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사회와의 연계는 아직 미흡해, 서대문구 지역 특성 살릴 방법 모색할 때

서대문구에는 우리대학교를 포함해 대학 9곳이 있다. 자연스레 대학가도 생겨났다. 이른바 ‘젊음의 거리’다. 그러나 청년만 대학가를 거니는 것은 아니다. 서대문구 거주 인원 중 65세 이상 노인 비율은 15.6%다. 이는 서울특별시 25개 구 중 네 번째로 높은 수치다. 이런 인구 고령화 흐름에 발맞춰 서대문구는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복지 우수 자치구로 꼽히는 서대문구의 노인복지사업들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 
 

새벽녘 거리를 지키는 
은발의 근로자 

 

#새벽 5시 10분: 이금희 씨(76)는 새벽 5시면 일어난다. 해(年)가 지날수록 아침잠이 사라진다. 폭염 탓에 지난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선풍기 두 대로 무더위를 버텼다. ‘무더위 쉼터’로 지정돼 에어컨을 쐴 수 있는 창천 경로당이 근처에 있지만, 경로당에 다니지 않는 이 씨와는 무관한 일이다.
#아침 6시: 형광 조끼를 입은 이 씨가 청소도구를 챙긴다. 이 씨는 ‘거리환경 지킴이’다. 두 시간 동안 연세로 골목에 쌓여있는 담배꽁초를 줍는다. 업무를 마치면 신촌동 주민센터에서 ‘오늘의 업무 할당량’에 서명한다.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 젊을 땐 일하고 돌아서면 피로가 풀렸지만, 지금은 움직인 만큼 쉬어야 한다.

서대문구 노인복지사업의 핵심은 ‘공공부문 노인 일자리 사업’(이하 노인 일자리) 창출이다. 이는 근무를 희망하는 노인에게 맞춤형 일자리를 공급해 소득 창출·사회참여의 기회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현재 신촌동주민센터가 담당하는 노인 근로자는 총 57명이다. 서대문구에 거주하는 65세 이상 기초연금수급자라면 누구든 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 구청은 자체 선발기준에 따라 각 구직자에게 적절한 일터를 배정한다. 지난 3월부터 ‘거리환경 지킴이’로 근무 중인 손면자 씨(72)와 이씨가 대표적이다. 손씨는 “일을 할 수 있어 행복하다”며 “운동 삼아 움직이면서 사람도 만나고 생활비도 벌고 있다”고 전했다.

참여 노인은 하루 최대 2시간씩, 월 10회 활동한 대가로 27만 원을 받는다. 활동비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특정한 수입이 없는 어르신에겐 요긴하게 쓰인다. 이씨는 “허리가 아프지만 놀고 있을 수는 없다”며 “내년에도 사업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근무자 평균 연령이 70세인 만큼 이들의 근무량은 꼼꼼히 관리된다. 혹서기·혹한기에는 업무량이 월 7회로 조정되기도 한다. 신촌동주민센터 주민복지팀 김채원 주무관은 “태풍이나 폭우가 오는 경우에도 유동적으로 근무 일정을 조정한다”고 덧붙였다.

사업의 홍보는 주민센터나 경로당처럼 어르신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주로 진행된다. 그러나 이씨처럼 집이 멀어 시설 이용이 어려운 노인이 있을 때는 주민센터 직원이 나선다. 자택까지 찾아가 일자리를 추천해주는 것이다. 김 주무관은 “어르신이 알아서 찾아오게 만드는 것은 소극적 행정”이라며 “어르신에게 직접 찾아가 필요한 복지서비스를 알려드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콘텐츠 있는 노인복지회관 
‘어르신 놀이터’로 문을 열다

 

#낮 12시 40분: 황성희 씨(73)는 ‘지공녀’다. ‘지하철을 공짜로 이용하는 여자’란 뜻이다. 홍제동에 사는 황씨는 지하철을 이용해 서대문노인종합복지관(아래 복지관)으로 향한다. 복지카드만 있으면 복지관에서 열리는 강의들을 무료 수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벌써 10년째 이용 중이다. 황 씨는 현재 ‘영어 B반’ 수업을 듣고 있다. 교재 사이에 달력 종이가 삐져나왔다. 영어단어가 달력 뒤편에 빼곡히 적혀있다.
#낮 4시: 이영옥 씨(70)는 ‘복지관 마니아’다. 오후 3시에는 댄스스포츠 수업을 들은 뒤, 탁구 동아리 활동에 참여한다. 탁구 한 판하고 집에 가시냐는 기자의 물음에 이 씨는 고개를 젓는다. 아직 오카리나 수업이 남아있단다. 저녁 6시쯤에야 얼추 일정이 끝난다. 이씨는 상담 봉사와 ‘서대문 시니어 기자단’ 활동도 하고 있다. 이씨의 하루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복지관에 가려면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야 한다. 그럼에도 이곳은 사람들로 늘 북적인다. 현재 5개의 카테고리에서 총 32개의 강의가 운영 중이다. 수강 경쟁은 치열하다. 한국사를 가르치는 ‘역사 이야기’ 수업은 대기자만 15명이다. 이들은 강의실 뒤편에 책상도 없이 앉아야 하지만 누구 하나 개의치 않는다. 박신영 강사는 “한창 졸릴 오후 2시에 수업을 시작하는데 졸고 계신 분이 없다”며 “필기도 열심히 하시고, 이따금 던지시는 질문들이 예리해서 제가 상당히 긴장한다”고 말했다.

