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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동물권에 대한 학우들의 의견모든 생명이 행복하길
  • 김민욱(인예영문·17)
  • 승인 2018.09.30 22:14
  • 호수 1818
  • 댓글 0
김민욱
(인예영문·17)

최근 대전의 동물원에서 탈출한 퓨마가 사살된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많은 사람이 굳이 죽여야만 했냐며 의문을 표함과 동시에 죽은 퓨마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을 표했다. 어떤 사람들은 8년 평생을 좁은 우리에 갇혀 살았던 퓨마의 몇 시간 남짓한 짧은 해방과 피살에 대해 분노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 분노는 동물이라도 최소한의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러한 주장은 점점 힘을 얻고 있으며, 봉준호 감독은 이와 관련해 영화 <옥자>를 통해 동물권에 대해 시사한 바가 있다.

이렇게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동물의 도덕적 지위에 대한 논의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예컨대, 많은 동물이 ‘동물 홀로코스트’라고 묘사되는 공장식 축산 농장에서 길러지다 도살장에서 끝맺는 삶을 살고 있으며, 실험실에서 연구를 위한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동물권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을 타개할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해야 한다. 그러면 동물권이 무엇이며 어느 정도까지 인정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알아보자.

동물권이란 인간의 권리처럼 보호받아야 할 동물들의 권리로, 한 생명이 태어나 자연스러운 성장단계를 거치고 본연의 습성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을 보장하는 권리다. 동물권은 다양한 시도를 통해 정당화돼 왔다. 그중에서도 동물권에 대해 대단한 권위를 가지는 피터 싱어는 그의 저서 『동물해방』을 통하여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동물의 권리를 주장했다.

그는 인격체(Person)의 개념을 도입해 도덕적 고려의 대상으로 삼았다. 쾌락과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감각력(Limit of Sentience)을 갖춘 존재는 모두 이익을 가지며,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인 ‘고통-감수력(Capacity for Suffering)’의 유무가 인격체의 기준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동물이 그러한 능력을 갖추고 있으므로 ‘인격체’이며, 인간은 동물을 도덕적으로 배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피터 싱어는 특히 의식을 지니고 있으며 동시에 자의식을 갖는 존재라는 범주 안에 대부분의 인간과 침팬지, 유인원, 고릴라, 돌고래, 돼지, 개, 고양이 등 일부 동물들을 포함했다. 즉, 같은 범주 안에 들어있는 대상에 대해 동일한 수준의 도덕적 의무가 부여돼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고통은 도덕적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누군가 죽는 것을 볼 때, 직관적으로 부도덕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피터 싱어의 공리주의적 접근은 비판의 여지를 남긴다. 첫째로, 싱어의 논리가 적용되는 동물의 개체 수가 적다. 둘째로,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들의 선호를 무가치한 것으로 판단한다. 셋째로, 소수의 주변적 인간들을 동물보다 낮은 존재로 치환시키는 등의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공리의 판단 기준이 인간에게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여전히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난점들은 동물권을 정당화하려는 기존의 시도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동물권을 정당화할 수 있는 대안이 있을까? 아마도 아리스토텔레스의 덕 이론이 도움이 될 것이다. 덕 이론은 자신이라는 존재의 완성에 집중하며, 오직 ‘탁월함’을 추구한다. 탁월함은 습관적인 행위로부터 도출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덕 이론이 동물에게 적용될 수 있을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배제해야 할 세 가지 품성이 악덕, 무절제, 그리고 짐승 같음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세 가지 품성의 종합은 곧 잔인함이다. 잔인함이란 약한 존재에게 육체적인 고통을 의도적으로 가하는 행위다. 우리는 동물을 잔인하게 대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덕성을 발현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동물권은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는가? 인간은 다른 생물에게서 영양분을 얻어 살아가는 종속영양생물로 다른 생물의 생명을 빼앗는 일은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죽이는 대상의 고통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채식주의자가 되길 선택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도축 과정에서 동물의 고통이 최소화된 좋은 육식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러한 방법을 제도화하고, 교육을 통해 국민의 동물 보호 인식 수준을 높이는 것은 동물과 공존하는 첫걸음이다. 인성교육을 통한 동물권 교육, 환경윤리교육을 통한 동물권 교육, 동물 보호 단체의 동물 보호 수업 등이 그 실천적인 대안이 될 것이다. 이런 노력을 통해 모든 생명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김민욱(인예영문·17)  chunch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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