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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토불이] 우리는 모두 한 번쯤 철거민이 된다『새의 시선』과 함께한 용산 참사 9주기
  • 정준기 기자, 천건호 기자
  • 승인 2018.05.28 12:11
  • 호수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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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새가 되었다고 생각하세요?”
“희망이죠.”
“아름다운 희망이군요.”
“무서운 희망이기도 하지요”
“왜요?”
“불길을 견뎌야 하니까요”

 

정찬 작가의 소설 『새의 시선』은 정신과 의사인 주인공이 환자 박민우를 만나며 시작한다. 직업이 사진기자인 '박민우'는 근육을 쓸 수 없단 판정을 받고 우울증에 빠져 주인공을 찾는다. 주인공은 그를 치료하는 도중, 과거 그가 용산 참사 당시 불타는 망루 안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날’로부터 9년이 지난 지금, 박민우의 시선을 길잡이 삼아 기자는 용산으로 향했다.
 

▶▶곧 철거가 시작될 재개발 지역의 모습. 알록달록한 벽화 사이로 솟아있는 아파트가 눈에 띈다.


용산, 그곳의 이야기

“두 사람은 불이 붙은 상태로 구호를 외쳤습니다. 
두 사람이 굉장히 오랫동안 구호를 외쳤던 생각이 납니다. 마치 정지된 시간처럼.
...(중략)...
사람이 죽었는데 사람들이 이렇게 평온…”

 

기차역 유리창 너머로 용산을 처음 만났다. 서울 중심지답게 거리와 건물 모두 번화한 모습이다. 지난 2007년 5월 서울시는 용산역 인근 '국제빌딩 주변 일대 개발 사업'을 인가했다. 재개발 확정 건물만 40층 규모의 주상복합 아파트 6개 동에 달했다. 재개발 지역에 토지와 건물을 소유한 사람들은 재개발조합(아래 조합)을 결성했다. 덩달아 자본도 몰리기 시작했다. 언론은 '조합원 1인당 수억 원의 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3.3㎡(1평)당 7백만 원 하던 땅값은 8천만 원까지 폭등했다.

2008년 11월부터 본격적인 철거가 시작됐다. 재개발 지역에 거주하던 세입자 중 86%가량이 조합이 제시한 보상금을 받고 떠났다. 물론 남은 세입자도 있었다. 그들은 끝까지 시위를 벌였다. 터무니없이 적은 보상금이 이유였다. 조합은 세입자에게 고작 휴업보상비 3개월분과 주거이전비 4개월분을 제시했다. 상가 인테리어 비용은커녕 권리금 지급도 없었다. 다 합쳐 약 1천6백만~2천5백만 원의 보상금이 지급됐다. 그들은 원래 살던 곳에서 멀리 떠나야 했다. 서울은, 아니 적어도 용산은 더 이상 2천만 원으로 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2009년 1월 19일, 세입자 30여 명이 건물 옥상에 올라가 점거 농성을 시작했다. 경찰은 현장 경비 병력으로 300여 명을 투입했다. 경찰은 물대포를 발포했고 철거민은 화염병으로 응수했다. 불길과 물길이 오가는 옥상에서 누군가 ‘서울시가 최소한의 보상도 없이 철거를 강행하고 있다’고 외쳤다. 점거 농성이 길어지자 경찰은 경찰특공대 투입을 결정했다. 대테러부대가 경찰과 함께 철거 작업에 투입된 셈이다. 약 1시간 30분 후 철거민이 농성하던 망루가 해체됐다. 용산 제4지구 철거가 완료된 순간이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화재로 잿더미가 된 망루 속에서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원 1명이 시신으로 발견됐다. 농성이 시작된 지 불과 하루만이었다.

서울용산우체국을 왼편에 끼고 용산 이곳저곳을 배회하던 기자의 눈에 문득 푯말 하나가 들어왔다. 시원시원한 서체로 서울시의 캐치프레이즈가 적혀있었다. 지긋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2009년 당시, 서울시의 캐치프레이즈는 ‘맑고 매력 있는 세계도시 서울’이었다. 아이러니한 순간이다.



‘또 다른 용산’이 있다
여기, 사람이 산다



“그런데 어젠 아무도 없었어. 장례식을 치렀거든. 장례식을 치른 날,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 수백 개의 만장(輓章)*이 새의 날개처럼 나부꼈어. 
장례식이 끝나자 사람들이 일상으로 돌아가 남일당**이 처음으로 텅 비게 된 거지. 
난 적막한 남일당 속으로 가만히 들어갔어.”