사회가 변하며 노인복지관의 풍경도 바뀌었다. 초창기 노인 교육은 ‘한글 교육’에 집중됐지만, 요즘은 영어나 인문학, IT 교육이 대세다. 복지관은 정기적인 설문조사와 이용자 간담회를 통해 노인들의 수요 변화를 파악한다. 기존의 폐쇄적인 이미지를 탈피하려는 노력이다. 권지현 사회복지사는 “복지관에서 일한다고 하자 어르신들 기저귀 가는 거 힘들지 않냐는 얘기도 들었다”며 “그 정도로 복지관이라는 시설에 대해 편견이 많다”고 털어놨다. 이런 오해를 해소하려는 일환으로 최근 복지관은 ‘상상 공유공간’을 마련했다. 지역주민이면 누구나 동아리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 외에도 도서실 이용과 일부 특강 신청도 가능하다.

 

노인복지사업의 블루오션
대학사회를 잡아라

 

복지관을 비롯한 다양한 노인복지시설이 지역주민 유입을 위해 애쓰고 있다. 문턱을 낮춰 지역공동체에서 고립되지 않으려는 시도다. 이는 복지사업의 다양화·지속화로 이어진다. 복지사업 대상자는 노인이지만, 지역주민 전부가 사업 참여자기 때문이다.

노인복지에 관심 있는 주민이 모여 후원을 시작하고 자원봉사를 펼치는 과정에서 복지사업은 한층 더 풍부해진다. 일례로 신촌동주민센터는 ‘나눔가게’ 협약을 맺고 있다. 나눔가게는 자발적으로 서비스·물품 등을 기부하는 상점이다. 정기적인 봉사활동은 덤이다. ‘공릉닭한마리’, ‘웅이네 서서갈비’ 등은 신촌동 거주 어르신에게 무료 식사를 대접한다. ‘한방랜드’는 무료 목욕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지역사회와의 연계가 활발히 일어나고 있지만, 서대문구 노인복지사업에 아쉬움을 표하는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현행 사업이 ‘교육도시’라는 서대문구의 지역적 특색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노인복지사업에 대학사회를 끌어들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기자가 신촌동·연희동 주민센터에 문의한 결과, 대학생과 연계된 복지사업은 없었다. 연희동 주민센터 마을복지팀 박정민 주무관은 “늘 일손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며 “대학과 연계한 프로그램이 있어서 정기적으로 자원봉사자가 수급된다면 좋겠다”고 밝혔다. 연계 창구의 부재는 주민센터뿐 아니라 대학생에게도 아쉬운 일이다. 박성현 (신학·16)씨는 “연세로를 지나며 어르신들을 자주 봤지만, 따로 도움이 될 만한 봉사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들은 바 없다”고 말했다. 때문에 봉사를 원하는 대학생은 ‘1365’ 봉사 포털사이트를 통해 개별적으로 신청해야만 한다.

노인복지사업에 있어서 대학은 블루오션이다. 앞서 밝혔듯 서대문구 소재 대학교는 9곳이다. 대학생만 3만 명이 넘는다. 대학사회가 노인복지사업의 한 축으로 발돋움한다면 극적인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있다. 특히 대학생들의 재능을 활용한 프로그램은 전망이 밝다. 실제로 복지관 측은 대학생 개인·단체가 프로그램을 제안한다면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권씨는 “막연한 봉사보다는 본인만의 특성을 살린 프로그램을 짜오면 좋겠다”며 “어르신들에겐 도움이, 학생들에겐 귀중한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 김민정 기자
whitedwarf@yonsei.ac.kr

사진 박건 기자 
petit_gunny@yonsei.ac.kr
정구윤 기자 
guyoon1214@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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