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들의 일상 속에 자리한 데이트 폭력

“남자친구가 제 얼굴을 자세히 보더니 주름이 자글자글하다고 하더라구요” 페이스북 페이지 ‘연세대학교 대나무숲’에 올라온 제보의 일부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일은 행복하다. 하지만 모든 연애가 상상만큼 아름답지만은 않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도 있기 때문이다.

데이트 폭력은 교제 중인 두 사람 사이에서 발생하는 신체적‧정서적‧성적 폭력 및 스토킹과 통제행동으로 정의된다. 유형도 ▲행동통제 ▲언어‧정서적 폭력 ▲신체‧성적 폭력 ▲디지털적 폭력* 등으로 다양하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홍영오 박사는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존중하지 않고 소유물로 생각해 구속하면 그게 곧 데이트 폭력”이라고 전했다. 

지난 1월 발표된 서울시의 「데이트 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서울 거주 여성 10명 중 9명은 데이트폭력을 경험했다. 데이트 폭력은 우리 일상에 얼마나 깊이 자리하고 있을까. 지난 20일 우리신문사는 3명의 학생들과 좌담회를 가졌다. 우리대학교에 재학 중인 최린(가명)·박설희(가명)·김훈(가명)씨가 참여했다.

 
Q. 데이트 폭력의 기준이 뭐라고 생각하나.

박:
 상대의 행동에 대해 불쾌함을 표현했음에도 그것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경우가 데이트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각 개인에게 일어나는 연애의 상황은 모두 다르다.
김: 상대에 대한 신체적‧정신적 의존이 지나치면 데이트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Q.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데이트 폭력 자가진단 기준표가 공유되고 있다. 데이트 폭력 진단 기준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박:
 데이트 폭력 진단 기준표(아래 진단 기준표)가 존재한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최소한의 경각심은 가져야겠지만 오히려 이런 기준들이 연애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상대에 대한 적정선의 관여는 애정표현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지 않나. 현실에서 연애 관계를 유지하려면 중간지점에서 타협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최: 진단 기준표 항목 중 원래 데이트 폭력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있었지만 의외였던 것도 있었다. 옷 스타일에 대해 애인이 언짢아하는 것도 폭력이라고 하더라. 당시 기분은 나빴지만 데이트 폭력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사소한 것도 받아들이기에 따라 폭력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건 연인 간의 소통이라고 본다.
김: 이런 기준표가 있는지 처음 알았다. 신체적 폭력이나 언어폭력 항목은 비교적 객관적인데 질투심과 같은 항목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상호간에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됐는지가 관건 아니겠나. 데이트 폭력과 연애의 경계에 모호한 부분이 있는 만큼 단일 진단표로 둘을 나누는 건 무리라고 생각한다.

 

Q. 진단 기준표를 기준으로 했을 때 데이트 폭력을 경험해봤나

최:
 평소 체형을 보완하기 위해 정장바지나 슬랙스를 즐겨 입는다. 그런데 전 애인은 그런 복장을 좋아하지 않았다. 바지를 입을 때는 번번이 짜증을 냈고 치마를 입고 나가면 칭찬했다. 옷차림을 규제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머리 스타일도 마찬가지였다. 옷차림, 몸무게 등과 같은 외형적 요소에서도 ‘밥도 굶으면서 왜 살이 안 빠져?, 너는 단발하면 안 예뻐’ 같은 말을 일삼아 스트레스를 받았다. 1박으로 여행을 가자는 제안에 ‘방을 2개 예약하면 가겠다’고 답했더니 이해할 수 없다며 반문하더라. 여행을 갈 거라면 무조건 같은 방을 쓰자는 거다.  
박: 연인끼리 의견이 맞지 않아서 싸우는 경우도 당연히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상대를 항해 험한 말을 하는 것도 데이트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상대편이 감정적으로 욕설을 사용했을 때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 성적인 부분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나는 분명히 거절 의사를 밝혔는데도 계속해서 제안을 하니까 불편했다.
김: 과거 애인에게 성적 가치관을 이유로 희롱 당했다. 개인적으로 혼후관계주의자인데 그 신념을 무시하며 ‘선비, 무성욕자’라고 희롱을 했다. 또한 단순한 놀림에 그치지 않고 친한 주변 사람들에게도 이야기했다고 전해 들었다. 사실이 아닌 것이 사실인 것처럼 알려져 불쾌했다. 

 

Q, 진단 기준표를 기준으로 상대에게 행했던 데이트 폭력은 없었는가.

박:
 애인과 장거리 연애를 했던 적이 있는데, 장거리다 보니 주말에만 애인을 만날 수 있었다. 주말에 중요한 일이 있는 애인에게 보고 싶다며 만남에 대한 강요 아닌 강요를 했던 적이 있다. 진단 기준표를 보니 아무리 보고 싶다는 사랑의 표현이라도 그것이 행동 통제의 범주에서 폭력이 될 수 있음을 느꼈다. 그때 했던 강요로 인해 불편했을 애인에게 미안한 마음도 든다.

 

Q. 데이트 폭력의 근본적 원인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박: 성이라든지 연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최근 SNS에서 남‧녀 언어 해석에 대한 게시물을 종종 접하곤 한다. 남‧녀의 표현을 단정 지어 이해할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대화와 합의를 거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자 쪽에서는 단순히 집에 들어오라고 했을 뿐인데 상대가 성적인 뉘앙스로 해석한다든지 하는 데서 발생하는 문제도 있다고 알고 있다.
김: 전에 사귀었던 애인이 내게 모든 것을 맞추려 해 오히려 내가 불편했던 적이 있다. 연애를 하면 무조건 상대를 최우선에 놓고 헌신해야 하는 것처럼 몰아가는 풍토에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행동 통제 같은 문제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쓰일 수 있다.

 

Q. 미국은 데이트 폭력을 가정폭력범과 동일하게 처벌하지만 우리나라에는 관련 법률이 부재하다. 데이트 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박: 초등학교 때부터 데이트 폭력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형식적인 교육이 아니고 보다 현장감 있는 교육이 필요할 것 같다. 꼭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더라도 사소한 행동이 상대방에게 폭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그런 교육을 통해 보다 건강한 ‘연애 가치관’이 정립됐으면 한다.
김: 영화 상영 전 매번 나오는 ‘대피로 이동방법’처럼 주기적으로 공익광고를 보여줘 각인되게 하는 것도 가능한 안이다. 전반적으로 데이트 폭력의 진단과 대처 과정에 국가가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했으면 좋겠다. 관련 법제든 판단 기준 확립이든.

 

*디지털적 폭력: 스마트폰이나 SNS를 계속
해서 점검하는 것. 비밀번호 공유를 강요하거나 사진‧동영상 보내기를 강요하는 등이 이에 해당된다.
 

글 손지향 기자
chun_hyang@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