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로 복무환경 제각각... 정신적 후유증도 심해

소방인력 부족은 오늘날 대한민국에 만연한 고질적 문제다. 이에 지난 2002년 정부는 ‘의무소방원 제도’ 도입을 발표했다. 현역 입영 대상자 일부를 의무소방원으로 복무시켜 일선 소방현장 인력난을 경감시키겠다는 목적이다. 하지만 최근 의무소방원 안팎에서 ▲정신적 후유증 ▲열악한 복무환경 등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평균 ‘21세’ 의무소방원
상당수가 후유증 시달리지만 사후지원은 전무

 


현행 「의무소방대 설치법」은 의무소방원에게 ‘소방공무원의 화재·구조·구급 업무 등을 보조하는 역할’만 수행해야 한다고 명시하지만, 실제 현장은 다르다. 소방인력이 부족한 탓에 의무소방원이 일반 소방공무원 몫까지 떠맡는 경우가 잦다. 익명을 요구한 현직 의무소방원 박모씨(22)는 “원래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소방공무원이 투입돼 불길을 진압하는 동안, 의무소방원이 소방호스 전개 및 소방차 조작 지원 등 보조 업무을 맡아야 한다”며 “그러나 소방 인력 부족으로 의무소방원도 현장에 투입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사전 교육 없이 현장에 투입되는 상황에서 의무소방원 상당수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아래 PTSD)를 겪는 것으로 조사됐다. PTSD는 특히 참혹한 화재 현장이나 부패한 시체 처리 과정 등을 겪으며 주로 나타나는데, 우울증 및 충동조절 장애 등이 동반한다. 실제로 우리신문사와의 인터뷰에 응한 전·현직 의무소방원 6명 중 5명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아래 PTSD)를 겪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경기도 내 안전 센터에서 근무했던 전직 의무소방원 A씨는 “출동했던 현장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참혹했다”며 “부패한 시체를 수습하거나 갑작스런 사고 피해자들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매우 심한 PTSD를 겪었다”고 호소했다. 화성소방서 현직 의무소방원 B씨 또한 “지금껏 현장에서 목격한 사망자가 40여 명을 넘는다”며 “혼자 있을 때마다 현장에서의 기억이 떠올라 술에 손을 댈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현재 정부 및 소방 당국은 의무소방원의 정신적 후유증에 대한 어떤 통계 자료도 없는 실정이다. 의무소방원을 대상으로는 설문조사 한 번 진행한 적 없다. 의무소방원을 위한 제도적 안전장치가 있을 리 만무하다. A씨는 “소방공무원이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경우엔 심리상담 등이 제공되기도 하지만 의무소방원을 위한 사후지원 제도는 없었다”며 “간혹 의무소방원에게 집단 상담을 제공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소방공무원이 받는 상담에 끼워준 경우”라고 밝혔다. 

익명을 요청한 소방청 관계자는 “임무 수행 중 의무소방원이 겪는 정신적인 부담감을 인지하고 있다”며 “올해부터 의무소방원을 위해 자체적인 심리상담 제도 등을 도입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한편 비단 의무소방원만이 정신적 후유증을 앓는 것은 아니다. 이는 소방공무원에게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진행한 「소방공무원 인권 상황 실태 조사」에 따르면, 설문에 응한 소방공무원 7천509명 중 1천341명(17.5%)이 ‘PTSD 증세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일반인 평균(3.0%)보다 5배 높은 수치다. 또 소방공무원 550명(7.2%)이 ‘PTSD 증세 때문에 자살까지도 생각한 적 있다’고 조사됐는데, 타 직종군 평균(1.7%)보다 약 4배 더 높다. 지난 2012년부터 5년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소방관은 37명이다. 이는 같은 기간 화재 등으로 순직한 소방관 수(21명)보다도 많다.


고질적 소방 인력 부족의 희생양?
의무소방원 “3교대 근무는 그림의 떡”

 

의무소방원 복무 환경은 소방인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1선'인 소방인력이 충분해야 '2선'에 위치한 의무소방원도 한결 여유로울 수 있다. 하지만 1선 인력난이 2선까지 번진 모양새다. 

