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의 고통 방조하는 대학 내 구조적 환경

권력에 의한 위계의 탄생은 필연이다. 위계는 부조리로 이어진다. 이런 구조 하에서 개인은 무력하다. 오늘날 대학원의 모습이 꼭 그렇다. 가해 교수를 향한 대학원생 개인의 항변은 형식적인 징계로 끝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범죄 수준의 인권침해가 묵살되기도 한다. 설사 대학원생의 폭로가 성공해도 내부고발자라는 낙인은 피할 수 없다. 폭로의 대가로 자신의 전공을 포기하거나 학계를 떠날 각오까지 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교원징계위원회 ▲인권센터와 같은 대학 내 구조적 환경이 미비하다는 점이 대학원생의 고통을 더욱 가중시킨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교수 징계하는 
교원‘면책’위원회?

 

대학가 관계자들에 따르면 교원징계위원회는 보여주기용 ‘교원면책위원회’로 전락한 상황이다. 가해 교수에 대한 징계가 주로 형식적인 솜방망이 처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13년부터 2016년까지 국내 대학 38곳에서 성범죄로 교원징계위원회의 징계를 받은 교수는 총 47명이다. 이 중 중징계를 받은 교수는 단 2명에 불과했다. 심지어 이들 중 43%에 해당하는 20명은 아무 처벌도 받지 않은 채 아직까지 학교에 근무 중이다.

이처럼 솜방망이 처벌이 남발되는 이유는 동료 교수가 가해 교수의 징계를 결정하는 현 교원징계위원회의 방식 때문이다.「사립학교법」에 따라 교원징계위원회 위원 자격은 해당 대학의 교수들에게만 있다. 학생대표위원은 물론 외부 전문가도 없이 교수들로만 구성되는 셈이다. 교수들끼리 ‘그들만의 징계’를 결정하니 온정주의적 처벌이 안 나올 수가 없다. 매번 교원징계위원회가 결정한 징계에 대해 잡음이 끊이질 않는 이유다. 이에 대해 이화여대 젠더법학연구소 관계자는 “독립성과 전문성, 투명성이 가장 중요하다”며 “외부 전문가가 반드시 포함돼야 하며 징계 결과뿐만 아니라 징계 과정까지 함께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교원징계위원회가 제 역할을 못 할수록 2차 피해의 가능성 또한 높아진다. 일반적으로 교수에 대한 징계는 견책·감봉·정직 등의 경징계와 해임·파면 등의 중징계로 나뉜다. 이때 중징계를 받은 교수는 교단을 떠나야 하지만, 경징계의 경우 징계가 끝난 후에 다시 교단으로 돌아올 수 있다. 성범죄로 정직 처분을 받은 교수가 정직 후 다시 학생을 지도해도 아무 문제없는 셈이다. 이때 피해 학생에 대한 보복성 2차 피해의 가능성은 높아진다. 

하지만 현재 이러한 2차 피해를 막을 수 있는 어떠한 제도적 장치도 없는 실정이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은 우리신문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대학원 내에서 발생하는 권력형 범죄는 단발적이지 않고 지속적이기 쉽다”며 “때문에 교원징계위원회가 피해 학생을 보호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재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는 상태”라고 진단했다.

이처럼 교원징계위원회의 알음알음식 처벌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짐에 따라, 정치권에서도 관련 법안 개정에 착수했다. 현재 일명 「성범죄 교수 솜방망이 처벌 금지법」이 발의돼 계류 중이다. 해당 법안은 성범죄 교수에 대한 징계 수준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이 골자다. 교육부 윤은정 기획담당관은 “교육부 차원에서도 대학 내 권력형 범죄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며 “성범죄 징계 교수를 교단에서 퇴출하는 개정안을 발의하는 등 가해 교수에 대한 징계 수준을 보다 더 강화하고, 피해 학생 구제를 위해 다양한 정책적 수단을 마련하는 중”이라고 답했다. 
 

