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암 K대학의 별칭은 막걸리 대학교다. 막걸리와 Korea에 모두 민족성과 전통성이 느껴지기 때문일까. 막걸리는 그래서 어딘가 정이 느껴지고 또 한편으로는 참 촌스러운 술이다. 
한 학기동안 술썰을 연재하면서 매달 술을 선정할 때 많은 고민을 했다. 우리가 어떤 술을 마시고 어떤 술을 모르는가에 대한 고민은 ‘사실 우리는 모든 술을 먹으면서도 아무 술도 모른다’는 답변으로 이어졌다. 우리 술도 모르고 마셔왔던 우리의 음주 이력을 위로하며. 술썰의 마지막 이야기는 ‘막걸리’다. 신촌 '막걸리싸롱'의 신정훈 사장님과 함께했다. 

“요즘은 쌀막걸리를 많이 먹죠. 쌀이 모자라서 쌀막걸리를 금지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쌀막걸리가 맛이 훨씬 좋아서 판도가 바뀌었어요.”
쌀로 밑술을 담가 청주를 걸러내고 술지게미*를 걷어낸 술이 막걸리다. 당장 먹고살기 바쁘다 보니 일제강점기와 1960년대에는 쌀로 술 만드는 것이 금지됐다. 그 대용으로 등장한 것이 밀막걸리다. 하지만 전통을 거스른 술이 원조에 맛으로 맞서기는 어려웠다. 쌀 소비량이 줄어 그 값이 떨어지자 막걸리 등 술의 재료로 쌀을 씀으로써 쌀값을 다시 높이려던 시도도 쌀막걸리 소비 증대에 한 몫을 했다. 

“전국의 양조장에서 올라오는 팔도 막걸리들에는 다 각자의 이야기가 있어요. 생막걸리가 주를 이루죠. 어르신들의 경우에는 ‘대강’이나 ‘백년’막걸리처럼 단맛이 빠지고 시큼 텁텁한 맛이 주를 이루는 종류를 좋아하세요. 젊은 사람들은 달고 부드러운 막걸리를 좋아하는 편이구요. 그래서 ‘지평’, ‘느린마을’ 막걸리가 많이 나가는 추세에요. 워낙 유명한 알밤막걸리는 알밤 자체의 단맛이 더해져서 제일 잘나가요. 막걸리가 이제는 쓰지 않고 달콤한 술로 변화하고 있는 것 같아요.”
기자도 알밤막걸리를 좋아한다. 체질 탓인지 이상하게 도수가 높은 양주나 소주보다도 맥주나 막걸리 같은 곡주 한 잔에 더 취약한 편인데, 더구나 시큼한 맛과 탁한 느낌의 막걸리에는 쉽게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적당히 맑은 농도에 ‘바밤바’ 맛이 나는 알밤 막걸리는 달랐다. 마냥 달지 않고 진한 밤 맛에 깔끔한 알코올의 마무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 막걸리를 접할 때는 알밤 막걸리처럼 달달한 것부터 시작하는 것을 권해요. 막걸리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고 시작하는 것이 좋거든요. 하지만 단맛은 오래 가지 않으니까 씁쓸한 맛 쪽으로 서서히 나아가면 좋아요. 또 막걸리는 용량이 커서 은근히 ‘훅’ 가는 술이에요. 저희 가게에도 무한리필 메뉴가 있기는 하지만, 막걸리 무한리필은 추천하지 않아요.” 
그랬다. 기자가 막걸리를 다루는 술자리에서 영 맥을 못 추고 ‘훅’ 가버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막걸리에는 아무래도 파전이 잘 어울리죠. 막걸리의 시큼 텁텁한 맛과 파전의 달착지근한 맛이 기막힌 궁합을 자랑해요. 막걸리는 유산균이 많기도 하고 그 자체로도 배가 불러 안주를 많이 먹지 못해요. 어찌 보면 다이어트에 좋은 술인 셈이죠.”
사장님이 내어주신 막걸리 샘플러와 해물파전을 한 잔에 한 점씩 먹어보기로 했다. 막걸리는 달지 않은 맛에서부터 단맛 순서로 먹어야 단맛을 입 안에 남기지 않고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샘플러에 있는 막걸리들을 대강-지평-느린마을-개도-검은콩-알밤 순으로 먹고, 마지막으로 딸기바나나막걸리를 먹기로 했다. ‘대강’은 신맛이 강했다. 사이다 같은 청량감이 느껴지면서도 단맛이 풍부하게 전해졌다. 기름진 파전의 맛을 막걸리의 청량감이 마무리하고 있었다. 파 향이 시큼한 맛을 아주 강하게 잡아줬다. 기분 좋은 끝맛이었다. ‘지평’은 ‘대강’과 비슷한 맛이지만 보다 맑은 느낌이 들었다. ‘느린마을’은 신맛 없이 단맛과 청량감이 아주 강하게 느껴졌다. ‘개도’는 시멘트 빛깔에 아주 시큼한 뒷맛을 자랑한다. 우리가 아는 가장 흔한 막걸리 맛이다. ‘검은콩’은 마치 두유의 그것처럼 콩맛에서 우러나오는 고소함을 자랑한다. ‘알밤’에서 진한 단맛이 났다. 앞의 네 막걸리는 파전과 궁합이 좋았지만 뒤의 두 막걸리는 단맛이 과해 안주와 썩 잘 어울린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딸기바나나막걸리도 달달하고 상큼했다. 마지막에 살짝 묻어나오는 막걸리의 시큼한 맛이 아니었다면 술이라고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테이크아웃 컵에 담아 강의실에 들고 가고 싶을 지경이었다. 
동행한 사진기자와 나누어 술을 마셨으니 인당 세 잔이 안 되는 술을 마신 셈인데, 배가 불러서 자리를 뜨기도 버거웠다. 막걸리는 밥 안 먹고 먹어도 될 만큼 속을 든든하게 해주는 술이라고 한다. 농사 새참에 끼어 나올 것처럼 친숙하고도 촌스러운 이 막걸리의 이미지에 달콤함과 청량감이 가려짐이 몹시도 아쉬우니, 고정관념으로부터 벗어나 팔도의 막걸리에 담긴 이야기를 맛으로부터 풀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 한 학기간의 술썰은 여기에서 마무리한다. 

*술지게미 : 술을 빚은 후에 술을 짜내고 남은 술 찌꺼기.


글 유채연 기자
 imjam@yonsei.ac.kr

사진 윤현지 기자
hyunporter@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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