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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칼럼] 아무래도 대2병에 걸린 것 같다
  • 김나영 기자
  • 승인 2018.09.03 17:45
  • 호수 43
  • 댓글 0

대2병. 나는 예외일 줄 알았다. 애초에 ‘대2병’이라는 단어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인생에 있어 깊은 고민을 하게 되는 시기, 그리고 그것과 동반되는 스트레스를 단순히 ‘병’이라고 치부하는 것에 거부감이 있었다. 그러나 대학교 2학년 여름의 끝자락에 서 있는 지금, 나는 아무래도 대2병 환자가 맞다.

 

대학교 1학년과 2학년은 천양지차다. 1학년은 ‘새내기’라는 이름 아래 성인으로서의 권리는 모두 누리되 책임과 무게는 보류할 수 있는 시기였다. 하루 종일 동기들과 붙어 지냈다. 술 마시며 뜨는 해를 봤다. 수업 중간에 몰래 나와 무작정 바다로 향하기도 했다. 입시를 위해 참아온 모든 것, 그 이상을 하며 송도에서 1년을 보냈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사회의 막내가 아니다. 주위 친구들은 하나둘 복수전공을 신청하고, 동아리나 대외활동을 한다. 나만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사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도 잘 모르겠다.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결코 쉽지 않다.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게 ‘가성비’가 좋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 사람을 만나면 내 과거와 나라는 사람에 대해 설명해야 하니까. 내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보여주려 애쓰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나와 정말 잘 맞는 사람을 찾기란 어려웠다. 요즘은 굳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려 노력하지 않는다. 원래 친했던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간간이 얼굴을 비추는 학과 행사에서 날 알아보는 얼굴들은 점점 줄어든다. 친구들은 각자의 일정에 치여 얼굴 보기가 쉽지 않다. 어렵게 자리를 마련했지만 예전만큼 신나지 않았다. 각자의 인생에 더 몰입할수록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는 줄어든다. 전에는 인간관계에 넓고 얕거나 좁고 깊은 종류만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인간관계는 좁아지며 얕아지는 중이다.

 

그나마 대2병이라는 말이 위안이 됐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현재에 대한 공허함을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방증이다. 혼자가 아니라는 게 위로가 됐다. 그래서 나 자신이 겪고 있는 무언가를 대2병이라고 칭하기 시작했다. 남들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더니 문득 궁금해졌다. 이것이 그냥 단순히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인지, 아니면 내가 무언가 잘못하고 있는 건지.

 

이미 대2병을 졸업한 지인들과 얘기를 나눴다. 사람들은 대2병을 세상과 타협해나가며 겪는 성장통이라고 했다. 대부분의 경우 직업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과 다르다고. 먹고살기 위해 그나마 ‘할 만한’ 일을 택하는 것이라고. 좋아하던 일도 직업이 되면 더 이상 즐겁지 않다고. ‘인간관계는 부질없다’는 말도 많이들 했다. 나중에 맥주 한 잔 기울이며 편하게 대화 나눌 사람 서너 명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라고. 그러니 맞지 않는 사람들과 애써 어울릴 필요도, 오래가지 않을 관계에 감정 소모할 필요도 없다고. 어른들의 세계란 참으로 냉소적이고 현실적이다. 이 모든 말들이 내게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가 얼마나 낭만과 환상이 가득한 사람이었길래.

 

이런 나도 결국엔 타협하게 될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현실을 외면한 채 확실하지도 않은 꿈과 낭만을 좇기에는 돈도, 여유도 없다. 그런데 이상하다. 왠지 나는 사람들의 말에 발끈했고 울컥했다. 그래도 아직 꿈을 좇을 수 있다고, 하고 싶은 게 많다고, 아직은 친구들이랑 우르르 몰려다니며 노는 게 제일 좋고 행복하다고. 모순적이지만 이게 나의 진심 아니었을까. 어쩔 수 없이 타협해야 한다면 그날을 최대한 미루고 싶다. 대2병이 성장통이 맞다면, 그리고 ‘어른’이 세상과 타협한 사람이라면, 나는 아직 어른이 되기 싫다. 준비가 덜 된 모양이다.

 

글 김나영 기자
steaming_0@yonsei.ac.kr

 

김나영 기자  steaming_0@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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