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날이 조금 껄끄러웠던 사람들에게

내겐 껄끄러운 날들이 있다. 초등학교 때는 학부모 참관수업일이 그랬고, 중·고등학교 때는 결혼기념일과 졸업식 날이 그랬다. 내게 가족은 껄끄럽다 못해 상처를 주는 존재였다.

 

오랜 연애의 끝처럼, 이혼도 하나의 자연스러운 헤어짐일 뿐이라는 사실을 지금은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어린 내겐 받아들이기 버거운 일이었다. 당연하게 느껴졌던 부모 간의 사랑이 무너지는 경험은 자식에게 상처를 줬다. 강력한 지지대인 가족은 조각나 자존감을 날카롭게 찔렀다. 가장 어려운 질문이 ‘엄마랑 아빠 중에 누가 더 좋아?’라던데, 이혼이 닥치면 그 어렵다는 질문에 답해야 하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자기가 누구 손에서 자랄지 결정해야 하니까. 물론 어느 쪽을 택하든 상처가 남기 마련이다.

 

내가 열 살 때 우리 부모님은 이혼하셨다. 엄마가 집을 나서며 이제 집에서 못 본다고 할 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엄마한테 색종이로 싼 마이쮸를 쥐어주는 게 다였다. 그 뒤 아빠가 가장 강조했던 건 입단속이었다. 아빠는 “이혼했다고 친구들한테 말하면 안 돼”를 입에 달고 살았다. TV나 소설을 보며 이혼이 얼마나 심각한 건지 어렴풋이 알게 된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내가 초등학생이던 2010년, 미디어에서는 ‘엄마랑 아빠랑 나랑’이라는 말이 많이 나왔고, 학교에서는 ‘부모님’한테 확인을 받아오라며 엄마와 아빠 사인란이 따로 나왔다. 그럴 때마다 왠지 모르게 들던 불완전한 느낌은 아버지가 말한 ‘입단속’을 단단히 하는 계기가 됐다. 입단속뿐만이 아니었다. 엄마가 없는 걸 숨기기 위해 아빠는 매일 아침 어린 나와 동생의 머리를 손수 묶어줬고, 소풍날 밤을 새서 도시락을 쌌다.

 

하지만 발 없는 말이 천리 가는 법이고, 비밀은 지켜지지 않는 법이다. 자전거를 훔쳤다고 누명을 쓴 그 날, 나는 어렴풋이 느껴 왔던 편견의 실체를 봤다. 어느 여름날 우리 층 아파트 비상구 계단에 못 보던 자전거 두 대가 세워져 있었다. 알고 보니 그 자전거들은 다른 동 친구와 친구 동생의 자전거였고, 얼떨결에 나와 내 동생은 도둑으로 몰렸다, 변명할 여지는 없었다. 학부모회장이었던 친구 어머니는 자전거를 옮기며 혀를 찼다.

 

“쯧, 그러니까 엄마 없이 자란 것들이 꼭 이러지”

 

드라마에서나 들을 법한 대사였다. 소름이 돋았다. 입단속을 해도 다들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나름 엄마 없이 완벽한 가족을 만들어가던 우리 가족의 노력은 헛수고였다. 내가 하지 않은 도둑질이 우리 가족을 불완전하다고 낙인찍은 순간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더욱 철저히 스스로를 감췄다. 부모 중 한 명과 산다는 것은 마치 나도 반쪽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사람들의 어색한 반응과 동정이 싫어 나는 거짓말과 핑계를 대며 숨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기에 부모님의 이성친구, 양육비, 재혼과 같은 문제는 온전히 내 몪이었다. 상처는 계속해서 곪아 ‘들키고 싶은 비밀’이 됐다. 단점을 가리기 위해 장점을 만들어야겠다는 강박을 가졌고,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스스로를 혹사시켰다. 그러다 고등학교 때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을 만났다. 단순히 힘들다는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것들을 나는 그제야 나눌 수 있었다. 친구와 대화하며 스스로가 불완전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혼은 불완전한 게 아니라 누구나 가지고 있는 하나의 아픔이었다. 그리고 비록 단점을 가리기 위해서였지만, 발버둥을 통해 나는 더 나은 내가 됐다.

 

사람들에게 이혼가정은 완전한 가족이 아니다. ‘화목한 가정’이라는 말을 꺼냈을 때 부모 양쪽과 자식이 식탁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떠오르기 마련이니까. 어린 나는 완전함을 동경했다. 그러나 그런 틀 안에서 누군가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우리 가족이 불완전하다’는 생각은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가진 모두를 괴롭혀 왔을 것이다.

 

하지만 돌아보면 완전한 가족은 사실 규정지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가정 사정이 어떻든 스스로가 완전하다고 생각하면 그걸로 됐다. 가족이 몇 명이든, 이혼을 했든 안했든. 그러니 불완전함을 느낄 필요도 없는 것이다. 애초에 완벽하고 완전한 가족은 없으니까.

 

글(필명) 반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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