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 다 잡아서 비무장지대 지뢰 제거반으로 보내자’, ‘모병제 국가로 추방해야 한다’, ‘군대에 간 내 자식은 양심이 없는 것이냐’……

지난 16일, 수원지방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자 4인에 무죄를 선고했다. 뉴스 댓글 게시판은 온통 부글댔다. 복무를 마친 군필자들은 물론이고 군대에 자식을 보냈다는 부모들도 핏대를 세웠다. 갖가지 저주와 비아냥이 ‘판사새끼’와 ‘양심불량 병역기피자’에게 쏟아졌다. 이상한 반응은 아니다. 많은 이들이 군대에서 평생 안고 갈 상처를 얻어 나온다. 건강히 제대한대도 20대의 2년을 철저히 매인 채 보낸 뒤다. 인정받아 마땅한 용기와 희생이다.

그러나 용기가 단지 그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아직 없다. 결과적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대부분 1년 6개월 이상의 실형을 산다. 그렇게 자진해서 전과자가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이들의 신상정보는 매년 병무청 홈페이지에 공개된다. 취업상의 불이익, 사회적 비난, 성범죄자에 준하는 신상정보 공개를 감수하면서까지 지키려는 것은 그들의 신념이다. 국가의 부름에 답하는 데 용기가 필요한 것만큼 그에 맞서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헌법 제19조는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고 명시한다. 헌법은 법치의 근간이며 정부에겐 헌법상 명시된 자유를 보장할 책임이 있다. 혹자는 국가안보와 자유권 간의 법익 상충을 말하지만 이를 중재할 대안이 전무한 것도 아니다. 세계적으로 25개 이상의 징병제 국가가 대체복무제를 두고 있다. 법정에 선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다수가 대체복무 의향을 밝힌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신념에 따른 대체복무를 허용하지 않는다.

대체복무를 도입하려던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미 참여정부 시절 국가인권위원회가 대체복무제 도입을 권고했고 지난 2007년엔 국방부가 대체복무 허용 추진 계획까지 발표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이 집권하며 대체복무 논의는 손바닥 뒤집듯 백지화됐다. 구체적 시행 논의의 문턱에서 이명박 정부는 ‘국민 여론 수렴’을 들어 판을 엎었다. 여론조사 결과 70%에 육박하는 국민이 대체복무제에 반대했다는 것이다. 설문 문항이 편파적으로 구성됐다는 이의가 제기됐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큰 폭으로 증가한 하급심 무죄 판결은 진보정부 재집권과 더불어 이 흐름에 변화를 시사한다. 보수정권 10여 년 간은 13건에 불과하던 것이 지난 2017년 한 해에만 44건으로 늘었다. 국민 여론도 합리적 기준만 마련된다면 대체복무제에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앰네스티 한국지부가 한국갤럽에 의뢰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0%가 대체복무제 도입에 찬성했다. 국제사회도 우리 정부에 대안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실형 선고가 인권규약에 위배된다며 대체복무제 도입을 권고했다.

정부는 그간 책임을 방기해왔다. 국민이 누려야 할 자유를 보장하지 않았다. 여론이라는 허울 좋은 변명 뒤에 숨었고 젊은이들에겐 ‘병역기피자’라는 낙인을 찍었다. 무엇보다도 정책 마련에 소홀한 자신들의 책임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전가했다. 우리가 의심과 비난의 눈초리로 바라봐야 할 대상은 결코 소수 젊은이의 양심이 아니다.

 

*양심적 병역거부 : 종교적 신앙이나 개인의 신념 때문에 군 복무를 거부하는 것

 

 

글 송경모 기자
songciety@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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