는 “(서)장훈이의 경우 이전에 진 경기 때 썼던 모든 물품을 싹 갈았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징크스가 없다”며 “징크스는 결국 자기 자신이 의도적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일부러 잊어버리려고 애썼다”고 전했다.

‘가장 치열하고 격렬했던 게임’으로 연고전을 꼽은 그에게 마무리 질문을 던졌다. 경기를 앞둔 후배 선수들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그는 “확신이 중요하다”며 “작년에도 이겼으니 올해도 잘 치를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이씨는 “내가 그랬듯 선수들 또한 연고전 경기를 즐겼으면 좋겠다”며 “승리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고 경기에 임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이씨가 기자에게 연고전 농구 경기 일정을 물어봤다. 경기장에 직접 갈 수 있을지 확인하기 위함이다. 달력을 확인하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대학교 농구부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었다. 우리대학교 농구부에 대한 이씨의 관심은 20년이란 세월이 무색하다. 선배로서도, 감독으로서도 우리대학교 농구부 발전을 위해 아낌없이 노력해 온 그다. 이상민의 앞날을 응원한다.

 

*버저비터 : 농구 경기 중 버저가 울림과  동시에 득점하는 것

 

글 손지향 기자 
chun_hyang@yonsei.ac.kr
연세춘추
chunchu@yonsei.ac.kr

사진 하수민 기자  
charming_so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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