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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고리 방향성
  • 우리대학교 화학과 김동호 교수
  • 승인 2017.12.02 22:13
  • 호수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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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교수
(우리대학교 화학과)
 

벤젠, 나프탈렌 등과 같이 향기를 내는 유기화합물에서 유래한 방향성(芳香性, aromaticity) 이라는 개념은, 고리 형 탄소화합물이 이차원의 평면에 놓여 있으면서 공명(resonance)구조를 갖는 것을 필요조건으로 한다. 방향성을 띠는 평면 고리 형 탄소화합물은 평면에 수직인 방향으로 놓여있는 p-오비탈(p-orbital)의 파이전자(π-electron)를 서로 공유하며, 더 넓은 공간에서 파이전자의 비편재화(delocalization)를 가능케 하는데, 이 때 추가적인 에너지 안정화를 갖게 되는 것이다. 향기가 난다는 뜻의 “방향”이라는 단어가 이러한 뜻을 갖는 화학적 용어로 사용되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그렇다면 평면상의 이차원 구조를 넘어, 삼차원의 구조를 갖는 유기 화합물도 방향성을 가질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 본 연구팀은 유기분자를 직접 고안하였고, 방향성 분자 다리가 삽입된 삼차원적 구조의 확장 포피린을 합성하는데 성공하였다. 이 물질은 외부 자기장(external magnetic field)의 영향 하에서 하나의 유기분자 내 독립적인 두 개의 방향성 고리전류(dual aromatic ring currents)를 동시에 가질 수 있으며, 본 연구팀은 양성자 핵자기 공명법(proton nuclear magnetic resonance)과 엑스레이 회절분석법(X-ray diffraction spectroscopy)을 이용하여 이를 완벽히 밝혀내었다. 이 현상은 분자의 방향성 연구분야에서 최초로 실현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1960년대, 로알드 호프만이 최초로 제시하였지만 가상의 분자에서 양자역학적 계산으로만 증명할 수 있었던 “이중고리방향성 (bicycloaromaticity)”이라는 미제의 개념을 김동호 교수 연구팀이 최초로 실현시킨 것이다.

 최근 3년간 본 연구팀은 다양한 확장 포피린 분자체를 합성하여, 삼중항 들뜬 상태(triplet excited state)에서의 방향성 역전 현상(aromaticity reversal)에 대한 연구에 주력해 왔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유기분자가 삼중항 들뜬 상태로 머물 수 있는 찰나의 순간(약 10-6초)에 일어나는 빛의 재흡수 과정을 정량·정성 분석하여, 오랫 동안 이론으로만 제기되어 왔던 베어드 방향성(Baird aromaticity)을 분광학적 실험으로 증명한 세계 최초의 연구로서 유기·물리화학 분야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앞선 연구성과들을 발판으로, 본 연구팀은 삼중항 들뜬 상태가 아닌 삼중항 바닥 상태 (triplet ground state)에서도 방향성 역전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가설을 분자 다리가 삽입된 확장 포피린 분자를 이용하여 완벽히 증명하였다. 이중 방향성(dual aromatic) 고리분자에서 2개의 최외각 파이전자를 제거하면 삼중항 바닥 상태의 안정한 이가 라디칼(biradical)이 형성된다는 것을 밝혀냈다. 본 연구팀은 2개의 파이전자가 전기화학적으로 제거되어 4n개의 파이전자를 갖는 화학종이 되었을 때에도 방향성을 가지며 구조적·에너지적으로 안정된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을 확인하였으며, 이와 같이 삼중항 바닥 상태에서 베어드 방향성을 갖는 것을 양자역학적 계산, 레이저 분광법 등을 통하여 증명하였다.

 새롭게 합성된 분자다리 삽입된 확장포피린을 이용한 방향성 뒤집힘에 대한 분광학적 기초연구는 학문적 호기심 충족을 넘어서 유기합성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벤젠, 나프탈렌 등과 같은 안정한 방향성 분자에 친핵성 첨가(nucleophilic addition) 혹은 친전자성 치환(electrophilic substitution)을 통한 새로운 유도체의 합성은 유기화학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연구분야이다. 그러나 안정한 방향성 분자들은 새로운 분자로의 변화를 원하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 새로운 유도체의 합성이 쉽지 않다. 이러한 측면에서 바닥 혹은 들뜬 상태에서 분자의 방향성 뒤집힘 현상에 대한 기초연구는 새로운 유도체의 효과적인 합성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방향성 뒤집힘을 통한, 구조적·에너지적으로 불안정한 반 방향성(antiaromaticity) 분자의 생성은 추가적인 반응에 대한 규명을 더욱 용이하게 할 수 있다. 삼중항 바닥 혹은 들뜬 상태에서의 방향성 뒤집힘 연구는 반응물의 안정성 예측을 가능케 함으로써 광 선택적 합성 메커니즘을 밝히고 그 효율성을 증가시키는 연구로의 새로운 장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요약하면, 독자적으로 고안하고 합성 한 유기분자를 이용하여, 현대화학에서도 풀지 못한 “이중고리방향성”의 실현과 “삼중항 바닥상태 방향성 뒤집힘”이라는 숙제를 동시에 해결하였다고 할 수 있다.

우리대학교 화학과 김동호 교수  chunch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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