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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하기 위해 마시는 술, 블루칼라의 보일러메이커영화 『토르: 천둥의 신』과 폭탄주
  • 윤현지 기자, 천건호 기자
  • 승인 2018.06.04 00:28
  • 호수 42
  • 댓글 0

지난 4월 25일 개봉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가 최근 인기를 끌며 어벤져스 팀 내 각 영웅들 또한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천둥의 신 토르 역시 그 중 하나. 그렇다면 토르, 그는 어떤 사람 아니 신일까? 토르는 단독작 『토르: 천둥의 신』을 통해 좀 더 자세히 묘사된다.

“그렇다면 한 잔 더, 오늘 밤 떠나주게”

토르는 엄청난 주당으로 알려져 있다. 오죽하면 동생 로키와의 술내기 중 꾐에 빠져 바다가 줄어들 때까지 바닷물을 마셨을 정도라고. 토르와 그 인간 동료인 에릭 박사의 끈끈한 우정이 드러나는 장면에도 어김없이 술은 등장한다. 이 장면에서 마신 술이 맥주와 위스키의 폭탄주, 보일러메이커다.

고급스런 이미지를 가진 보통의 칵테일과는 달리, 기원부터 섞는 장면까지 투박하기만 한 보일러메이커. 이 술은 터프하고 강한 토르의 성격을 잘 드러낸다. 투박하고 금방 취하는 탓에 보일러메이커는 싸고 대중적인 폭탄주로 묘사된다. 싸구려라는 이미지 때문에 외국에선 값비싼 위스키를 맥주와 섞어 마시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 그러나 폭탄주는 폭탄주만의 매력이 있다. 위스키와 맥주 각자 나름의 맛이 있지만 섞어 마실 때의 맛 역시 충분히 매력적이라는 말이다. 주당 토르가 보일러메이커를 좋아했던 이유는 이런 ‘섞임’에서 오는 오묘한 맛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그래서일까. 투박한 이 술을 마신 순간, 위스키와 맥주를 한데 섞은 것처럼 신과 인간은 한데서 화합했다.

몸을 따뜻하게 데운다는 뜻의 보일러메이커는 위스키와 맥주의 비율이 사람마다 제각각인 칵테일이다. 원칙적으로 정해진 비율은 없으나 1:5정도의 비율로 섞어 마시는 게 일반적이다. 이때 위스키는 보통 버번위스키*를 사용한다. 버번위스키가 스카치위스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이 싸기 때문이라고.

40도 이상의 위스키와 5~7도 정도의 맥주를 섞은 이 술은 평균 15도의 도수에 비해 취기가 금방 올라오기로 잘 알려져 있다. 애초에 이 술이 처음 고안된 것이 가난한 노동자들이 빨리 취하고 싶어서라고 할 정도니까. 독특한 이름만큼이나 이 술에 관한 서사는 많다. 부두 노동자들이 처음 두 술을 섞어 마셨다는 이야기에서부터 보일러 기술자가 우연히 맥주 캔에 버번위스키를 섞었다가 탄생했다는 이야기까지, 유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나 ‘빠른 만취’용 술이라는 설명만큼은 공통적이다.

기원도 많지만 마시는 방법도 많다. 빨리 취하기 위해 많은 양을 효율적으로 마시던 것에서부터 천천히 음미하며 마시는 것까지, 보일러메이커를 마시는 법은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변해왔다. 그중 가장 먼저는 체이서(chaser)다. 체이서는 작은 잔에 위스키를 먼저 마신 뒤 곧바로 맥주잔 가득 맥주를 마시는 방법이다. 이 경우 한꺼번에 많은 술을 마시게 돼 보일러메이커의 본 목적대로 빨리 취할 수 있다. 또 다른 방법인 밤(bomb)은 맥주잔에 위스키잔을 넣어 마시는 게 가장 기본이다. 이렇게 마실 경우 알코올 함량이 높은 위스키잔이 가라앉으며 맥주와 섞여 거품이 강하게 인다. 그런데 두 방법은 한 번에 너무 많은 술을 마시게 된다는 부작용이 있다. 이에 요즘은 잔을 넣지 않고 맥주 위에 위스키를 부어 오랫동안 나눠 마시는 방법이 유행이다. 이 경우에는 좀 더 천천히 맛을 음미하면서 마실 수는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두 술이 섞여 각자의 맛은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 된다.

