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회 ‘우롱센텐스 : 당신의 문법은 어디에 근거합니까?’ 열려

지난 2017년, 미국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은 배우들의 폭로로 시작된 ‘#me too’은 SNS를 통해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침묵을 깨고 나온 그들과 같이 우리나라에도 또 다른 운동을 통해 침묵을 깬 이들이 있다. 12일 신촌 얘기아트시어터에서는 2016년 우리나라 SNS를 달궜던 ‘#문단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 이후에 대한 ‘우롱센텐스: 당신의 문법은 어디에 근거합니까?’ 좌담회가 열렸다.

 

#문단_내_성폭력,
어둡고 고요한 중에 침묵을 깨다

지난 2016년 10월, 문단 내 성폭력을 고발하는 ‘#문단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아래 해시태그 운동)이 SNS를 뜨겁게 달궜다. 해시태그 운동은 문학 교육의 현장에서 교육의 명목 하에 교습현장, 술자리, 낭독회 등에서 자행된 성폭력을 폭로했다. SNS 고발로 시작된 해시태그 운동은 곧 오프라인으로까지 이어졌다. 고양예고 문학 강사였던 특정 시인의 성폭력 사건을 고발하고 피해자를 지지하기 위해 졸업생 107명이 연대해 ‘탈선’이라는 단체를 조직한 것이다. ‘탈선’은 낭독회 등을 개최하며 해당 고등학교 성폭력 사건의 고발자 및 생존자를 지지했다.

이어 ‘탈선’의 운영진은 고양예고생을 넘어 더 많은 이들과 연대하고 문단 내 성폭력 고발자들과 피해자들을 지지하고자 ‘우롱센텐스(Wrong Sentence, 아래 우롱센텐스)’ 프로젝트 팀을 결성했다. 지난 2016년 10월부터 1년이 넘는 시간이 지난 지금, 문단 내 성폭력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음에도 미지근해진 사회적 반응에 우롱센텐스는 좌담회 <우롱센텐스 : 당신의 문법은 어디에 근거합니까?>로 답했다.

 

우롱센텐스, 문학계 내 문법에 반문하다

이번 좌담회는 총 3부로 구성됐다. 1부는 전국의 문예창작과 대학생, 2부는 독립문예지 및 팟캐스트 운영진, 3부는 기성 문인들을 패널로 초청해 심도 있는 이야기가 오갔다.

좌담회에서는 해시태그 운동 이후, 고발된 성폭력에 대한 고양예고 문예창작과의 대응이 부족했음을 비판했다. 1부 패널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강대호씨는 자정되는 분위기가 형성되긴 했지만 그게 다였다”며 “공식적인 대책에 대해서는 침묵했고, 학교 측에서 문제가 된 강사를 해고하는 데 있어 그 어떤 입장 표명도 없었다”고 말했다. 문단 내 성폭력이 발생하게 된 구조에 대한 직접적인 변화보다는 개별 피해 사례에 대한 대응만이 있었다는 지적도 언급됐다. 강씨는 “강사가 ‘탈선’ 연대에서 활동하는 사람들과 피해자들에게 개인적으로 한 사과만 있었을 뿐 시스템적인 변화는 전반적으로 미비했다”고 전했다.

문단 내 성폭력이 자행될 수 있었던 배경으로는 문학계의 획일적인 등단 과정과 문학계의 폐쇄성이 꼽혔다. 등단 과정이 폐쇄적이고 획일적인 탓에 문인 사이에 수직적인 권력관계가 생겼다는 것이다. 좌담회 참가자들은 이러한 권력관계가 기성 문인들의 요구를 거절하기 힘든 구조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3부 패널 소영현 평론가는 “문학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 없이 단순히 전공이기 때문에 문학을 공부하는 것이 오히려 문예창작과 학생들에게는 독이 될 수 있다”며 “폐쇄적이고 획일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방법으로 문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획일적인 구조에서 벗어나 다양하게 문학하기의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된 방법이 독립문예지와 팟캐스트다. 2부 패널 팟캐스트 ‘문학은 개뿔’의 ‘영화’씨는 “우리가 배운 문학은 약자의 편에 서서 제도와 권위에 대항하는 것이었는데, 이를 가르쳐준 사람들이 정작 불의에 침묵한다”며 “팟캐스트를 진행할수록 독자들이 이미 한국 문단의 권력에 등을 돌렸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서 ‘영화’씨는 “우리는 문단 권력, 발화의 통제 속에서도 굴하지 말고 읽고 쓰고 말해야 한다”며 팟캐스트를 통해 이를 실천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또한 구조적인 변화를 위해서 더 많은 연대와 고발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2부 패널이자 해시태그 운동의 지지자였던 책은탁 전 마케터는 “‘침묵깨기’를 통한 문단 내 건강한 분위기 조성을 위해 단결력 있게 한 목소리를 내야한다”며 “지지자들이 연대하여 서로를 보듬어 줘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책씨는 위법을 감행하면서까지 실명을 공개하는 폭로가 필요했던 이유는 현행법 상 피해자가 온전히 보호받지 못한다는 점과 더 많은 연대, 또 이를 위한 대중의 관심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문예창작과에 진학하려는 고등학생 최윤영(19)양은 이번 좌담회에 대해 “용기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덕분에 한국 문학계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을 거라는 희망을 봤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문예창작과 재학생 김정은씨는 “문단 내 성폭력이나 문단 구조에 대해 이야기하는 공식적인 자리에 처음 참가했는데 정말 의미 있었고 앞으로 더 많은 자리가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롱센텐스는 이번 좌담회 내용을 홈페이지와 서비스로 공유하는 작업을 계획하고 있다. ‘탈선’의 운영진 중 한 명이자 이번 좌담회의 사회를 맡았던 오빛나리씨는 “이번 좌담회에 대한 참가자 피드백을 토대로 다음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글 김가영 기자
jane1889@yonsei.ac.kr
윤현지 기자
hyunporter@yonsei.ac.kr
사진 천건호 기자
ghoo111@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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