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재 교수 (우리대학교 인예대)

서미감 병원 건립 이후 의료선교 105주년과 대학교육 40주년을 맞아 아무리 축하하고 기념해도 모자란 2018년 원주캠에 불청객처럼 들이닥친 대학평가 결과는, 선물치고는 너무나 가혹했다. 원주 거주를 원칙으로 한다는 채용 공고 글귀 하나로 멀쩡하게 다니던 아내의 직장을 그만두게 하고, 20여 년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학교생활을 한 대가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국내·외 동료들이 해주던 위로와 염려에도, 늘어나는 것은 치욕과 좌절감뿐이었다. 그러다 대학평가의 최대 피해자일 학생들과 학부모를 떠올리면서, 나이든 교수 한 사람의 당혹감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미쳤다. 개강 첫 주, 대학기본역량 미달이라는 평가 참사에 대해 수강 학생들에게 사죄하고 진상규명과 대책 마련을 언급했던 것도 그것이 도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진상규명은 대학본부와 원주·신촌 실무팀이 작성한 ‘2015년 1주기 평가보고서’와 ‘2018년 2주기 대학기본역량평가보고서’, 교육부의 항목별 평가결과 통지서를 학생회를 비롯한 모든 구성원에게 공개한 후 다 함께 모여 무엇이 문제였는지 정확하게 진단하는 순서로 진행해야 할 것이다. 실제 대학 역량이 문제였으면 왜 그런 지경에 이르렀는지, 단지 보고서가 문제였다면 왜 그런 부실보고서를 작성하게 됐는지를 철저하게 규명해야 한다. 진상 규명을 바탕으로 총장을 비롯한 본부 행정 책임자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해명하고 책임져야 할 것이다. 그런 다음 대책을 마련하고 실행할 수 있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평가보고서와 결과서 모두 대외비라 공개가 어렵다든지 내 책임은 아니라든지 하는 무능력과 무책임을 더는 보이지 말아야 하겠다.

대책 마련은 ‘하나의 연세’ 정신을 구현하는 방향으로 모색돼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현재 그리고 미래의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납득할 수 있는 대책이 강구돼야 한다. 지금 당장이라도 2020학년도 신입생들을 위한 송도에서의 통합교육도 모색해 볼 만하다. 이미 2007년부터 원주캠퍼스에서 시행해 왔던 ‘레지던스 칼리지’를 도입하여 송도캠퍼스를 조성한 일은 높이 평가할 만한 일이었다. 그동안 20세기를 넘고자 선배들 없이, 오롯이 신입생들끼리 꿈꾸고 마련했을 21세기 연세 학풍이 얼마나 개방적이고 융합적이었을까 상상해 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이제 2020년부터는 원주캠 신입생들도 통합교육에 동참해 연세의 교육전통과 미래를 공유하는 폭넓은 교우 관계를 형성케 해 줄 필요가 있다. 미래 연세인을 꿈꾸고 있을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요구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기숙사 부지 건립비용 마련이나 통합교육에 필요한 재정 이전에 대한 고민은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다.

재학생들에게도 캠퍼스 간 교류와 수강 선택의 폭을 확대해 줄 필요가 있다. 캠퍼스별 규모와 특성의 차이로, 개설 강좌 수의 차이가 작지 않았다. 그동안 캠퍼스 간 이동 시간과 비용 문제로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평창올림픽 이후 KTX가 개통돼 이동 시간이 크게 줄었다. 원주캠에서 만종역까지, 그리고 서울역에서 신촌캠까지 셔틀을 운영하고, 열차 이동에 필요한 교통비만 해당 수강생에게 부담하게 한다면 하나가 되기 위한 양 캠퍼스 학생들의 교류와 수강 기회는 획기적으로 확대될 것이다. 지금까지는 과목별 요일 배치가 서로 달랐지만, 이제부터는 신촌캠 과목별 요일 배치에 맞춰 원주교무처에서 강의 시간과 강의실 재조정과 같은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수해야 할 것이다.

동문에게는 진정한 사과와 함께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지난 40년간 모든 구성원이 헌신적으로 노력하여 이룩한 원주캠의 명성에 누를 끼친 현직 교수로서 무슨 말씀을 드려야 위로가 될지 말문을 열기가 여전히 어렵다. 이제 정년까지 몇 해 남지 않았지만, 후배들 교육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으로 사죄를 대신하고자 한다.

물론 이 대책들이 최선은 아닐 수 있다. 처지에 따라서는 제안 수준이 낮다거나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가능한 많은 대책을 제안해 학내 구성원들을 중심으로 우리 연세의 미래를 설계하는 일이다. 그 필요성과 예산, 인력 등 실현 가능성 있는 대책을 정책화하는 과정에서 본인이 감당할 수 없으면 새로운 리더가 정책을 진행할 수 있도록 스스로 중책에서 물러나는 용기를 발휘했으면 좋겠다.

그 과정의 일환으로 빠른 시기 안에 혁신위원장의 진상규명 결과와 대책 제안을 접할 수 있기를 바란다. 무엇보다도 서로 나서 대책을 제안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내부 신뢰가 축적될 수 있으면 좋겠다. 모두에게 힘든 이 시간이 젊은 연세가 경륜의 연세로 거듭나는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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