이는 통계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2017년 국민안전처는 각 시·도별로 필요한 소방인력 대비 실제 근무 중인 인력을 조사해 「소방력 대비 인원 현황」을 발표한 바 있따. 2017년 필요 소방인력은 총 5만 1천857명이었지만, 실제 근무 중인 소방인력은 3만 1천306명(60.3%)에 불과했다. 10명을 투입해야 하는 현장에 6명만 출동 가능한 셈이다. 부족한 4명 몫은 의무소방원이 떠맡는다. 

그나마 수도권 상황이 좀 낫다. 소방인력 수급 문제는 비수도권일수록 두드러진다. 서울시는 근무 중인 소방인력이 필요 인력 대비 94% 수준인 반면, 충청도와 전라도는 각각 49.4%, 50.2%에 머물렀다. 비수도권 일선 소방 현장에서 “지방 소방원은 마음대로 아프지도 못 한다”는 농담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구조에서 의무소방원이 본래보다 과도한 업무를 떠맡는 상황은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휴식시간 보장과 3교대 근무는 그림의 떡이다. 밤새 이어지는 5분 대기와 2교대 근무가 그들의 일상이다. 경상남도 거창소방서에서 근무한 전직 의무소방원 고두현(23)씨는 “24시간 상시대기하며 출동을 기다리는 형태로 복무했다”며 “출동에 상관없이 대기했기 때문에 계속 업무가 이어졌고 휴식 또한 취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전라북도 군산소방서 전직 의무소방원 C씨 또한 “밤낮에 상관없이 출동해야 했는데 소방서 인원이 부족해 2교대로 근무할 수밖에 없었다”며 “일정한 휴식 시간도 없어 업무로 인한 긴장과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소방청 관계자는 “의무소방관 업무가 현재 과중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며 “의무소방원이 낮에 업무를 처리하고 밤에는 휴식하도록 보장하는 등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 중”이라고 설명했다.

 

소방 예산과 맞물린 복무환경
지방일수록 열악해

 


인력부족으로 인한 업무 과중만이 문제의 전부는 아니다. 의무소방원 복무 환경이 각 시·도별로 제각각이란 점도 개선 사항으로 지적된다. 

같은 의무소방원이지만 근무지에 따라 복무 환경이 다른 이유는 간단하다. 지자체가 현행 소방 예산 중 절대다수를 부담하기 때문이다. 재정 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는 타 지자체보다 소방예산에 투입하는 비용이 적을 수밖에 없다. 소방서에 지급되는 예산이 지역별로 천차만별인 이유이다. 

실제로 지난 2017년 소방청이 발표한 ‘시도별 소방재정 현황’에 따르면 소방재정의 92%는 각 시·도 예산 몫이다. 충청북도가 집행한 소방예산은 2017년 약 1천520억 원인 반면, 경기도는 같은 기간 약 5천600억 원을 사용했다. 재정자립도가 29.5%에 불과한 전라남도는 최소한의 소방 예산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전남·전북·강원·경북 등에 위치한 소방서에선 10년 넘은 소화 장비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고씨는 “의무소방원에게 지급되는 활동복 및 신발 등 장비도 각 시·도 재정 상황에 따라 결정된다”며 “경상남도처럼 재정 상황이 열악한 곳은 타 지역에 비해 질 떨어지는 제품이 지급된다”고 밝혔다.

예산 규모만으로 단순비교는 어렵지만, 비수도권에 복무 중인 의무소방원일수록 상황이 좋지 않음은 확실하다. 소방청 관계자는 “의무소방원 처우 및 소방서 개·보수 등은 전적으로 소방 예산 규모에 달려있다”며 “의무소방원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소방예산의 지속적인 증액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기획재정부 안전예산과 변지영 사무관은 “의무소방원의 현 상황은 파악하고 있다”며 “작년에는 의무소방원 인건비를 기존보다 인상하는 등 전반적인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변 사무관은 “예산은 한정돼 있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개선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한민국 소방계의 고질적 인력난과 예산 부족은 현재진행형이다. 특히 의무소방원은 일반 소방공무원보다도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다. 그러나 이들이 지고 있는 무게에 비해 이를 해결할 계획은 아직 초기 단계 수준이다. 의무소방원, 그들이 짊어진 ‘의무’가 부당한 짐은 되지 않아야 한다.

 

 

글 정준기 기자
joonchu@yonsei.ac.kr
강현정 기자
hyunzzang99@yonsei.ac.kr
사진 박건 기자
petit_gunny@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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