‘유명무실’, ‘전시행정’…
대학 내 인권센터 현주소

 


나아가 대학 내 ‘인권센터’의 부재도 가해 교수의 권력형 범죄를 방조하는 구조적 환경 중 하나로 꼽힌다. 권력형 범죄로 인한 피해 학생 대다수가 2차 피해에 노출된 상황에서 이를 막기 위한 인권센터 설치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상당수의 대학원이 인권센터를 운영하기는커녕 설립 계획조차 전무하다. 실제로 지난 2015년 기준 전국 대학 237곳 중 인권센터가 설립된 대학은 19곳(8%)에 불과했다. 

인권센터를 운영 중인 경우에도 그 기능과 위상이 간판 수준에 불과해 ‘전시행정’과 다름없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고 있다. ▲전담인력 부족 ▲기간제 비정규직 위주의 운영이 그 이유다.  

현재 인권센터의 전담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이는 특히 권력형 범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성범죄 전담인력에서 두드러진다. 한국대학성평등상담소협의회의 조사에 따르면 전국 59개 대학의 성범죄 전담인력은 단 100명으로, 각 대학별로 평균 1.6명에 불과했다. 실제로 카이스트의 경우 지난 2017년 실태조사에서 전체 대학원생 중 13.5%가 ‘성희롱·성폭행을 겪었다’고 응답했지만, 현재 카이스트 내 인권센터에는 센터장을 포함해 3명이 근무 중이다. 단 3명이서 대학원생 5천700여 명과 학부생 2만여 명을 담당하는 셈이다.  

인권센터 전담인력 부족은 우리대학교에서도 지적되고 있다. 인권센터 내 인력이 부족할 뿐더러 학교 예산 지원 또한 충분히 진행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관련기사 1806호 2면 “비어있는 인권센터, 언제 채워질까”>

또 인권센터 내 전담인력 대부분이 비전문가인 기간제 비정규직이라는 점도 인권센터의 기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다. 지난 2012년 인권위원회의 실태조사에 의하면, 인권센터에서 전체 인력 중 34%만이 관련 교육을 받은 정규직 신분이었다. 현재 대부분의 인권센터가 전문적인 인권 상담은커녕 일상적인 행정 업무에도 급급한 이유다. 중앙대 인권센터 관계자는 “질 높은 상담과 실태 조사 등을 위해서는 전담인력이 필수적”이라며 “전문성이 부족한 기간제 직원에게 어느 학생이 인권 피해를 상담하러오겠나”라고 덧붙였다. 고려대 대학원 ㄱ씨는 “나 스스로도 인권 피해가 발생했을 때, 인권센터에 도움을 요청하지는 않을 것 같다”며 “인권센터가 허울뿐인 역할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아직 미흡한 대학원생 권리‘장전’
‘발사’는 언제쯤?

 

곪아버린 대학원생의 불만은 결국 터질 수밖에 없다. 지난 2017년 우리대학교에서 발생한 ‘텀블러 폭탄’ 사건이 그 예이다. 이는 우리대학교 대학원생이 지도교수와의 마찰 끝에 텀플러형 사제 폭탄으로 위해를 가한 사건이다. 텀블러 폭탄 사건 이후 우리대학교와 이화여대, 동국대 등 13개 대학이 ‘대학원생 권리장전’을 선포했다. 해당 권리장전에는 ▲부당한 지시 및 업무를 거부할 권리 ▲대학원생 본인의 연구에 대한 저작권을 인정받을 권리 등이 명시됐다. 



대학가 관계자들은 대학원의 권리장전 선언을 반기는 한편 ‘알맹이 없는 선언’이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권리장전에 강제성과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점에서 대학원 내 만연한 인권 침해를 막기에 부족하다는 뜻이다. 실제로 서울대와 카이스트의 경우 권리장전이 선포된 후 실시된 설문조사에서 ‘교수의 갑질에 시달렸다’는 응답 비율이 전보다 늘었다. 대학원생 권리장전을 두고 성균관대 대학원 ㄴ씨는 “허울 좋은 종이쪼가리에 불과하다”고 일갈한 뒤 “대학원 내 부조리를 막기 힘든 권리장전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다”라며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다.

 

 


글  정준기 기자
joonch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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