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현 교수 (우리대학교 정경대)

지난 17년 3월 30일, 안점순 할머니의 별세로 한국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스물아홉 분만이 생존하게 되었다. 지난 15년 12월 28일 갑작스럽게 발표된 위안부합의는 양국 외교부 장관의 입을 빌려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한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2년여의 시간이 지난 지금도 피해자들은 생의 얼마 남지 않은 날들을 상처 치유를 위한 힘겨운 투쟁을 하고 있다. 양국은 ‘위안부’ 문제에 군이 관여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총리 명의의 사과와 책임을 표명했다는 점, 그리고 피해자의 치유를 위해 설립된 재단에 정부의 예산을 출연하기로 했다는 점에서 최고의 결과를 얻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합의가 발표되기까지 정부 간 논의 과정에서 정작 피해 당사자들은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결국, 피해자의 육체적·정신적 상처가 치유되고 이로써 자발적인 용서가 이루어지는 것이 화해를 위한 중요한 과정임을 고려했을 때, 2015년의 합의로는 한일 화해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지난 12·28 합의에서 회복적 정의가 구현되었는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회복적 정의는 범죄 행위로 발생한 손상을 치유하는 것에 역점을 두고 있는데, 여기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참여하는 협력 과정이 필수적으로 포함된다. 이는 피해자가 받은 상처를 회복하도록 돕는 것과 가해자가 자신의 행위로 파괴된 상태를 개선하도록 하는 법적 장치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려고 하며, 궁극적으로는 피해자와 가해자 간의 관계회복을 기대하는 것이다. 과거의 아픈 역사를 뒤로하고 정의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처벌과 회복 두 가지 측면이 모두 고려되어야 한다. 처벌은 과거의 범죄를 처벌함으로써 뒤를 돌아보는 것이고, 회복은 화해를 위해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므로, 과거를 짚고 넘어가는 처벌과 함께 건설적인 미래를 위한 관계의 회복도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알려지지 않은 피해자에 대한 추가 확인 작업, 확인된 피해자들의 삶에 대한 실태조사, 이들에 대한 직접적인 의견청취가 부재하였음이 밝혀졌다. 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식 채널은 없었으며, 정부가 원하는 형태만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논의하면서 그 협상 과정과 결과 도출에 있어 피해 당사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권리는 배제된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고통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신적·육체적·경제적·사회적 차원에서 그들이 어떤 희생을 감내해 내었는지, 지금까지도 어떤 아픔에 고통받고 있는지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피해자의 상처와 아픔 정도를 가해자 혹은 타자가 결정한다는 것은 피해자에 대한 제2, 제3의 상처를 줄 가능성이 있는 문제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렇기에 회복적 정의의 관점에서 한일 화해와 ‘위안부’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으며, 피해자의 인권(人權)과 복권(復權)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런 과정들이 수반되어 비로소 정의가 실현되었을 때, 피해자에게 용서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며, 화해를 위한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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