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행이 더 특별했던 이유

본디 여행이라 함은 새로운 장소, 새로운 음식, 새로운 사람으로 가득한 설레는 경험이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허락된 낯선 풍경과 생전 처음 맛보는 것들로 가득 찬 시간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 일상을 잠시나마 잊어버린 여행자는 자연히 대담해지고 관대해질 수밖에 없다. 자신에 대해서든, 혹은 타인에 대해서든.

 

벌써 몇 년 전 이야기다. 1월 중순, 우연히 내 또래의 학생 열댓 명과 유럽으로 떠날 기회를 얻어 프랑스행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되었다. 얼굴도 말투도 제각기 다르던 그들 중에서도 유독 날카로운 눈빛이 돋보이던 이가 있어 눈여겨보던 차에 우연히도 그는 내가 조장을 맡았던 조의 조원으로 배정되었다.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소년처럼 보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세상의 온갖 풍파를 견뎌낸 노인처럼 보이기도 했던 그와 처음 대화다운 대화를 한 것은 여행의 중반에 이르러 바르셀로나에서 들른 한 가게에서였다. 

그는 막내 조원과 가이드에게 가게 안의 따뜻한 자리를 양보하고 바깥쪽 좌석에 나와 함께 앉기를 자처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알게 된 사실이라면, 그가 나보다 2살이나 아래였다는 것과 서로가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놀랄 만큼 비슷했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서로를 가늠하며 나눴던 이야기가 가게 안에 있던 일행에게 들리지 않았던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으리라. 며칠간 함께 여행하면서도 의중을 알 수 없을 정도의 무표정을 고수하던 그가 비로소 씩 웃으며 누나도 정상은 아니네요, 하고 말한 것을 기점으로 그와 나는 자연스레 함께 다니기 시작했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이 닮은 사람이었고, 이성적이고 비판적인 태도를 내세우는 인간들이지만 실은 온전히 그리하며 살아가지도 못했다. 그렇지 않다면 오랜 친구에게조차도 쉽사리 꺼내 놓지 못할 법한 이야기를 만난 지 열흘도 채 되지 않은 사람에게 털어놓는 따위의 행동을 할 리가 없으니. 나의 이야기를 들은 뒤 그가 내린 결론은 내가 미쳤다는 것이었으나 그러면 너도 미친 게 아니겠냐는 나의 반박에 그는 그것도 그렇다며 웃어 보였다. 귓바퀴를 슬쩍 쓰다듬으며 미친 놈, 하고 나지막이 뇌까려 주자 부끄러운 듯 새삼 어색하게 웃으면서도 당돌하게 맞받아치던 그의 한 마디는 지금 생각해 봐도 퍽 걸작이었다.

 

그럼 진짜 미친 짓 한번 해 봐요?

 

여행자는 그 정도가 다를 뿐 누구나 조금씩은 미친 채로 여정에 오른다. 그런 여행자의 특권이라면 일상에서는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할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점 아닐까.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낯선 외모의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이국의 성당 한복판을 거닐며 신의 존재에 관해 함께 의심하고 토론하던 이와 어두운 호텔 객실에서 은밀히 한 몸이 되어 가장 원초적인 음성으로 에로스를 찬미하는 행위는 생각보다도 훨씬 부끄럽고, 달고, 황홀했다. 우리와 함께 한국을 떠나온 이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옆방에서 카드놀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들 중 그 누구도 우리와 같은 난잡한 행위에 열중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불과 며칠 전 처음 만난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절대로 들키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신음을 참으며 서로의 체온을 온전히 나누고 있다는 사실에서 느껴지는 배덕감은 섹스 자체만으로 인한 것과는 전혀 다른 기묘한 흥분을 불러일으킨다. 

이곳은 나와는 아무런 연관점도 없는 지구 반대편의 땅이고, 나는 이곳에서 나와 너무나도 다른 생을 살아와 어쩌면 평생 만날 일이 없었을지도 모를 이와 가장 가까이 맞닿아 있다. 마지막 날 밤 떨리는 손으로 나를 끌어안고 지금은 서로에게만 집중하자며 나의 가슴께에 더운 숨을 흘리던 그의 눈동자가 동요하는 것을 보며 난생 처음으로 내일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지금 이 시간이 너무나도 아쉬워서 밤이 조금만 더 길었으면 좋겠노라고 바란 것이 무색하게도, 다음날 우리는 마치 마법에서 풀려나기라도 한 듯 각자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갔다.

