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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가 부른다, 최희서가 달려간다열정으로 연기하는 배우 최희서를 만나다
  • 김유림 기자, 서민경 기자
  • 승인 2018.03.17 23:34
  • 호수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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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시모 아나키-스토 데스!”

일본인일까, 한국인일까. 유창한 일본어 실력에 많은 이들은 영화 『박열』의 ‘후미코’ 역을 맡은 배우가 당연히 일본인일 거라 예상했다. 그러나 스크린 속 배우는 한때 연희관에서 수업을 듣고, 청송대를 거닐며, 학관에서 밥을 먹던 우리대학교 동문이다. 우리신문사에서는 영화 『옥자』, 『박열』, 『동주』 등에 출연해 연기자로서의 입지를 굳히고 있는 배우 최희서(신방/영문·05)씨를 만나봤다. 열정과 운명의 힘을 믿는다는 최씨에게 연기란 무엇일까

 

너와 같았다, 학생 최희서

 

‘연기를 하지 않으면 살 수 없을 것 같다’. 최씨가 일말의 고민 없이 연기자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다. 최씨에게 연기는 맹목적인 열정과 사랑의 대상이다. 최씨는 “연기자로서 재능을 인정받거나 성과를 내지 못하면 그 사람 자체가 부정당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며 “이 기다림을 버틸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연기를 향한 절대적인 열정과 사랑뿐”이라고 말했다.

최씨의 예사롭지 않은 연기 열정에 불을 붙인 것은 바로 대학시절이다. 최씨는 대학시절부터 자신의 진로를 연기자로 정해뒀다. 다른 직업은 생각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연기에 몰두했다. 최씨는 입학식 날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우리대학교 연극동아리 ‘연세극예술연구회’에 가입했다. 최씨는 “동아리 활동을 하던 5년간 무려 12~14번의 연극 또는 워크샵을 작업했다”며 “매일같이 함께 땀 흘리고, 연기 연습을 하던 동아리 친구들과 가장 친하다”고 연기에 바친 자신의 학창시절을 회상했다.

깨어 있는 시간을 오롯이 연기에 바치다보니 학점은 당연스레 뒷전으로 밀려났다. 최씨는 “종종 수업을 ‘땡땡이’치고 혼자 청송대를 걷거나 경복궁에 놀러 가곤 했다”며 “매일같이 ‘혼밥’을 즐기며 연기하러 다니는 내가 다른 학생들에게는 아웃사이더로 보였을 것”이라며 웃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수업엔 누구보다도 열정적인 최씨였다. 특히 최씨는 영어영문학과 전공 수업인 영시와 영어 고전 등에 사로잡혔다. 훗날 최씨의 연기에 밑거름이 된 것들이다. 최씨는 “호기심과 탐구정신이 강할수록, 그리고 지식과 경험이 많을수록 연기에 큰 자산이 된다”며 “특히 이중전공으로 인문학과 사회학을 함께 공부한 것이 연기자로서 시나리오를 체화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비 온 뒤 맑음,
무명 후 찾아온 운명

 

이름 없음(무명). 사람에게 하기엔 잔인한 말이다. 최씨에게도 이 말은 8년 동안 따라다녔다. 배우를 포기하게 만들기도 하는 이 시절. 하지만 최희서는 달랐다. 최씨는 무명시절을 회상하며 “한 번이라도 좌절하거나 포기하고 싶다고 생각했다면 다른 데에 눈을 돌렸을 수도 있었겠지만, 슬럼프가 있어도 끊임없이 연기를 하려 노력했다”고 말한다. 실제로 최씨는 영상 오디션에서 떨어지면 친구들과 연극이라도 올렸다. 그럴 형편마저 되지 않을 때는 혼자 연기하는 영상을 찍어 친구들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최씨는 “끊임없이 연기했기에 좌절도 빠르게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긴 무명시절 동안 자신이 아직까지 발굴되지 않은 것인지 혹은 단지 재능이 없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최씨는 충분한 경험을 한 후 판단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최씨는 “1~2작품으로는 자신의 역량이나 발전 가능성을 판단하기에는 이르다”며 “적어도 4~5작품 정도는 한 뒤 주변의 격려에 따라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최씨는 ‘선택’에서부터 고민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최씨는 “조금 가혹하게 들릴 수 있지만, 예술과 현실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예술의 길을 선택하지 않을 것을 조언하고 싶다”며 “그런 고민을 하는 것 자체가 이미 기다림을 견디기에는 열정이 부족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당부했다.

