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집중포화 맞은 소득주도 성장론, 아직은 밀고 갈 때

유정수 (역사문화·17)

우스갯소리지만 한국경제는 10년 주기로 위기를 맞아 왔다. 지난 1997년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고려할 때 근거 없는 낭설로 치부하긴 어려워 보인다. 편의상 ‘한국경제 위기 10년 주기설’이라 부르겠다. 재미 삼아 한국경제 위기 10년 주기설을 지금 적용해보면, 올해와 내년은 한국경제의 세 번째 위기다. 웃고 넘어갈 이야기지만, 요즘 같은 시국엔 혹시 모를 불안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불안감의 원인으로 ‘최저임금 인상’이 손꼽히고, 최저임금 너머의 배후로는 ‘소득주도 성장론’이 지목된다. 최저임금과 소득주도 성장론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언론에 의해 만들어졌다. 최근 한 달 동안 조선일보가 ‘소득주도 성장’으로 쓴 기사는 209개다. 지면으로 발행된 기사까지 포함하면 296개에 달한다. 소득주도 성장 관련 기사만 10개씩 매일 쏟아져 나온 셈이다. 자타공인 보수신문의 총아를 자처하는 조선일보라지만 해도 너무하다.

터져 나온 기사만큼이나 비판의 수위와 표현도 제각각이었다. 어느 날은 청와대 정책실장의 말(言)로, 또 어떤 날은 야당 원내대표의 입(口)을 통해 공격했다. 여기에 사설과 칼럼으로 쐐기를 박았다. 지난 8월 27일 조선일보 사설은 소득주도 성장을 ‘좌파 정책’으로 규정한 뒤 ‘나라가 흔들린다’며 우려했다. 어느 정치철학자 칼럼은 문 정부의 경제정책을 두고 ‘독단적이고 서투르다’고 일갈한 뒤 ‘이 정책이 실패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쯤 되면 신문의 처음부터 끝까지가 소득주도 성장론에 대한 공격뿐이라고 봐도 지나치지 않다. 과거 이명박 정부가 주창한 ‘747 공약’에는 침묵으로 일관한 조선일보가 보여주는 현 행태가 못내 아쉽기만 하다.

지금껏 우리 사회에서 ‘성장이 곧 일자리와 분배로 이어진다.’는 주장은 상식처럼 여겨져 왔다. 이는 낙수효과를 노린 친(親)기업 정책으로 이어졌고, 대한민국은 기업을 우선하는 정책 기조에서 자그마치 반세기 이상을 성장해왔다. 그런데도 빈부격차와 소득분배 지표는 악화됐다. 2009년 이명박 정부 때도 소득 격차는 역대 최고치에 준했고, 이는 문재인 정부 2년 차인 올해도 마찬가지다. 주류 경제학 이론에 근거한 대기업 ‘몰빵’ 정책이 낳은 폐해다.

결과를 차치하더라도, 문재인 정부는 경제정책 기조에서 역대 정부 중 가장 완성된 정부다. 소득주도와 혁신성장, 공정경제라는 세 축을 기반으로 사람 중심의 경제를 이뤄내겠다는 포부가 담겨있다. 특히 소득주도 성장론은 ‘국제노동기구(아래 ILO)’가 2000년대 초반부터 제시한 성장 담론이다. ILO는 세계적인 저성장의 원인을 임금 격차에 따른 소득 불평등으로 진단했다. 임금을 올려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면 저성장을 돌파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탈리아 경제학자인 파레토가 고안한 ‘20:80 법칙’*은 깨진 지 오래다. 김낙년 교수는 국세청의 2000~2013년 상속세 자료를 분석해 ‘대한민국 부의 분포도’를 연구한 바 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자산 상위 10%가 전체 자산 중 66.4%를 차지하고 있었고, 상위 1%는 전체 자산의 26.0%를 보유하고 있었다. 반면 자산 하위 50%가 차지하는 비율은 전체 자산 중 2%에 불과했다. 그만큼 대한민국 노동자는 가난하고, 소득은 정체돼 있다. 참고로 김낙년 교수는 국정교과서 집필 위원으로 참여한 보수 인사다.

저소득층 소득을 높이는 것이 소득주도 성장의 핵심이다. 임금만으로는 저소득층의 지갑을 두껍게 할 수 없다. 최저임금 인상과 함께 적극적인 재정확대가 필요하다. 재정확대를 통해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과 사회안전망 확충이라는 두 기둥으로 저소득층·취약가구를 보호해야 한다. 이는 기초생활보장제도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 근로장려세제 확대, 실업급여 확대, 아동수당과 기초연금 인상 등을 통해 구체화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문 정부는 사회복지 확대 계획도 충분치 않다. 기초연금 인상 등은 9월부터 시행된다. 소득주도 성장이란 기치 아래 출발한 지 수십 개월째지만 제대로 된 첫발도 못 내민 셈이다. 또 2018년도 정부의 재정지출은 불과 7% 증가했다. 세금수입과 재정지출을 비교하면 이전 박근혜 정부 때보다 못한 수치다.

문재인 정부는 케인스주의를 내세우고 당선됐다. 최근 이전만 못 한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지만, 당·정·청은 물론 핵심 지지층까지도 아직 굳건하다. 시장의 분배를 넘어 정부의 재분배 역할과 증세를 통한 사회복지의 적극적 확대를 추진하는 정부를 보고 싶다.

 

*20:80 법칙: 상위 20%가 전체 생산의 80%를 해낸다는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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