 

용산구가 아닌 동작구로 잠시 발걸음을 돌렸다. 그곳엔 9년 전 옥상에 있었던 철거민 일부가 산다. 재개발에 쫓겨 도망치듯 정착한 이 곳에서 그들은 다시 한 번 재개발의 풍파를 겪고 있다. 현재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된 그곳은 ‘상도4동 제11구역’이라 불린다. 운명이 이토록 얄궂다.
 

▶▶무너져버린 집들 사이로 여전히 사람이 거주하고 있는 집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철거 강국이다. 지난 1995년 국제연합(UN)은 ‘대책 없는 강제퇴거를 금지하라’고 권고했지만, 김영삼 정부는 ‘봉천6동 강제철거 사건’으로 응답했다. 용역에 의한 강제 철거에 저항하던 도중 철거민 한 명이 높이 18미터 철탑에서 떨어져 사망한 사건이다. 지금도 매년 추모제가 열리는 이 사건은 90년대 대한민국의 철거문화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시간이 흘러도 강제 철거는 여전하다. 지난 2012년 이래로 진행된 철거민 강제퇴거는 총 7만 8천78건에 이른다. 계절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매일 53번꼴로 강제퇴거가 발생한 셈이다. 이놈의 철거는, 재개발은 쉬는 날도 없다.

철거민은 운이 없다. '재개발이 인가됐으니 협조해달라'는 문서가 집집 우편함으로 배송된다. 그 뒤로 공탁금과 보상금, 입주권 같은 말이 동네를 몇 번 오가면, 두 손엔 푼돈만이 쥐어져 있다. 철거민은 억울하다. 그들은 법을 찾고 국회와 광장으로 뛰쳐나가지만 철거민의 애달픈 호소는 법에 닿지 않는다. 법은 준엄하다. 이 모든 게 ‘합법’이라고 되뇔 뿐이다. 철거민은 무너진다.

흔히들 집과 땅은 그곳에서 사람이 살 때야 비로소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짐작컨대 집과 땅으로 대변되는 ‘물질’보다 ‘사람’이 더 가치 있다는 뜻이리라. 이 말에 쉬이 고개를 끄덕이곤 했지만 이젠 아니다. 적어도 철거민에게 집과 땅은, 그들 자신만큼이나 가치 있다. 생존이 달렸기 때문이다. 철거민이 국회와 광장이 아닌, 망루와 첨탑으로 올라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용산이 묻는다
우리는 답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철거민을 ‘도심 테러리스트’라고 표현했다. 용산에 살던 철물점 김씨, 회사원 이씨, 전업주부 박씨는 하루아침에 테러리스트로 낙인찍혔다. 무엇이 우리를 시민으로, 그들을 테러리스트로 분류하는가. 송경동 시인은 일찍이 ‘이 세상 전체가 무허가였으면 좋겠다’고 노래했다. 오늘에서야 이 시(詩)가 절실하게 다가온다. 땅 한 평, 집 한 채가 이토록 소중하다.

『새의 시선』 속 박민우는 그날의 기억을 견디지 못하다가 끝끝내 자살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남일당을 바라봤다. 기자도 9년 전 아픔을 간직한 그곳, 남일당으로 향했다. 불타는 망루와 컨테이너박스에 매달린 경찰특공대원은 사진 속에나 존재했다. 00건설의 상호와 건설 중이니 양해를 구하는 푯말이 옛 남일당 건물터를 대신하고 있었다. 작품에서 박민우는 ‘과거’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과거에 갇히면 현재의 시간이 의미를 가질 수 없지만 
과거는 현재의 시선에 의해 
끊임없이 변하는 역동적인 생명체”

 

용산 참사는 9년 전에 끝났지만, 여전히 ‘용산’은 계속되고 있다. 또 다른 용산이 우리네 삶 곳곳에 가득하다. 용산에서의 그 날 이후 무엇이 달라졌나 읊조려봤다.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다. 용산이 묻는다, 우리는 답해야 한다.

 

 

 

*만장: 죽은 이를 슬퍼하며 지은 글

**남일당: 용산 참사 당시 철거민이 농성을 시작한 건물

 

 

 

글 정준기 기자
joonchu@yonsei.ac.kr

사진  천건호 기자
ghoo111@yonsei.ac.kr

정준기 기자, 천건호 기자  joonch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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