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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에 갇힌 장애인, 탈출구는 어디에?장애인의 재난대피, 더 큰 사고 막을 대비 필요해⋯
  • 손지향 기자
  • 승인 2018.05.12 22:23
  • 호수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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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때문에 학창시절 지진대피훈련 진행 시 교실 안에서 기다리라는 공지를 받았으며 그로 인해 대피요령을 배운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지난 2월 18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게시된 국민청원의 일부다. 적지 않은 장애인이 ‘안전취약계층’이다. 이들은 재난 상황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을까.

 

 

갑작스런 재난,
누군가에겐 더 큰 재앙
 


안전취약계층인 장애인에게 재난은 더 큰 재앙이 된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의 「2016년 장애인 맞춤형 지원기술 개발 기획 연구」에 의하면 국내 장애인 등록률은 총인구의 4.9%를 차지하며, 시각‧청각장애인의 비율은 전체 장애인 수의 20.3%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현황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의 재난 대피와 관련된 여러 문제가 지적된다. 장애인이 재난 상황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는 장애 유형별로 달라진다.

시각장애인은 음성서비스의 부족으로 재난 대피 시 어려움을 겪는다. 일례로 정부 대표 재난안전 포털 앱인 ‘안전디딤돌’은 재난 발생 시 안전 정보를 제공하지만, 시각장애인들의 대피를 위한 음성서비스는 제공하고 있지 않다. 이에 대해 행정안전부 재난정보통신과 관계자는 “앱 자체에 음성서비스가 존재하지 않는데, 이는 시각장애인의 접근성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라며 “이 때문에 시각장애인에게 정보제공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청각장애인들의 고충도 못지않다. 재난 상황에서의 대피와 구조는 대부분 소리를 활용하고 있다. 때문에 주로 시각에 의존하는 청각장애인은 사이렌‧방송‧재난 소음 등을 듣지 못하곤 한다. 실제로 ㄱ소방서 재난예방과 관계자 A씨는 “일반적으로 재난 상황에선 ‘거기 누구 있나요?’처럼 구두로 재난 구조자의 위치를 파악한다”며 “이로 인해 청각장애인 구조에 어려움이 뒤따를 수 있다”고 말했다. 시각적으로 재난 상황을 알리는 장치인 시각 경보기 등이 대안으로 제시되고는 있으나, 현재 해당 장치들 또한 현저히 부족하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의 「2017 장애인백서」에 따르면 시각경보기와 같이 재난 발생을 알려주는 장치가 주 활동지에 설치돼 있다고 응답한 청각장애인은 18.7%에 불과했다. 이와 관련해 청각장애인 B씨는“시각경보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며 “평소 소리를 인지하지 못해 사고가 날 뻔 했던 경우가 있어 시각경보기의 보급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지체장애인은 거동이 불편해 재난 상황에서 신속한 대피가 불가능하다. 상당수의 지체장애인이 휠체어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승강기는 대피 시 필수적이다. 그러나 행정안전부의 「국민행동요령」에 의하면 지진 시에는 승강기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장애인의 상황을 고려하지 못한 규정인 셈이다. 한국장애인단체 이용석 정책실장은 “지체장애인은 휠체어 의존율이 높다”며 “재난 발생 시 휠체어를 옮길 수 있는 승강기‧계단 리프트가 작동되지 않는다면 지체장애인은 건물 안에 갇히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같이 재난 상황에 직면한 장애인들의 문제에 대해 A씨는 “장애인의 경우 장애로 인해 대피가 늦어질 수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대피 시간의 지연으로 골든타임을 놓쳐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했다.

 

속 빈 강정, 대피 매뉴얼…
효과적인 매뉴얼은?

 

장애인들을 위한 재난 대피 매뉴얼이 없는 건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선 보건복지부 「장애인을 위한 피난 매뉴얼」, 교육부 「특수교육원 안전 대비 매뉴얼」 등 장애인 대상 재난 대피 매뉴얼이 마련돼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런 매뉴얼이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있다. 훈련 진행 빈도가 낮아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국장애인재활협회의 「청각장애인 재난대응 욕구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지난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재난대응 관련 프로그램을 교육받은 청각장애인은 18.9%에 불과한 반면, 교육 빈도가 확대돼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75.5%에 달했다.

실제로 지체장애인교육기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C씨는 “이전에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다니는 학교에서 근무했을 때에서 재난대피훈련 시 장애학생을 배제했던 경우가 있다”며 “보조인의 도움 등을 통해 장애학생을 대상으로 재난대피훈련을 주기적으로 실시하자, 장애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이용석 정책실장은 “급박한 재난 상황에선 빠른 대피가 어려운 장애인을 선뜻 돕기 쉽지 않다”며 “훈련을 통해 장애인 스스로 대피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고 말했다.

효과적인 재난 대피를 위해선 장애인 대피훈련 실시 대상 확장이 필요하다. 유엔재난경감사무국 조사에선 126개국 5천400명의 장애인 중 단 20%만이 주변의 도움 없이 대피 가능하다고 대답한 바 있다. 하지만 현재 대부분의 재난대비훈련에선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장애인 관련 대피 방법이 제시돼있지 않다. 

이와 관련된 대안으로는 독일의 재난 예방 방식이 제시된다. 독일의 재난 예방 매뉴얼에는 일상생활 속 위급상황에 예방하기 위해 구조요원들과 장애인이 함께 교육을 진행하며 유대관계를 맺는다고 명시돼 있다. 지난 2017년 개최됐던 ‘재난안전 토론회’에서 한국에너지기술원 권영숙 실장은 ‘독일의 매뉴얼에는 구조자와 장애인이 유대관계를 형성해 각종 돌발상황에서 더 신속한 대피가 가능하다’며 ‘매뉴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력자’’라고 역설한 바 있다.

 

장애인을 위한 대피 관련 제도 및 규정 등은 미흡한 실정이다. 장애인에게도 안전을 추구할 권리가 있지만 이러한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재난 대피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장애인을 위한 사회적 도움이 시급하다. 그들이 재난 사각지대에서 벗어날 날을 기대해본다.

 

 

글 손지향 기자
chun_hyang@yonsei.ac.kr
그림 민예원

 

손지향 기자  chun_hyang@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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