그 뒤로 그 아이에 관한 소식은 전혀 듣지 못했다고 한다면 나름 극적으로 이야기를 끝맺을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아직까지 가까이 지내며 이따금씩 함께 술을 마신다. 각자의 연애와 이별에 관해 이야기하면서도 오히려 그곳에서 있었던 일을 입에 올린 적은 없지만 그 역시도 그날 밤의 기억을 나눠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묘한 긴장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엿볼 때마다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참을 수 없이 즐거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글 이상한 나라의 솜사탕

 

#2 Call me by your love

6월의 바르셀로나였다. 주황색 태양과 그 빛을 반사하는 건물들, 높이 솟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서울의 건물들을 상기시키는 현대식 건물들이 떠오른다. 사람들은 상기된 피부로 거리를 오가고 카메라와 백팩을 맨 수많은 관광객도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초록색 눈에 약간 꺾인 코, 얇은 갈색 머리카락을 가진 그를 잊을 수 없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그 날, 애플리케이션으로 연락이 왔다. L이라고 해두자. 거기선 보통 이방인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 여행을 왔냐고 묻는다. 그도 그랬다. 나는 그렇다고 했고 무엇을 좋아하냐기에 술과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했다. 물론 섹스를 하고 싶다는 말은 생략했다. 

 

계획 없이 도시를 걷다 보면 어떤 장소로 돌아간다. 파리에서는 퐁피두 미술관 앞, 리스본에서는 구시가 광장이었고 바르셀로나에서는 카탈루냐 광장이었다. 다음날 나는 그곳에서 L을 만났다. 그는 근처 자신이 학생 때 가던 펍이 있다고 했고 그곳에서 그가 먹던 메뉴와 맥주를 시켰다. 그날 우리는 내가 좋아한다고 말했던 술과 이야기를 함께했다. 낯선 사람과의 대화에서 공통점을 찾으면 이야기는 쉽게 풀린다. 그는 한국에 한 달 정도를 머문 적이 있었다. 5개월째 교환학생 중이었던 나는 반가움에 그의 여행기를 경청했고 맥주는 금세 동이 났다.

 

그는 걷기를 제안했다. 우리는 밤의 바르셀로나 거리를 지나 새로운 맥주를 사 들고 해변의 벤치로 향했다. 술이 좀 들어가기 시작하면 이야기는 쉬워진다. 야한 얘기로도 슬쩍 넘어갈 수 있다. 그렇게 시작한 이야기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 이야기를 했고 놀랍게도 그는 그 영화들을 많이 알고 있었다. 그의 섹스 경험에 대해서 들었고 나도 이에 응했다. 어느새 새벽에 도착했다. 우리가 산 여섯 캔의 맥주는 이미 없어졌고 우리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누가 먼저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우리는 어렵지 않게 서로를 만졌다. 그의 눈과 귀를 쓰다듬었고 그는 빳빳해진 내 바지에 손을 넣었다. 그의 티셔츠 안으로 손을 넣었을 때 그의 매끄러운 몸과 잔잔히 돋은 털이 느껴졌다. 그의 입술에서는 맥주 맛이 났다. 네 시였던가. 야간 버스를 타고 돌아가던 내 속옷은 젖어있었다. 

 

바르셀로나에 있었던 나의 세 번의 밤은 그의 것이었다. 그는 그가 알고 있는 수많은 바르셀로나의 장소들로 나를 데려 갔고 우리는 그때마다 주제를 바꿔가며 서로를 알게 됐다. 그를 만난 세 번째 밤 내가 그에게 물었다. “이건 굉장히 부담스러운 질문일 수도 있는 것을 알지만 혹시 내가 너를 보러 여기를 다시 와도 될까?” 바르셀로나의 어느 밤 광장에서 그는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찾은 바르셀로나는 여름의 절정을 치닫고 있었다. 나는 L의 집에 머무르며 이곳저곳을 배회했다. 그의 어머니는 스페인 가정식을 만들어주시며 나를 환대했고 나는 혹시 부담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바르셀로나를 자랑스러워하는 카탈루냐 청년인 그는 내가 가보아야 할 곳을 일러줬다. 느지막이 일어나 점심을 간단히 해결하고 여행지로 향했다. 저녁이 되면 퇴근한 그와 만나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했다. 얼마나 많은 공감과 논쟁이 있었던지를 해가 달라진 지금 복기하기 어렵다. 서로의 모국어는 달랐지만 서로가 다른 만큼 우리는 노력했다. 

 

수많은 밤, L과 섹스를 하며 들었던 노래들은 내 머릿속 플레이리스트에 들어있다. 정말 가끔 그때를 추억하고 싶어지면 그 노래를 들으며 그를 떠올린다. 그의 셔츠에 밴 바르셀로나의 태양이 만든 체취를 떠올린다. 그와의 스킨십을 떠올린다. 거리에서 우리는 키스하고 손을 잡았다. 바르셀로나 거리에서 큰 해방감을 경험했다. 스페인은 4번째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국가이다.

 

헤어짐은 금세 찾아왔다. 그리고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바르셀로나의 한 카페에서 L과 이런 대화를 나눴다. “우리는 20살이 아니니 이 만남이 멀리 떨어진 상태로 지속될 것을 믿지는 말자” 슬프지만 어른다운 대화였다고 자위한다. 한국에서의 생활은 그와의 기억을 옅어지게, 혹은 그윽하게 만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라고 추측한다. 다만 혹시나 다시 L을 만난다면 부탁하고 싶다. “Call me by your love(나를 너의 사랑 이라고 불러줘)”

글 서울에 살어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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