보일러메이커를 마시기 위해 기자는 신촌의 위스키 전문점 모어 댄 위스키를 찾았다. 이곳에서는 맥주의 가격대에 따라 두 종류의 보일러메이커를 마실 수 있다. 블루칼라의 술이라는 취지에 맞춰 가장 싸게, 스텔라 맥주와 버번위스키를 섞은 보일러메이커(1만 3천원)를 주문했다. 체이서로 한 잔, 밤으로 한 잔을 마셔봤다.

먼저 체이서다. 소주잔 정도 크기의 위스키잔과 꽤나 큰 맥주잔에 담긴 술을 재빨리 비워야 한다. 도수가 15도 남짓이라 어렵지 않게 마실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면 오산. 톡 쏘는 맛이 강한 위스키와 탄산이 강한 맥주를 한꺼번에 마시기란 꽤나 힘들었다. 체이서로 두 가지 술을 따로 맛보니 각각의 매력을 알 수 있었다. 위스키의 톡 쏘는 맛과 감기는 맛, 맥주의 고소하지만 비릿한 맛이 따로 느껴졌다. 다만 맥주를 마시고 나서도 입안에 남는 위스키 향 덕에 맥주의 고소한 맛이 더욱 부각됐다.

다음은 밤이다. 밤의 경우 처음, 위스키가 섞일 때, 마지막에 느껴지는 맛이 각기 다르다. 밤 역시도 한 번에 잔을 비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자도 단숨에 잔을 비워봤다. 우선, 처음 거품이 일 때는 맥주의 맛이 강하게 난다. 두 술을 섞었다고 특별히 다를 것은 없고 그냥 거품이 많은 맥주를 마시는 느낌이다. 그러나 위스키잔이 기울어져 섞일 때는 위스키맛이 훨씬 강하게 난다. 달착지근하고 톡 쏘는 위스키의 향이 맥주와는 달라 부각된다. 도수가 높은 위스키지만 맥주와 섞여 목 넘김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마지막 위스키잔 밑 부분을 마실 때는 두 가지 술이 섞인 맛이 난다. 맥주의 비린 맛도 나지 않았고 위스키의 강한 알코올 맛도 덜했다.

두 잔을 한 번에 비우니 겨우 15도밖에 되지 않는 술이지만 알딸딸한 느낌이 들었다. 보일러메이커라는 이름답게 몸도 따끈따끈해지고. 왜 이 술이 취하기 위해 마시는 술인지 알 것 같았다. 토르마냥 부어라 마셔라 하다 보면 절대 맨 정신으로 집에 갈 수 없음을 기자는 직감했다. 여태 다룬 술들보다 분명 낮은 도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빨리 취할 수 있었다. 단언컨대 가장 가성비 좋게 취할 수 있는 술이다.

노동자들의 애환이 담긴 술, 보일러메이커. 그런 이 술이 우리나라에서는 폭탄주로 불리며 양복 입은 높으신 분들이 널리 사랑하는 술이 되었으니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술썰의 마지막 이야기를 갈무리하며, 더 이상은 피곤에 찌든 이들이 ‘빨리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즐기기 위해서’ 술을 마실 수 있는 사회를 조심스레 꿈꿔 본다.

*버번위스키: 옥수수와 호밀로 만든 미국 위스키

글 윤현지 기자
hyunporter@yonsei.ac.kr

사진 천건호 기자
ghoo111@yonsei.ac.kr

윤현지 기자, 천건호 기자  hyunporter@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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