열정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최씨의 대본에선 하얀 부분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매 페이지마다 글자가 빼곡히 차있다. 완벽한 연기를 위해 대본을 독파하는 ‘노력파 배우’인 셈이다. 최씨는 “작품 속 인물의 이야기를 마치 나 자신의 이야기인 것처럼 완벽하게 공부하는 편”이라며 “특히 『박열』처럼 사실에 기반한 작품은 공부하지 않고선 대본을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지 않고선 연기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씨의 노력은 실제 영화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최씨가 연기한 『박열』의 ‘후미코’는 동북아시아 최초의 페미니스트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최씨는 “‘후미코’라는 캐릭터를 알아가며 페미니즘 관련 서적을 구매해 공부했다”며 “그녀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력이 전부는 아니었다. 최씨는 배우로서의 성공에는 많은 ‘운’도 작용한다고 말한다. 오랜 무명 시절 동안, 최씨는 주변에서 많은 ‘연기의 신’을 봤다. 그 중 다수는 일명 ‘스타배우’보다도 연기를 잘 한다고 평가받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경우도 많다. 최씨는 “물론 유명세를 원치 않는 배우들도 있지만, 연기자로서의 성공에 실력뿐 아니라 운도 빼놓을 수 없는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최씨에게도 이런 운명의 순간은 다가왔다. 최씨는 『동주』의 제작자 신현식 감독과의 만남을 ‘운명’이라고 회상한다. 여느 날처럼 지하철 안에서 정신없이 대본 리딩을 하던 최씨는 신 감독으로부터 명함을 받게 된다. 그녀를 보고 ‘미친 사람, 아니면 연기 지망생이 틀림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최씨는 “공연을 준비할 당시, 대본을 외우는 것에 몰두한 내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라며 웃었다. 이렇게 신 감독의 영화 『동주』에서 ‘쿠미’역을 맡은 인연이 이어져 최씨는 이준익 감독의 작품에 출연하는 기회도 얻었다. 최씨는 “이런 일이 인생에서 쉽게 일어나지는 않는다”며 “운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선택받는 배우에서 선택하는 배우로

 

8개의 신인여우상, 여우주연상. 신인여우상과 여우주연상을 동시에 수상한 배우. 최씨에게 붙은 수식어다. 지난 2017년 최씨는 배우로서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인기를 실감하느냐는 질문에 최씨는 “꼭 그렇지도 않다”며 “그래도 요즘은 오히려 영화보다도 시상식 덕분에, 알아보는 사람이 조금씩 늘고 있다”고 말했다.

배우는 선택하는 직업이 아니라 선택받는 직업이라고 한다. 소수의 ‘스타’ 배우만이 작품을 선택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최씨는 “기회에 굶주려있는 배우, 특히 무명배우들은 가리지 않고 배역에 지원하고 오디션을 통해 선택 받는다”며 “유명해지기 전까지는 기다려야 하는 것이 배우라는 직업”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언젠가 선택받는 배우를 넘어 선택하는 배우가 됐을 때, 최씨는 어떤 연기를 하고 싶을까.

최씨가 바라는 것은 다른 게 아니다. ‘연기 잘 하는 배우’가 되고 싶은 것이 전부다. 최씨는 ‘00녀’, ‘엄친딸’ 등의 말로 자신을 규정짓는 것이 싫다고 말한다. 자신처럼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하는 단계의 배우에게 고정적인 수식어가 붙는 것은 큰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최씨는 “작품을 고를 때 역할보다는 시나리오와 이야기 자체를 보게 된다”고 말한다. 특히 ‘우리 사회에 지금 필요한 이야기’, ‘관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에 출연하고 싶은 것이 최씨의 바람이다.

 

최씨는 차기작 『아워바디』에서 8년차 고시생 역할을 맡게 됐다. 고시를 그만두고 삶의 방향을 잃은 고시생이 운동을 시작하면서부터 몸과 주변 환경의 변화를 겪는 이야기다. 우연의 일치일까, 8년차 고시생과 8년의 무명시절을 겪은 배우 최희서 사이에는 묘한 공통점이 느껴진다. 결국 좋은 ‘변화’의 경험은 누구나 바라는 것이 아닐까. 최씨에게는 그 변화의 힘이 연기에 대한 열정이었다. 최씨는 어떠한 일에 열정이 있다는 것은 그 일에 진심과 사랑이 있음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지치지 않고 ‘열정’하며 ‘사랑’하는 최씨는 오늘도 스크린을 빛내고 있다.

 

글 김유림 기자
  bodo_nyang@yonsei.ac.kr
서민경 기자
bodo_zongwi@yonsei.ac.kr
<사진제공 씨앤코이앤에스>

김유림 기자, 서민경 기자  zion_y2857@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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