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영 교수 (우리대학교 GLD)

한반도에 봄이 왔다. 대화 상대가 김정일 위원장에서 김정은 위원장으로 바뀐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이전의 남북정상회담과는 사뭇 달랐다. 사상 최초로 북한 지도자가 남한의 땅을 밟았고, 남북한의 지도자들이 손을 잡고 남과 북을 자유롭게 오가는 모습도 처음이었다. 2박 3일간의 회담이 아닌 당일치기 회담이었던 것도 이색적이었다. 바뀐 겉모습만큼이나, 회담의 내용도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변화시키기에 충분한 것들이었다.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기억하듯이 지난 10년 동안 남북한 관계는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 천안함 피격사건, 연평도 포격사건, 북한의 핵 실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등의 작용과 우리 정부의 강경한 반작용의 연속으로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반드시 풀어야 하는 상황에서 두 정상의 만남과 4·27 판문점 선언의 의미는 매우 특별하다.

혹자는 새로울 것이 없다고 평가절하하기도 하지만, 4·27 판문점 선언은 포괄적이면서도 구체적이기까지 하다. 무엇보다 올해 정전협정에서 평화협정으로의 전환과 종전선언을 특정하고 있고, 이것의 주체를 남북미 3자 혹은 남북미중 4자로 명시하는 진전을 보였다는 점이 가장 눈에 띈다. 2007년 10·4 선언에서도 이와 유사한 내용이 있긴 했지만, 시기를 특정하거나 3자 혹은 4자가 누구인지를 명시하지는 않았던 것에 비교하면 큰 폭의 변화다.

또한, 4·27 판문점 선언은 문재인 대통령의 올해 가을 평양 답방을 언급함으로써 지속성 있는 남북대화의 틀을 마련했다. 2000년 6·15 선언에서는 김정일 위원장이 적절한 시기에 서울에 답방한다는 모호한 언급만 있었고 결국 답방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에 비해 이번 판문점 선언은 이러한 모호성을 불식시키기 위해 문구 하나하나에도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엿보인다.

그동안 우리가 합의해 놓고도 국제환경 변화와 대내적인 요인 때문에 실천으로 옮기지 못했던 것들을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하며 재개했다는 점에서 이번 회담은 결코 ‘새로울 것이 없는’게 아니다. 좀 더 자세히 4·27 선언의 내용을 살펴보면,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2000년 6·15 선언, 2007년 10·4 선언의 정신이 곳곳에 녹아들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남북한이 합의했던 성명과 선언들의 종합선물세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러한 특징은 그동안 남북한 관계에 대한 국내여론의 갈등과 대립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1972년, 1991년은 보수적 색채의 정부에서, 2000년, 2007년은 진보적 색채의 정부에서 합의된 것들인데, 이것들을 내용적으로 총망라하였다는 점은 평화를 이야기하고, 통일을 준비하는 데 있어 진보와 보수가 따로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4·27 판문점 선언은 그동안의 남북한 간 합의 내용을 모두 담고 있다는 점에서 국내여론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남북정상회담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남북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지지도가 지역, 성별, 연령, 정치적 성향을 불문하고 80% 가까운 국민이 긍정평가를 했다는 점은 앞으로 남북한 관계에 큰 탄력을 얻을 수 있음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무엇보다 4·27 판문점 선언의 정치적 의미는 우리가 남북한 문제의 이해당사자로서 주도적이면서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판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코리아 패싱’이라는 말이 유행일 정도로 북한을 둘러싼 여러 문제에서 우리가 배제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4·27 판문점 선언을 통해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운전자론’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외교적 노력이 결실을 봤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그동안 한반도 문제에 대해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는데 이를 어느 한쪽에 치우침 없이 결합함으로써 남북한 관계발전에 위험이 될 수 있는 걸림돌 하나가 제거된 셈이다.

남북한은 헤어진 연인과도 같다. 헤어진 연인과 다시 만나기 위해서는 처음 연애했을 때보다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의 입장만 주장하다 보면 처음 헤어졌을 때와 같은 이유로 또 헤어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를 좀 더 이해하고 함께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교류협력을 바탕으로 한 상호신뢰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상호 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다방면에서의 교류협력을 명시했다는 점이 4·27 판문점 선언에 많은 기대를 하게 만든다. 우리는 이미 금강산 관광, 경의선 복원 사업, 개성공단 조성사업 등 문화, 사회, 경제 부분에서의 남북한 협력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던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물론, 꽃샘추위가 다시 기승을 부릴 수도 있지만, 어찌됐든 봄은 봄이다. 우리의 평화가, 그리고 우리의 통일이 멀다고 말하면 안 되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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